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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장정훈 통신원 / KBNe-UK 대표

어디 한번 영국언론의 현실을 삐딱하게 들여다보자. 영국 언론인들이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언론사는 언론사대로 자사 이기주의에 빠져서 동지들을 내치고, 언론인들은 언론인들대로 개인 이기주의에 빠져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나서고 있다.

영국언론인협회(NUJ) 홈페이지엔 상황판이 만들어졌다. 어느 지역에 어떤 회사가 문을 닫았고, 어느 직종에 몇 명이 잘려 나갔는지 자세히 보여준다. 언론인협회는 그렇게 자기 밥그릇을 지키느라 생고생을 하고 있는 이기주의자들을 위해 스트레스 상담 코너도 만들었다. 밥그릇 싸움은 혼자하면 외롭다며 공동투쟁도 독려하고 있다. 여기 저기서 파업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한결 같이 명분이 빈약한 밥그릇 지키기 싸움이다. 해직반대, 임금인상, 노동여건 개선 등. 그중 가장 큰 이슈는 ITV의 지역뉴스 축소에 반대하는 싸움이다. 이것 역시 밥그릇 싸움이라고 볼 수 있다. 429명의 해직을 예고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들의 시위는 참으로 얌전하다. 서명을 해서 국회에 전달하고, 고든 브라운 수상에게 편지를 쓰고, 잠시 시간을 내 회사 앞이나 국회의사당 앞에서 홀로 혹은 몇몇이 피켓 시위를 하는 정도다. 우리나라 경찰이나 MB류의 정치인이 보면 애교스럽다 할 만하다.

영국 언론인들은 방송법이니, 공정보도니, 방송민주화니 하는 화두를 가지고 거리로 나선 적이 없다. 서명을 하고, 파업을 한 적도 없다. 적어도 필자가 조사하고, 보고 들은 바로는 그렇다.

▲ 지난달 30일 전국언론노조 총파업 2차 결의대회에는 4000여명의 조합원이 모여 '언론장악 저지'를 외쳤다. ⓒPD저널
이쯤 되면 영국언론은 한국 언론에 비해 참으로 저급하다. 세계 언론의 귀감으로 부러움을 받고 있는 영국의 언론이 겨우 밥그릇 싸움이라니, 무릇 국민의 알권리와 민주주의, 정의로운 국가와 사회를 위한 감시자가 언론의 역할이자 사명이거늘 어찌 그런 사명을 가진 자들이 저급하게 밥그릇 싸움을 한다는 말인가? 믿기 어려운가? 하지만 현실이다. 그리고 필자는 그런 영국의 언론이 부럽다. 그 밥그릇 싸움에서 우리보다 한수 위에 있는 영국사회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언론의 가능성을 보기 때문이다.

영국의 언론인들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전력 할 수 있다는 건 첫째 자유언론에 대한 위협이 제로에 가깝기 때문일 거다. 공정보도니, 방송민주화니, 방송악법이니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물론 우려할만한 상황들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걸 새삼 다지고, 지키기 위해 극한 대결을 불사할 필요가 없을 만큼 영국의 언론 환경은 충분히 성숙하다. 둘째 언론 노동자를 말 그대로 노동자로 대해주는 사회적 인식이 일반화 되어 있다. 기원전 12세기 인류 최초의 파업이 그러했듯 모든 노동자는 빵을 위해 싸울 권리가 있다.

영국의 언론인들이 서명이나 편지 따위의 애교스런(?) 방법으로 의사전달을 하는 것도 그보다 더 큰 저항이 필요할 만큼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귀와 의식이 막혀있지 않다는 거다. 피켓만 들어도 상대가 외면하지 못하도록 민주적인 소통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는 이야기도 되겠다.

▲ 런던 = 장정훈 통신원 / KBNe-UK 대표
사실 크건 작건 밥그릇은 투쟁의 가치를 낮추는 의미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 역사적으로 봐도 파업은 항상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으며 밥그릇은 노동의 신성함 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와도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언론인도 노동자고, 노동자에게 밥그릇은 언론노동 고유의 가치만큼이나 중요다. 그런데 아직 한국 사회는 언론인이 당당하게 밥그릇을 주장하고, 챙길 만큼 의식이 확대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조중동이 언론총파업을 밥그릇 싸움이라 하고 그게 그들과 다른, 찬바람 무릅쓰고 거리에 선 정직한 언론인들을 폄하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걸 보면 말이다.

대한민국 언론인들은 지금 그 알량한 밥그릇마저 빼앗길지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대의를 위한 싸움에 나섰다. 그 용기에서 난 영국 언론을 능가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본다. 반드시 싸움에서 승리하고 각자의 밥그릇을 지키고, 키우기 위한 이기적이고 애교스러운(?) 투쟁에도 나설 수 있기를 바란다. 여유롭게, 당당하고 가열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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