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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年 中國 民航機가 春川에 不時着한 事件이 發生했다. 正確한 內幕은 自由中國(臺灣)으로 亡命을 希望하던 테러리스트 몇 명이 上海를 향하던 民航機를 被拉해 航路를 韓國으로 돌리게 하는 過程에서 燃料不足으로 不時着하게 된 記事이다. 이는 後日 91年의 韓中 修交 正常化의 起爆劑로 作用했다는 歷史的 評價도 있다.

分明한 敵國이었던 中共 民航機의 不時着. 自由中國으로 亡命을 希望하는 테러리스트의 航空機 拉致. 修交는 고사하고 一體의 接觸조차 拒否했던 敵國과의 외줄타기 外交. 80年代 激動期에 發生한 劇的 事件은 當然히 全國民의 耳目을 集中시켰다. 하지만, 外交當局이 密裏에 中國과 協商을 벌이던 탓에 言論은 韓國戰爭 이후 처음 公開的으로 접하게 된 敵國 中共民과 그들의 處遇에 더 깊은 關心을 보였다. 當時 言論이 자주 使用한 題號는 “人道主義的 處事”였다. “人道主義的 處事”란 敵國 中共人에게 最高級 호텔의 食事와 宿所를, 最高의 病院도 함께 提供했다는 뜻이다.

필자는 中學校 1年生이었고 歷史的 大事件을 다룬 複雜한 內幕을 理解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關心을 끈 것은 小小한 紀事. 그 중 未來 學習方向의 길을 提示한 印象 깊은 記事가 있다.

“患者들과 筆談으로 意思疏通”

우리 醫療陣이 病院에 入院한 乘客들과 乘務員들과 筆談으로 意思를 交換했다는 內容이다.
하기야 생각해보면 신기할 것이 없는 일이다. 韓國은 數千年間 漢字文化圈이었으니까. 歷史的으로도 韓國은, 中國은 물론 日本과도 筆談으로 意思를 주고받는 일이 드물지 않았으니까.
初等學校부터 千字文 工夫를 했지만, 쓰기도 읽기도 지겨운 漢字修業이 意外로 쓸모 있는 일이 될 수 있다는 實踐的 自覺을 經驗한 셈이다. 또한 當代의 新聞은 예외 없이 漢字를 使했고, 平凡한 中學生이 漢字 記事를 讀解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지금까지의 글을 읽기에 필자의 동년배(1971년생)나 선대는 불편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후배들은 어떨까? 역사와 한문이 공교육에서 사라지고 영어를 모국어보다 더 오랜 시간 공부해야 했던 후배들이라면? 아마도 일본어나 중국어를 전공하거나 한자검정을 준비했던 경력이 없는 이들이라면 독해가 어렵지는 않을까?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한자는 영어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외국어로 전락했다. 수 천 년 민족의 정수와 역사를 기록하던 한자를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한자를 모른다는 것은 젠체하는 지식인연할 수 없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백 년 전의 역사는 고사하고, 불과 수 십 년 전의 기록물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재앙이다.

▲ 공태희 OBS〈문화전쟁〉PD

역사란 결국 나와 내 이웃의 지난 이야기가 아닐까? 나의 이야기도 모르고, 이웃의 지난 이야기에 대한 진지한 고찰조차 없으면 현재는 공허하며, 미래는 현세와의 단절일 뿐일 것이다.
(필자 주: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글날의 공휴일 재추진을 적극 지지함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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