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닮기 행진이 담고 있는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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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오바마 코드가 한창이다. 오바마가 뜨긴 뜨는 모양이다. 대통령 마저도 자기가 오바마와 다를 것이 없다고 내세운다. 그러면 듣는 부시 섭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뭐가 그리 닮았다고 여길까? 발가락이라도 닮았다면 또 모를까. 난데없는 인맥찾기도 가관이다. 없는 인맥 찾아보라는 요구도 요구지만, 또 자기가 바로 그 인맥이라고 자랑하는 것도 나라 체면 구겨도 참 잘구기고 있구나 싶다. 사진 한번 찍고 인사한번 나누면 인맥 되는 세상인가 보다. 그러니 사진도 잘 찍어야 되겠다. 

그동안 미국의 중심을 움직여왔던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주변부적 존재인 오마바에게 기대를 건 미국인들의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지 않는 자세는 우리를 더더욱 우습게 만들 뿐이다. 오바마가 헌법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쳐 온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래서 그의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견해와 철학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고 오바마 인맥 운운하는 것은 뭘 몰라도 정말 모르는구나 하는 빈정거림을 받기 십상이다. 그는 미국의 헌법논쟁, 민주주의 전통, 이런 것들이 담고 있는 미국의 가능성과 미래에 대한 지침을 고민하는 정치인이다. 부시 8년간 유린된 미국 민주주의를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를 놓고 성찰을 하는 지도자다. 

▲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
따라서 지난 시절 미국이 민권운동의 역사를 통해서 어떤 진통과 역사적 고비를 넘어왔는지를 알지 못하고 오바마의 오늘을, 그리고 내일의 미국을 내다보겠다는 것 역시 진실에서 한참 멀리 있는 자세다. 미국은 오바마에게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보고 있다. 그 과거에서 노예로 끌려 와 살았던 흑인들의 투쟁과 인권의 존엄성이 확립되어온 과정, 그리고 오바마의 오늘에서는 그런 모든 차별적 조건을 뚫고 미국의 새로운 모델을 만든 힘, 그의 미래에서 미국의 새로운 희망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흑인, 라티노, 소수민족, 그리고 교육수준이 높은 젊은 층들이 오마바에게서 내일의 희망을 발견하고 열광하는 것은 미국의 밑바닥에 흐르는 변화의 물결을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다.

미국의 진보세력도 그간 많은 좌절과 힘겨운 고비를 넘어왔다. 부시 체제 8년 동안 진보는 몰릴 대로 몰렸다. 그러나 이들은 그 과정에서 대중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바마가 공동체 조직가로 활동했던 경력도 이들 진보세력이 어떤 방식으로 대중과 만날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이기도 하다. 상층정치에 매혹되어 가지 않고 미국인들 자신이 어떤 요구와 기대를 가지고 있는가를 파악하는데 힘을 쏟았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오바마는 경선과 대선 과정에서 자신을 워싱턴에 대해 뭘 모르고, 국제정치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질타에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 당신들은 다른 나라의 대통령이나 총리에 대해서는 아는지 모르나 정작 미국인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일격을 가했다. 그가 상원의원에 출마하기 전, 직접 운전하면서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갈망에 귀를 기울인 모습은 오늘의 그를 만드는 초석이 된다.

▲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뿐만 아니다. 그는 미국의 시장체제가 사회적 공공성을 회복하지 않는 한 장래가 없다고 이미 경고한 바 있다. 금융위기로 휘청거리고 있는 미국 신자유주의 체제의 운명을 앞질러 내다본 것이다. 일방적 패권주의로 실추한 미국의 위상을 존경받는 지도력으로 복구하겠다는 열망은 이에 더하여, 인류사적으로 직면한 과제들, 그러니까 질병, 가난, 환경, 전쟁 등의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겠다는 의지에서 더욱 빛난다. 미국이 거대한 제국으로 자기의 기득권을 누리는 데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어 착한 일 좀 해보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대로 될지는 미지수이고, 제국의 유산을 청산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과도한 기대는 갖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가 지금까지 보인 모습은 과연 어떤 철학을 가지고 정치를 해야 할 것인지 일깨우고 있다. 그건 다른 것이 아니다. 강자의 질서에서 밀려난 이들의 존엄성과 희망을 복구하겠다는 것이다. 거기서 정치는 새로운 현실을 창출해낸다. 이런 오바마 닮기는 어디 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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