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린 언론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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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이 글을 쓰는 나는 지금 미국에 와있다. 지난 주말, 맨하탄의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스텀프(Stomp)’를 봤다. 여기서 ‘스텀프’는 “무겁게 걷다”, 또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듯 움직이다” 등의 의미를 가진 단어인데 우리의 ‘난타’와 비슷한 개념으로 보면 될 듯하나, 그보다 더 다양하고 현란한 소리를 내는 무언극이다. 빗자루에서부터 성냥 곽, 드럼통과 사람의 몸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동원하는 악기는 무궁무진하다. 물을 담은 부엌 싱크대도 몸에 걸고 나와서 온갖 소리를 리드미컬하게 낸다. 상상력이 창조적으로 발휘되는 아프리카 타악기의 세계와 같은 연출이 다채롭게 펼쳐지는 것이었다.

별로 크지도 않은 극장에서 세상의 모든 존재가 가지고 있는 특별하고 개성적인 소리들이 연기자들에 의해 표현될 때 관객들은 즐거운 환상에 빠진다. 그렇다면 나는 무얼 가지고 어떤 소리들을 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가지게 한다. 객석은 연기자의 주도로 호흡을 맞춰 박수의 다양한 변형으로 객석 자체를 또 하나의 신나는 무대로 변모시킨다. 모든 존재가 내는 각기의 소리가 개성을 존중받고, 그것이 보다 큰 울림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다. 

방송언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당연히, 그 다채로운 소리의 개성과 독자성을 어떻게 보장해주고 지켜낼 수 있을까가 여기서 관건이다. 자신이 지휘하는 대로만 소리를 내라는 대단히 포악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세상사는 재미를 빼앗아 가고 있는 것이다. 자기들이 제공하는 소리만 들으라는 것이다. 라디오와 TV의 채널을 강제로 고정시켜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선택의 권리가 짓밟히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는 어떤 언론이 요구되는가? 첫째, 권력자 또는 권력을 잡으려는 자들에 대해 엄격하게 감시하고, 둘째 거짓과 진실을 판별해내야 하며 셋째, 중요한 현안에 대해 광범위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미디어의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 of media)>을 펴낸 로버트 맥체스니가 정리한 민주 언론의 기본핵심이다. 

이 정도야 대부분 잘 알고 있고 또 사실 대단할 것도 없는 개념제시라고 하겠지만, 로버트 맥체스니가 특별히 주목한 것은 이러한 기능을 훼손하는 정치경제적 토대다. 위에 간략히 정리한 민주 언론의 당연한 역할을 꺾어버리는 것은 다름 아닌 “사회적 정보회로에 대한 대자본의 지배”라는 것이다. 이 역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다. 

▲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상재)은 총파업을 이틀 앞둔 지난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서 총파업 출정 기자회견을 통해 한나라당에 마지막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언론의 왜곡이 민주언론의 모델처럼 알려져 있는 미국 저널리즘의 기본특질로 되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오늘날 미국의 언론이란 자본의 논리에 휘말려 본래의 기능을 상실해버린 실패작이라고 맹렬히 지탄하고 있다. 로버트 맥체스니의 이러한 비판을 통해 우리는 언론의 공공성을 자본의 이익을 위해 박탈해버리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가를 미국의 현실을 통해 여실히 보게 된다. 이미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피해갈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하는 후발자의 유리함을 만들어 준다.

자본이 그 사회의 공적영역을 자신의 사유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구축되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정보의 흐름이 통제되고 조작된다는 점이다. 진실은 은폐되고 실종 당한다.

미국 헌법 수정1조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치적 비판자들을 보호하는 헌법정신의 반영이다. 이 정신과 권리가 무너질 때 로버트 맥체스니의 말대로 “민주주의는 살해당한다.” 19세기와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시기에 미국은 “전문적 저널리즘”의 발달을 경험하게 된다. 권력에 대해 가차 없는 비판의 의지를 가진 언론의 등장은 이렇게 해서 가능했다. 그러나 권력이 자본에게 언론방송을 넘기는 법과 제도를 허용하면서부터 이 이른바 “전문적 저널리즘”은 붕괴되어갔다. 독자적인 자기 목소리를 가진 언론과 방송은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이었다. 미디어의 정치경제학이 작동한 결과다.

부시의 미국이 민주주의의 엄청난 후퇴를 경험한 것은 바로 이러한 언론방송의 현실과도 직결되어 있다. 자본의 언론장악은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의 살해로 이어진다. 우리의 선택은 자명하지 않는가? 민주언론은 지금 권력과 자본의 동맹이 세운 처형대에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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