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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태인 경제평론가

▲ 정태인(경제평론가)
지난 몇 주 내 눈은 진한 감동이라는 호사를 누렸다. 우연히 들른 EBS에서 횡재한 <마리온 이야기>가 그 첫째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더니 이 다큐는 9월 중순에 첫 방영됐고 이미 대단한 평가를 받았던 모양이다.

중반부까지 나는 상당한 거부감을 품은 채 <마리온 이야기>를 보았는데, 그 숱한 애완 동물 오락 프로그램에서 동물의 감정을 사람의 눈으로 단정짓는 것이 영 마뜩찮았던 경험 때문이다. 설마 거북이가 자신의 자식이 그리워 빠삐용처럼 집요하게 탈출을 하고, 또 그래서 그렁그렁 눈물을  머금을 리가 있을까.

그러나 마리온이 이 지상의 마지막 세이셸 코끼리 거북이었고 같은 종이 모두 사라진 후 ‘120년간의 고독’을 32번의 탈출로 견뎠고 결국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사실’은 ‘마리온의 눈물’이 인류의 역사적 반성을 촉구하기에 충분하다.

인류의 첫 번째 세계화였던 ‘대항해 시대’에, 우연히도 그 항로 중간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세이셸섬에 살던 300Kg이나 되는 수많은 거북들이 이렇게 선원들의 신선한 식량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마리온 이야기’는 2~300년 전의 역사로 끝난 것이 아니다. 지난 3주간 방영된 MBC <북극의 눈물>은 ‘마리온의 눈물’이 지금 이 땅에서 훨씬 더 큰 규모로 흐르고 있다고 외친다. "북극의 눈물"은 지구온난화가 북극곰에게 어떤 위험을 가져다주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일각고래와 순록의 사냥으로 수 천년 동안 살아온 이누이트들의 삶에도 위기가 닥쳐왔다.

▲ MBC 창사47주년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 ⓒMBC
대항해 시대보다 수천배, 아니 수만배 빨라진 세계화의 속도 만큼이나 빠르게 지구 상의 한 종인 북극곰, 그리고 또 다른 종인 인간이 위기에 빠져 들고 있다.

우리가 2-300년 전에 살았다면 마리온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까? 그럴 것이다. 지금 만큼의 역사적 안목이나 생태적 관심이라면 국제적인 합의로 간단하게 세이셸섬의 학살을 중지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 북극에 대해서는, 아니 지구 전체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할까?

이런 문제에 대해서 현대경제학의 처방은 이렇다. 첫째는 소유권을 확정해 주면 된다. 바로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세이셸군도를 누군가 소유한다면, 그래서 거북을 선원들에게 식량으로 팔 수 있게 한다면 영원히 돈을 벌기 위해서 멸종에 이르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과연 그럴까, 생각해 보시라).

둘째는 유지 가능한 총량을 정하고 이를 적절하게 배분한 뒤 사고팔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교토의정서의 핵심 내용이다. 지구 온난화를 막을 정도의 탄소배출량을 계산한 뒤 각국에 배정하고 이 탄소배출권 시장을 형성하면 된다는 것이다(거북이에게도 적용해 보시라).

두 방법 모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다. 그러나 소유권의 확정 자체가 국제분쟁의 대상일 뿐 아니라 계산이 틀려서 지구온난화가 걷잡을 수 없어진다거나 시장이 요즘처럼 작동을 멈추면 그것으로 끝이다.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현재는 미국이 거부하고 있고, 앞으로도 중국이나 인도가 거부하면 이 방법들은 그나마 그림의 떡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먼 미래를 계산할 능력도 없고 우리 스스로의 합의에 의한 강제가 없다면 이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시장의 범위를 넘어선 문제이다.  마리온과 북극의 두 줄기 눈물은 우리 스스로의 근본적 성찰을 촉구하는, 아주 귀중한 시도이다. 이런 다큐를 더 많이 생산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방송의 공공성이다. 과연 방송법은 그 방향으로 개정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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