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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나는 좌파다. 작년 한해는 그것을 나에게 깨우쳐 준 해였지 싶다.
첫째 이유는 한나라당을 적극 반대한다는 것(원래부터 그랬다), 두 번째는 강아무개 장관이 종부세 폐지를 옹호하며 ‘서민, 중산층의 가슴에 못은 박으면 안 되고 부자들의 가슴에 못은 박아도 되는 것이냐’라는 말을 했을 때 분로로 이빨을 바득바득 갈았다는 것. 아 또 있다.

주변에 친한 지인들이 대부분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는 거. 이 정도면 좌파의 조건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같이 일하는 피디가 네팔에서 촬영해온 한 여자의 인터뷰 중 ‘사람은 살을 자르면 똑 같은 피가 흐르는 데 왜 카스트가 있고 차별이 있는가’라는 말을 했을 때 감동을 받았다는 거. 근데 이런 얘기는 원래 빨갱이들이 하는 말인데 이런 말에 공감하는 걸 보면 나는 영락없는 좌빨인게지.

내 삶의 철학은 간단하다. 그저 열심히 일만 하는거야 열심히, 좋은 방송 다큐멘터리를 많이 만들고 때가 되면 숟가락 던지고 흙에 묻히는 거, 이거였다.
근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일들이 도무지 일에 몰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듯하다.
안타깝다. 현 정권은 장기집권을 위한 절호의 토양을 가지고 출발했는데 스스로의 오만함으로 그 기회를 발로 차버리고 있으니 말이다. 상대방을 조금만 인정해도 되는 것을...

역사교과서 편향 논란을 보면서 구체적인 구절을 살펴본 적이 있다. 곰곰이 보니 뉴라이트에서 제기한 좌편향적인 구절이 많이 보였다. 나는 좌파지만 그거 인정한다. 건국절을 둘러싼 논쟁 역시 필요하다고 본다. 근데 일제고사를 거부했다고 교사 7명을 파면하는건 아닌거 같다. 지난 10년 대선에 연패한 이유가 공중파 때문이었고 그래서 방송관계법을 충분한 사회적 협의도 없이 밀어붙이는 것은 아닌거 같다. 뭐라고 산업논리를 갖다 붙여도 다 속이 빤한 거 아닌가. 이런 거 국민들이 다 안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유능한 인재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인재는 좌파도 필요하고 우파도 필요하고 중도파도 필요한거다. 나 정도의 좌파PD(나는 주사파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신봉하지 않는다, 신원조회 해보시라)를 끌어안지 못하는 사회라면 무신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아 강자가 될 수 있겠는가? 그래서 화가 난다. 이런 간명한 세상의 이치를 인정하지 않으니 말이다.

▲ 박봉남 독립PD

마지막으로 내가 작년에 만났던 이들 중에서 좋아하는 한 사람의 사진을 보여드릴까 한다. 방글라데시 선박 해체소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 사진을 유심히 보시라. 나는 이런 사람들 좋아한다(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누구인지는 이야기 안 해도 다 짐작하실게다). 단순하고 열심히 일하고 노동의 대가로 정직하게 살아가는 이들. 이런 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내는 사회가 미래가 있는 사회다. 새해부터는 이런 작업들 해보려고 한다.
나는 좌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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