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절이 사람들을 슬프게 합니다. 오랫동안 담배를 끊었던 선배가 지난 8월 8일 경찰이 들이닥친 회사의 비상구 복도 끝에서 담배를 다시 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끊을 생각을 안 합니다. 담배를 놓지 못하게 하는 우울한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고 합니다.

예전부터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는데 오히려 착한 사람들은 왜 고통 받고 마음 아파할까요. 평소에 그렇게 수더분하고 친절하던 사람들이 풀이 죽어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학생시절에도 그런 의문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정의란 것이 있을까. 세상에 인과응보라는 원리가 작동하기나 하는 걸까. 규칙을 어기고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멀쩡히 웃고 다니는데 울트라 범생인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왜 기분이 엉망이고 화가 날까. 이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세월이 흘렀고 지금의 나는 믿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것도 확실하게 믿는 구석이 있습니다. 세상에 정의란 것이 있다고 믿습니다. 인과응보의 원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동한다고 믿습니다. 나쁜 일을 해놓고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마음속 감시자가 하나씩 있습니다. 그것을 불성 혹은 성령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일반적으로 양심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고통 받을 것이 뻔합니다. 마음 한 구석이 계속 묵직하고 쉼 없이 덜그럭거릴 겁니다.

아무리 안 들으려고 해도 뒤에서 남들이 수런거리는 소리를 모를 만큼 인간은 둔감하지 못합니다. 다만 그 고통을 감추고 덮어두고 있을 뿐입니다. 생각하면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도 참으로 딱합니다. 고통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자신의 책무와 지위에 떠밀려 원치 않는 악역을 하며 그저 오던 힘으로 계속 나아갈 뿐입니다.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사회의 역학관계가 그려내는 힘의 탄력으로 떠밀려 갑니다. 어쨌든 내게는 그런 믿음이 있으니 나쁜 사람들이 잘못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못된 걱정은 이쯤에서 접어두기로 합니다.

이제 그 반대쪽에 슬픔에 젖어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된 선배가 있습니다. 나는 선배가 다시 담배를 끊고 운동도 하고 예전처럼 많이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행복의 힘으로 싸웠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건강한 분노란 것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분노는 사회를 개혁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당사자를 피폐하게 만듭니다. 나는 선배가 행복의 힘으로 싸웠으면 좋겠습니다. 순진한 소리입니다. 열심히 싸우지 않는 방관자의 소리니 잊어버리셔도 좋습니다.

그럼에도 부디 행복의 힘으로 싸우시길. 저들이 검은 벽처럼 꿈쩍 않을 때, 화를 낼 필요가 없습니다. 몇 번 얘기해서 말이 통하고 내 뜻대로 일이 되어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그야말로 순진하기 짝이 없는 ‘무의식’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런 기대를 아예 접어버리고 분노도 집착도 없이 평온을 유지하면서 담담하게 싸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선배가 옳기 때문입니다. 잘못은 저들이 했으니 괴로워해야 할 쪽은 저쪽입니다.

▲ 최근영〈KBS 스페셜〉PD

궁극적으로 100퍼센트 옳은 것에는 고통이나 슬픔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법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선배가 궁극적으로 이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착해서 고통 받지 말고 착해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미래나 과거 말고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말입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