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 과도한 출연료 왜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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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의 미디어 리터러시(39)]

▲ 고승우 박사
우리 TV에서 드라마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방영된다. 한국은 드라마 천국이라 할만하다. 이런 현실이 한류를 탄생시킨 원동력이 된 것도 사실이다. 우리 TV 드라마가 동남아, 중동 등지에서 큰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은 그만큼 한국 TV 드라마의 완성도가 높다는 것을 반영한다.

TV 드라마는 남녀노소가 즐긴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분야에 대한 분석은 두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하나는 시청자의 시각에서, 다른 하나는 드라마의 생산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이 글은 시청자의 입장에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한국 TV 드라마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고, 드라마 생산자 쪽에서 제기한 TV드라마 시장의 문제점 중 고액 출연료 시정 요구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시청자 시각에서 본 드라마

TV 드라마의 내용은 드라마가 제작되는 사회의 가치체계를 주로 반영한다. 드라마의 스토리나 배역설정은 사회적 가치체계를 그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역발상이 TV 드라마에서 묘사되기도 하지만 그런 아이디어 상품이 주류를 이루지는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TV 드라마의 줄거리는 몇 가지로 압축된다. 젊거나 늙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 달콤새콤한 사랑 이야기, 부부나 부모 자녀간 또는 고부간 갈등, 돈 버는 이야기, 고난 끝에 성공하는 이야기 등이다.

일부 드라마는 불륜 관계의 백화점과 같아서 형제간의 삼각관계, 동서간의 삼각관계, 자매간의 삼각관계 등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관계가 등장한다. 다분히 현대화(?) 된 사극도 줄을 잇는다. 사극 등장 인물의 복장, 말투가 수년 동안에 그 이전과는 판이하게 변했다. 오늘날 상상키 어려운 계급사회의 지배와 복종 관계가 묘사되는데도 시청률이 높다.

드라마의 내용이 현재이건 먼 옛날이건 주인공의 설정은 엇비슷하다. 모든 주인공은 흔히 다른 등장인물보다 뭔가 특이한 점이 있는 인물상으로 설정된다. 잘 생긴 외모이거나 인간승리를 거두는 그런 자질 등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인공은 여간해서 사투리도 쓰지 않는다. 스포츠나 무술과 같은 기예의 달인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노력 끝에 뭔가 이뤄낸다. 대부분 성공하거나 그 가능성을 거머쥔 ‘해피 앤드’다.

TV 드라마가 누구나 노력하면 뭔가 이룰 수 있다 또는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강조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즉 실제 성공한 사람은 엄청난 노력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으로 이는 현실 사회의 빈부 차이, 계급 구조 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가치관이 저변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미국 TV 드라마, 영화에서 성공한 흑인이나 유색인종이 어쩌다 등장하는 경우가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기도 한다. 성공과 그것을 추구하는 노력은 개인의 결단과 원칙, 자기  희생, 운명의 개척과 같은 감동적인 과정을 수반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한국 TV 드라마, 영화에서 성공한 인물은 대부분 직업이 의사, 정치인, 변호사, 사업가 등의 부유층으로 설정된다. 이들에 대한 선호는 그들의 직업이 사회적으로 비리, 부조리 등으로 많은 물의를 일으키는 것과 별 관계없이 선망의 대상인 것을 반영한다.

▲ SBS 수목 미니시리즈 '스타의 연인' ⓒSBS
TV드라마의 존재 의의에 대한 견해 차이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TV 드라마가 왜 있어야 하느냐에 대한 시각차이가 다양한 평가로 연결된다. 사람에 따라서 드라마는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하며 어떤 교훈을 주려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라고 주장할 수 있다. 물론 정반대의 견해를 제시하는 사람도 있다. TV드라마의 평가는 십인십색이다. 분명한 것은, TV 드라마에 대한 견해나 논란의 성격도 시대에 따라 계속 달라질 것이다.

TV드라마 생산자의 시각에 대해

한국 TV 드라마의 위기적 현실에 대한 여러 지적들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초 열린 토론회 ‘TV드라마 위기와 출연료 정상화’는 PD와 학계 전문가, 연기자 등이 함께 모여앉아 TV드라마를 살리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자리였다. 토론회에서는 “현재의 드라마 위기는 구조적인 것이고, 일부 스타급 연기자의 출연료 급상승은 드라마 위기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지적과 함께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시장질서를 정립해야 한다는 견해 등이 제시되었다.

토론회에서 공개된 PD협회 내부자료에 따르면 스타급 연기자의 출연료는 회당 3000만원에서 많게는 2억5000만원이 넘었다. <태왕사신기> 배용준씨는 공식적으로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출연료로 대략 60억 원(총 24회로 회당 2억5000만원 정도)을 받았으며, <에덴의 동쪽> 송승헌씨는 7000만 원을 받았고. 신인 연기자의 출연료도 1000만 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 몸값이 높아진 원인으로 △외주제작 등 드라마 제작 환경 변화 △스타 캐스팅 △기획사 자유 계약제인 출연료 지급 방식의 변화 등이 지적되었다. TV드라마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책으로는 △드라마 재생산 시스템 복원 △단막극의 중요성 재인식 △자체제작 시스템 보호 △자체제작과 외주제작 드라마 시장의 균등한 여건 조성 등과 함께 방송3사가 드라마를 축소편성하고 연기자의 과도한 출연료도 조정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제시되었다.

이런 지적이 있은 후 김해숙, 권상우 등은 출연료를 스스로, 회당 1천 백 만 원으로 삭감하기로 했지만 <쩐의 전쟁>에 출연했던 박신양은 회당 출연료로 회당 1억 7천 만 원을 고집했다는 이유로 무기한 출연정지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방송출연으로 밥을 먹고 사는 연기자는 전체의 20% 내외라는 현실 등을 고려할 때 고액 출연료가 눈총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앞으로 방송가에서 ‘공생’의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적정 출연료로의 조정 등이 이뤄지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사회규범은  사회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라서 그럴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방송가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 존재한다는 현실을 직시할 때 그 가능성이 높아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 시장에는 출연료와 같은 스타 직업의 소득을 결정하는 독특한 법칙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TV 텔런트, 인터넷 학원 유명 강사 등의 직업세계에서 인기 스타의 몸값은 그의 개인적 능력에 의해 평가받지 않고 같은 직종의 다른 경쟁자에 비해 얼마나 능력이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문화산업은 다른 직종과 달리 노동 시장의 수요 공급의 법칙에 의해 보수가 좌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고층빌딩 유리 청소부는 얼마나 많이 유리를 닦을 수 있느냐에 의해 그 수입이 결정된다. 그러나 투자은행 경영인의 급여는 전체 동일 직종의 비슷한 위치에 있는 경쟁자들에 비해 얼마나 실적을 올렸느냐로 결정된다. 유리 청소부는 유리창을 거울처럼 닦아도 그 소득에 별차이가 없다.

그러나 투자은행 경영인은 본드 상품 등의 판매 실적이 다른 경쟁자보다 조금 더 많을 경우 보수는 파격적으로 많아진다. 이런 직종에서 최고 스타 경영인의 보수는 매우 높지만 최고가 아닌 2,3위의 경영인 보수는 1위에 비해 형편없이 낮게 매겨진다. 육체 노동이 아닌 정신적 노동이 승부를 가리는 직업에서는 얼마나 장시간 일하느냐가 중요치 않다. 얼마나 결정적인 찬스를 포착해서 실적을 올리느냐하는 것만 중요할 뿐이다.

최고만이 독식하는 경제법칙이 작동하는 그 밖의 분야는 방송, 영화가의 연예계, 스포츠 분야 등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전체 사회가 스타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지면서 최고가 독식하는 분야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언론, 법조계, 의료계 등이 거기에 포함된다. 세계화는 이런 경향을 더 부추기고 있다. 한류와 같은 문화 상품이 국경을 넘어 동남아, 중동 등으로 확산되면서 국내 스타들은 국제 스타로 격상되고 그들의 승자 독식 경향은 더 심화되고 있다.

정상적인 노동 시장이라면 어느 직종의 스타의 수입이 높을 때 그 직종의 지망생이 많아져 경쟁이 심화된다. 예비 스타들의 진입이 많아지면 스타들간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수입이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승자 독식의 시장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배용준이 최고 스타일 때 제2, 제 3의 배용준이 등장해 배용준과 경쟁을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배용준 팬들은 배용준만을 원한다. 짝퉁 배용준이나 다른 텔런트는 배용준 팬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배용준이 아닌 텔런트는 배용준을 결코 대신할 수 없다. 그래서 그의 출연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게 되는 것이다.

스타들이 고액 급여의 수혜자가 되는 그늘 속에서 수많은 무명의 스타 지망생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외침은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터져 나올 것이다. 그것은 자유시장 경쟁의 영역을 넘어선 문제다. 당연히 고민해야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쟁이 지속되는 한 계속 고민해야 할 숙제다.

TV 드라마가 어떤 위상을 정립해야 하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교훈과 이익을 주는지 파악하기 위해서 미디어 교육이 필요하다. 드라마를 이해하고 즐기면서 생활의 활력소로  활용하게 하는 미디어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절실하다. TV 드라마에 대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지식과 비판적 안목을 갖추고 있다면 드라마 시청자나 생산자 모두 드라마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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