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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복진오 독립PD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가 직접 제작한 것으로 KBS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라는 자막고지로 첫 화면을 장식하며 매주 토요일 오후 1시 KBS-1TV 통해 방송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2001년 5월 첫 방송을 시작해 벌써 7년이 넘은 장수프로그램 <열린채널>이 바로 그것이다.

방송사나 외주제작사, 프로그램 전문제작자가 아닌 일반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하는 시청자제작프로그램  <열린채널>은 프로그램의 기획, 촬영, 편집은 물론 내용과 형식, 주제 등도 시청자가 직접 선정해 제작된다. 시행 당시 방송계에서는 파격적인 일이였기에 방송을 편성하는 KBS나 이 제도를 주관하는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위원회) 그리고 실제 프로그램제작 주체인 시청자 포함 3자 모두는 이 낯선 프로그램운영을 두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 KBS '열린채널' 홈페이지
그동안 주관 운영부처인 방송위의 소극적 운영방식도 문제였지만 시청자제작자들과 편성, 방송을 담당하는 KBS사이에서 가장 많은 다툼이 있었다. 어떤 작품은 제작자(시청자)의 동의 없이 편성시간을 이유로 편집되어 방송되기도 했고 또 다른 작품은 후반부가 불과 몇 초지만 완전 삭제된 경우도 있었다. 더 심한 경우는 지문날인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 훼손과 제목이 과격하다는 이유로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한 제작자는 결국 KBS를 상대로 방송요청을 하는 소송까지 제기 했다. 결과는 1차 재판에서 패소했고 2차 재판 진행 중 새로 구성된 KBS 시청자위원회에서 재심의를 통해 방송신청 2년이 지난 후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라는 과격한 제목(?) 그대로 방송됐다. 심지어 <우리 모두 구본주다> 라는 작품은 국내1위의 S보험회사가 보험계약자에게 보험금 지급에 있어 불공정한 횡포를 고발한 내용으로 방송날짜까지 확정된 상태였다.

그런데 방송 전에 어떻게 알았는지 S보험 회사는 방송 이후 법률적인 책임을 묻겠다는 ‘협박성’ 공문을  KBS 심의실에 보냈고, 그 이후 방송은 취소됐다. KBS는  소송이 진행 중인 사항에 대해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은 방송할 수 없다는 심의 규정을 들어 방송을 취소를 했다. 그러나 KBS 시사프로그램에서 같은 사례를 토대로 S보험회사의 횡포를 방송한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KBS는 자신들이 직접 제작한 프로그램과 시청자가 제작한 같은 내용의 프로그램을 두고 다른 결정을 한 것이다. 나중에 방송취소의 결정적 사유인 보험회사와 계약자간의 재판은 양쪽이 합의함에 종료돼 시청자제작자는 다시 방송요청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황당하게 당사자간 합의로 재판이 마무리 된 사건이기에 프로그램속의 내용이 현재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KBS는 방송 불가판정을 내렸다.

즉 방송 전에는 사안이 재판중이라 방송 불가판정을 재판 종료 후에는 재판이 끝난 상황이라 방송 불가판정을 내렸다는 얘기다. 과연 어떤 사람이 이 결정을 납득할 수 있을까. 역시 시청자제작자는 KBS측에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 했고 오랜 항의 끝에 결국 무사히 방송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시청자 제작자들은 자신들이 제작한 작품에 대해 부당한 간섭이나 침해가 있을 경우 단호하게 맞서 싸웠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참여 프로그램 시민단체 협의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자신들의 권리를 지켰으며 때론 집회와 시위 관련기관의 항의방문, 토론회 등을 개최하며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억척스럽게 싸웠다.

흔들리는 영상과 홈비디오급의 화질 때론 난해한 구성으로 완성도 면에서 기존 방송사 제작 프로그램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프로그램일지언정 내용면에서 자신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 받고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부당한 간섭으로 부터 단호히 맞서 싸운 시청자 제작자들 비록 아마추어들이지만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타협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시청자제작프로그램의 가치를 지켜낸 정신은 오히려 프로들이 배워야 한다.

▲ 복진오 독립PD

특히 최근 언론노조의 파업에서 어물쩡한 입장을 취해 많은 비난을 받았던 KBS노동조합은 더욱 그렇다. 프로그램제작에 있어 그들은 프로지만 언론인으로서의 책임과 사명감은 이 아마추어들보다 한 참 부족했다. 앞으로 이어질 방송악법 저지 투쟁에서도 KBS노동조합이 지난 언론노조파업 때와 같은 과오를 되풀이 한다면 차라리 자신들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에  “ 이 프로그램은 KBS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으로 시청자의 입장과 다릅니다” 라는 문구를  첫 화면에 넣고 방송을 하는게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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