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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PD의 터닝포인트] 2008 가을개편 논의에 경악하며

▲ MBC 이채훈PD ⓒMBC
‘단박 인터뷰’ 단칼에 폐지

지난주 KBS 1TV <TV비평 시청자 데스크>의 ‘클로즈업 TV’ 코너는 200회를 넘긴 <단박 인터뷰>를 분석했다. “스튜디오 대담 프로는 많지만 화제의 인물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는 프로는 드문 현실에서 단연 돋보이는 프로그램”이라고 평가한 뒤 ‘성공 비결’과 ‘아쉬운 점’을 알아보았다. 시청자들은 ‘재미있고 부담 없다’, ‘현장성과 기동성이 돋보인다’, ‘말미에 노래를 넣은 것이 신선하다’고 입을 모았다. 출연자가 대답 못 하는 장면, 측근이 인터뷰를 중단시키는 장면까지 방송하여 현장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출연자의 속내를 엿볼 수 있게 한 것도 진일보한 기법으로 지적됐다.

“출연자의 정치인 편중을 지양해야”, “뉴스 중심에 있는 사회적 약자를 좀 더 배려해야”, “질문을 좀 더 공격적으로 해야” 등 아쉬운 점도 지적됐다. “충분한 자료조사로 출연자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면 좋겠다”, “이슈별로 대립된 당사자 의견을 나란히 소개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등 생산적인 의견도 나왔다. “첫눈 오는 날 군고구마 장수 인터뷰를 통해 서민의 고충과 희망을 알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등 구체적인 아이템 후보까지 제안했다.  

이 <단박 인터뷰>를 가을 개편에서 폐지한다고 한다. 좋은 점을 유지하면서 아쉬운 점을 보완해야 할 시점에서 ‘단칼’에 폐지한다는 것이다. 옴부즈맨 프로그램인 <TV비평 시청자 데스크> 관계자들도 이러한 조치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생방송 시사투나잇>, <미디어 포커스>, <좋은 나라 운동본부>, <아시아 투데이>, <한국사 전> 등 KBS의 공영성을 대표하는 프로그램들이 같은 운명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공영성 후퇴, 수신료 내야 하나

이번에 사라지는 프로그램들이 ‘공익적’ 프로그램에 집중된 것은 공영방송 KBS의 신뢰도에 흠을 내는 일이 아닌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프로그램은 시청자의 것이다. 따라서, 많은 시청자들이 아끼는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폐지한 것은 시청자를 무시한 처사라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KBS는 개편을 위해 공개적인 여론수렴을 하지도 않았고, 폐지 이유를 제작진에게 설명하지도 않았다. PD들을 도구나 머슴으로 보는 게 아닌가 의심된다. PD들의 심각한 사기 저하가 이미 드러나고 있다. 게다가, 개편을 불과 두 주 남짓 남겨놓고 어떻게 충실한 개편을 준비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로 이어지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 KBS PD협회(회장 김덕재) 소속 시사·다큐·교양 PD들이 KBS 가을개편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집단 ‘보이콧’을 선언하고 나섰다. ⓒKBS PD협회
절차와 도덕성을 무시한 채 출범한 이병순 체제의 KBS에 대해 시민사회에서는 벌써 “수신료 거부운동이 필요한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무늬뿐인 공영방송’이 프로그램 질마저 떨어진다면 수신료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고 그럴 경우 수신료 거부운동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해당 프로그램의 제작진을 비롯, PD협회, 기자협회가 이번 개편에 반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측은 정권 눈치, 노조는 수수방관

이러한 무리한 개편이 정권 눈치보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건 라디오 쪽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PD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대통령 연설을 격주 편성한 것. 야당이 반론권을 요구하자 여당에게도 반론권을 제공하는 황당한 발상까지 선보였다. 라디오 PD들의 반발은 당연한 일.

편성 ․ 제작의 자율성이 유린당하고, 공영성이 후퇴하고, 프로그램의 부실화가 우려되고, 마침내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할 위기에 처한 KBS. 뜻있는 사원들이 목소리를 높여 항의하고 있지만 힘이 모자라 보인다. 이 와중에 KBS 노조가 일관된 의사 표시를 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신태섭 이사가 강제 해임될 때, 정부를 대신하여 감사원이 KBS를 조준할 때, 경찰 보호 아래 친여 인사들끼리 이사회를 열고 변칙으로 사장 해임을 결의할 때, 권력과 정보기관이 밀실에서 새 사장을 논의할 때 …. 중요한 고비마다 노조는 발언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고 그럼으로써 불법과 파행을 사실상 묵인했다. 이번 개편안은 그 과정의 연장선에 있다. KBS 노조는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공범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걸까? 그래서 이번 개편안 앞에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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