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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방부 때문에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노암 촘스키는 80년대에 언론이 통제되고 권력의 선전 수단으로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정부나 기업, 권력의 정보 통제라고 주장한 바 있다. 현대 사회에서 기업이나 정부가 가장 정확하고 많은 정보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언론이 이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비위를 맞추게 된다는 것이다.

권력은 정보의 조절을 통해 언론을 길들이고, 언론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짜여진 틀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니, 사실 언론이 제 4의 권력이니 독립적이니 하는 것은 헛소리라는 뼈아픈 비판이다. 오래전에 나온 이야기이고, 또 미디어를 너무 단순히 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최근 미국 대선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을 두고 생각해 보면 의미 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 2008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새라 페일린 <사진제공=TIME>

모두가 알다시피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새라 페일린은 자신이 주지사로 있는 알라스카를 제외하고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인사였다. 그러니 존 매케인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페일린을 부통령후보로 발표하자 미국 미디어들은 페일린이 누구인지 알기위해 사력을 다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페일린에 대한 미디어의 접근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고, 선거 유세나 후보자 토론을 제외하고는 페일린의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다. 그러니 그녀와의 인터뷰는 상한가를 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중에 가장 푸대접을 받은 방송은 바로 NBC였다. ABC는 후보 발표 직후인 9월 11일 알라스카에서 인터뷰했고, CBS는 발표 후 한 달이 채 못 된 9월 28일 페일린의 인터뷰를 했다. 이에 비해 NBC는 발표 후 55일이 지난 10월 23일에야 방송을 해 네트워크 중에서 가장 늦었다. 심지어 케이블 뉴스 채널인 <폭스뉴스>도 9월 중순에 했고, CNN도 NBC보다 빨랐다.

왜 NBC는 이런 푸대접을 받았을까?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는 없다. NBC나 매케인 측에서는 미디어에 대한 푸대접이나 호불호는 없다고 공식적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NBC의 동향을 보면 그리 유추가 힘든 것은 아니다. 일단 NBC와 공화당과의 관계가 편치 않다. NBC 계열 방송사들 중 MSNBC는 최근 ‘부시 때리기’를 통해 시청률을 거의 배 넘게 끌어올렸다.

이에 공헌한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키이스 오버만의 카운트 다운>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스포츠 앵커 출신인 오버만은 부시를 직설적인 어조로 비판해 인기를 끌었고, 폭스뉴스와 CNN에 이어 만년 삼위였던 MSNBC를 올 여름 같은 반열에 올려놓기도 했다. 더구나 최근 들어서는 리버럴 성향의 에어 아메리카 라디오 출신 레이첼 매도우를 내세운 쇼는 CNN의 래리 킹을 방송 시작 두 주만에 꺾어버리기도 해 리버럴 성향 방송의 시장성을 입증해 보였다. 이에 MSNBC가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에 대항하는 리버럴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여기에 대해 정통 중립언론을 고수하려는 모회사 NBC와 민주당의 인기와 함께 새로운 접근으로 시청자를 끌려고 하는 자회사 MSNBC 쪽의 충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공화당 전당대회에 공화당이 가장 싫어하는 진행자인 키이스 오버만 등을 진행자로 내세워 결국 NBC는 시장을 따라 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매케인 측으로는 NBC 쪽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고, 길들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후보 발표 직후 페일린이 ABC, CBS와 한 인터뷰는 형편없는 평가를 받았다. 부시의 외교 정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조리가 맞지 않는 대답을 하기도 해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런 상태에서 적진으로 인식되고 있는 NBC 쪽과의 인터뷰를 할리는 만무한 것이다.

하지만 NBC측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저녁 뉴스의 앵커인 브라이언 윌리엄스는 다른 프로그램에 나가 불평과 비평을 번갈아 하기도 했다. NBC의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 <Saturday Night Live(SNL)>에서는 유명한 코미디언 티나 페이를 내세워 페일린의 실수를 풍자, 다른 방송사에서까지 방송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런 직간접 압력 끝에 NBC는 마침내 페일린과의 인터뷰를 하게 됐다. 물론 공짜는 없었다. 매케인 측이 요구한 여러 가지 조건이 붙었다. 그리고 인터뷰 결과는, 오래 기다린 명작이 그렇듯 별 것 없었다. 페일린은 실수를 하지 않았고, NBC의 윌리엄스도 그다지 날 선 질문을 하진 않았다.

다시 촘스키의 프로파간다 이론으로 돌아가자. NBC와 페일린의 이야기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일단, 심리적인 측면이 있다. 공화당측은 마음에 들지 않는 방송사와의 인터뷰를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방송사를 통제했다. 후보 발표 후 55일 동안 인터뷰 기회를 기다리면서 NBC의 앵커들은 ‘몸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구설수에 올랐던 NBC와 MSNBC의 충돌은 우연일 수 없는 것이다. 자매사의 정치적 성향으로 취재원 접근이 막힌 NBC 쪽에서 불만이 터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더 분명하다. 일단 인터뷰의 조건들이 모두 공화당의 입맛에 맞춰졌고, 시간을 번 덕분에 초반처럼 실수도 없었다.

▲ 샌프란시스코 = 이헌율 통신원 /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교수

최근 세계 언론 자유 순위에서 미국이 36위를 차지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는데 같은 서양문화권에서도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는 것은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그리고 이 순위가 미디어가 얼마나 권력에 길들여져 있는지와도 깊은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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