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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박건식 MBC PD(미국 미주리대 탐사보도협회 연수중)

오바마가  ‘통합열차’를 타고 드디어 워싱턴에 도착했다. 건국 당시 수도였던 필라델피아에서 기차를 타고 ‘변화의 기적’을 울리며 워싱턴으로 향한 것은 미국을 새로운 국가로 개조하겠다는 오바마의 의지로 읽힌다. 그런데 오바마가 울리는 ‘변화의 기적 소리’는 미디어 정책을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 오바마의 미디어 철학은 정책공약 사이트( http://www.barackobama.com/issues/technology)에 잘 나타나 있다.

오바마의 철학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열린 인터넷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한 완전하고도 자유로운 사상의 자유보장’이다. 이를 구현할 정책적 장치는 망중립성 보장과 신문, 방송 겸영 금지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인터넷을 민주주의 실현의 도구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한 정책적 장치는 광대역통신망의 인프라 구축을 들 수 있다. 빈부의 차이가 없이 모든 사람이 인터넷에 접근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오바마는 이 분야를 정보 민주화의 핵심으로 보고 있으며, 또한 미국 경제를 일으킬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다.

오바마는 신문방송 겸영반대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2009년 1월 18일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에서 열린 자신의 대통령 취임 이틀전 축하 음악 콘서트 "우리는 하나"에서 연설하고 있다. 오바마 당선자는 2009년 1월 20일 미국의 제 44대 대통령에 공식 취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오바마의 신문 방송 겸영에 대한 반대 입장은 이미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해 한 방송주간지와 의 인터뷰에서 “몇몇 대기업에 의한 미디어 독점은 각 언론사의 색깔과 취재원의 다양성을 제한시키는 동시에 지역 뉴스의 감소, 미디어간 같은 내용의 반복 등 여러 측면에서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했다. 오바마는 또 2007년 FCC가 신문방송 겸영을 일부 허용하는 정책을 내놓자, FCC에 항의서한을 보내고 동료 의원들과 함께 이를 무력화시키는 법안(‘도건 로트 오바마 법안’)을 내놓기도 했다.

오바마는 왜 그토록 신문 방송 겸영에 대해 반대하는 것일까? 오바마의 미디어 철학은 미국 방송통신위원회(FCC) 정책 실패의 역사와 무관치 않다. 그 동안 미국 FCC의 미디어 정책은  경쟁 모델에 집중해  진입 장벽 완화 등의 규제완화를 통해  고도로 집중된  독과점 미디어를 만들어 오는데 골몰해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96년 통신법의 규제완화였다. 96년 통신법은 한 개의 라디오기업이 소유할 수 있는 전국 라디오국 수의 제한을 철폐했고, 전국 시청자 도달률이 35% 이하일 경우, 한 개 기업이 소유할 수 있는 TV 방송국 수의 제한을 없앴으며, 네트워크와 케이블간, 케이블과 지역방송국간에 겸영을 허용하고 있다.

이 법안의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40여 개의 라디오 방송사를 소유하고 있던 클리어 채널 커뮤니케이션스(Clear Channel Communications)는 법안통과 후 무려 1, 200여개의 라디오 방송사를 소유 라디오 시장에서 강자로 군림하며 여론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이 과정을 통해 타임워너, 디즈니(ABC), 뉴스 코퍼레이션(FOX), 비아컴(CBS), GE(NBC)  등의  거대 독점 미디어 재벌과 복합 미디어그룹들이 독과점의 지위를 확보해나갔다. 그러는 사이, 다양성은 실종돼 갔다. 소유의 다양성이 실종돼 가면서 ‘견해의 다양성’, ‘출구의 다양성(outlet diversity)’, ‘콘텐츠  다양성’, ‘콘텐츠 생산자의  다양성’, ‘소수자, 약자(minority) 다양성' 등이 같이 사라져 갔다.

다양성이 실종될수록 사상의 공론장이 사라지고, 언론은 점점 기업의 이해관계에 예속돼 갔다. 다양한 계층과 인종, 약자의 의견이 반영된 정보가 실종되고 공공의 이익보다는 언론사주 이익에 종속되는 보도가 늘어갔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미국 국민들의 몫이 됐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2001년 이라크  침공이었다. 당시 미국의 방송들은  이라크 침공에 부시의 ‘나팔수’나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전쟁을 반대하는 주장이나 다양한 목소리는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이는 결과적으로 미국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수많은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데 일조를 했다. 5개의 거대 미디어 그룹이 담합하면 미국인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또한, 미디어 재벌들이 영향력을 행사해서 대통령선거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2004년 공화당의 부시 후보와 민주당의 케리가 접전을 벌이던 대선 막바지 무렵, 보수 미디어 재벌인 싱클레어 그룹은 존 케리의 베트남전 반전운동을 비난하는 ‘도둑맞은 명예’라는 다큐멘터리를 산하 62개 방송사에서 방영키로 해서 파문을 일으켰다. 광고불매운동까지 일어나자, 싱클레어 그룹은 방송계획을 철회했지만, 미국 가구의 1/4을 시청자로 확보한 싱클레어 그룹의 도박은 미디어 재벌이 고의적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대통령 선택권마저 가로챌 수 있다는 위험성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싱클레어의 도박의 배경에는 미디어 소유제한 규정이 들어있었다. 싱클레어 그룹은 미디어 소유제한규정의 완화를 위해 부시 진영을 지지하고, 거액의 선거자금을 지원했던 것이다.

미디어 소유 집중은 선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96년 통신법 제정이후 미디어 기업 간의 M&A가 활발했고, 경쟁이 가속화됨에 따라 저질 프로그램이 양산되고 음란, 외설물이 범람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2003년 신문 겸영 법안에 대해 시청자 단체들이 반대하고, 의회에서 부결되는 결정적 단초를 제공했다.

그러면 FCC의 소유규제완화는 경제적인 면에서는 성공했는가? 많은 전문가들은 현재 미국의 경제위기가 80년대 탈규제 일변도의 무분별한 M&A정책이 낳은 후유증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최근 위기를 씨티은행이 잘 보여주고 있지만, 미디어에서도 후유증이 적지 않다.

당시 황금알을 낳은 거위로 기대를 모았던 AOL- 타임워너의 합병은 실패로 끝났으며, AOL과 타임워너는 잘못된 만남의 대가로 1200억 달러의 주가하락을 경험해야 했다. 당시 세계 2위의 비방디 그룹도 케이블 TV업체인 USA 네트워크를 인수하면서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몰락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또한 최근의 연속적인 신문 위기도 미디어 소유규제 완화와 무관치 않다. 이들 트리뷴컴퍼니 같은 신문재벌들은 신문 방송 소유규제가 풀리자 무리하게 자금을 들여 방송사를 인수 합병하였다가 결국 막대한 부채에 따른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신청을 하기에 이르렀으며, 나머지 신문들도 급격하게 늘어난 매체로 인한 과도한 시장의 경쟁에서 배겨나지 못하고 쓰러지고 있는 것이다.

공익을 향한 오바마의 계획

▲ 2009년 1월 20일 미국의 제 44대 대통령에 공식 취임한 버락 오바마.
그러면, 소비자에게는 이익이었는가? 미디어 시장의 독과점 심화로 인해 공정하고 건전한 경쟁 시스템이 사라지면서 케이블TV 요금은 기하급수적으로 인상되었다. 부시 대통령이 임명한 케빈 마틴 FCC 위원장조차 “미국 소비자들의 최대 두통거리는 케이블 TV 요금”이라며 개탄하기에 이르렀다. 규제완화를 통한 경쟁체제 도입으로 소비자에게 값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FCC의 목표가 경쟁을 넘은 독과점의 형성으로 오히려 소비자의 목을 죄는 본말전도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결국 오바마를 비롯한 공익론자들은 그동안의 무분별한 탈규제에 의한 경쟁체제 도입이 방송내용에서나 경제적 측면에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미디어 난개발로 인한 선정성 확대, 다양성 실종 같은 부작용만 낳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오바마는 다양성 확보를 위해서 신문 방송 겸영을 반대하고, 방송의 공영성과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구체적인 조치들을 행하겠다고 공약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흑인들과 히스패닉 이민자 등 소수 인종의 방송, 여성 방송 등에 대한 플랫폼 지원하기 위해 그동안 중단되었던 ‘소수자 납세 증명(MINORITY TAX CERTIFICATE) 법안’이 부활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소수자가 소유한 회사에 방송사를 팔 경우, 세제 혜택을 주는 제도를 말한다. 또 소출력 라디오(LPFM)를 활성화하는 법안과 지역방송의 지역성을 강화하는 정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오바마는 공영성 강화에 대해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공공 미디어 즉, 가칭 ‘퍼블릭 미디어 2.0(Public Media 2.0)’를 선포했다. ‘퍼블릭 미디어 2.0’은 ‘디지털시대의 새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 of the Digital Age)’, 쌍방향의 교육 정보 프로그램을 만드는  차세대  공공 미디어로 정의되고 있다. 또한 그동안 케이블TV에서 사장되다시피 했던 공공, 교육, 정부 (PEG)  엑세스 채널의 활성화도 법안으로 강제될 가능성이 높다. 지상파에 대한 공익성 의무 규제를 도입하는 안이 미디어 공약에 포함돼 있다. 미국 현지에서는 공익 프로그램 의무편성 부과, PBS와 같은 공영방송 지원 등이 뒤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은 세계추세에 역주행

반면, 한국은 이러한 세계적 추세와 정반대의 길을 가려고 하는 듯하다. 최근의 신문, 방송 겸영 주장은 해외의 사례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 무분별한 탈규제와 미디어 난개발의 실패에서도 타산지석을 얻지 못한 무모한 시도에 불과하다. 그동안 케이블, DMB, 위성채널, 씨티폰, IMT-2000 등에 대한 황금빛  전망은 모두 빗나갔고 사업자들과 종업원들은 거리에 내몰렸다. 그러나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청난 디지털 전화비용, 폭등한 중계권료, 포화상태의 광고시장 등으로 세계 2위의 미디어재벌  ‘비방디’와 독일의 ‘키르히’ 그룹, 스페인의 키에로, 영국의 디지털 방송사 ITV 등 세계적 미디어그룹들이 파산했거나 하고 있지만, 한국의 신문기업들은 공멸의 목표점을 향해 질주해 가는 부나방처럼 방송시장으로 몰려들지 못해 안달하고 있다.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심지어는 지상파까지 인수 합병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 박건식 MBC PD
그러나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인수합병의 후유증과 늘어난 매체로 인한 치열한 광고 쟁탈전으로 인한 신문기업의 도산과 파산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세계의 많은 미디어 기업들은 실속없는 무모한 인수, 합병을 택하기보다는 IPTV와 같은 신규 플랫폼에 뛰어들고 있지 않은가? 방송통신위원회는 장밋빛 전망으로 국민들을 호도할 것이 아니라, 무분별한 소유 규제의 완화가 가져 올 재앙에 대해서 면밀한 검토를 먼저 하는 것이 순서다. 그동안 통신과 방송이 결합하여 성공한 사례가 있는가? 일본을 제외하고 신문과 방송이 결합하여 성과를 낸 곳이 있는가? 그리고 소비자에게 혜택을 가져다 주었는가? 아니면 소비자의 호주머니만 털었는가? 이처럼 명약관화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방송통신위원회가 계속 신문방송 겸영을 고집한다면 그건 한 가지 이유밖에 없을 것이다. 바로 정치적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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