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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되리라. 낡고 슬픈 이 땅에서 환희는 빌려야만 하고, 고통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멋진 시야. 고통이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다니 말이지. 정말 재미있지 않아? 난 언제나 웃고 있단 말이야, 온 세상과 함께.

사람들은 내 얼굴에 난 상처를 궁금해 하지. 근데 난 상처가 없으면서도 상처투성이인 그들의 얼굴이 더 궁금해. Why so serious? 왜들 그리 심각해? 심각하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그냥 지금에 순응하면 돼, 착하게, 착하게 말이지.

뻥 뚫어버린 은행이며 잿더미가 된 돈, 막혀버린 입. 불타버린 도시, 다시 돌려 버린 시간… 자 이만하면 내가 이 도시에 무슨 일을 했는지 알겠나? 난 그저 내가 잘 할 수 있는 걸 했을 뿐이야. 계획이란 걸 살짝 손대었을 뿐이지. 계획대로 돌아갈 땐 아무도 혼란스러워 하지 않아. 그 계획이 아무리 끔찍해도 말이야. 계획대로 돌아가는 걸 원치 않은 게 나뿐이었던 건 아니지? 당신들의 이기와 탐욕이 이 광대의 존재를 원한 건 아니었던가? 근사하게 얘기하자면, 파리대왕이란 걸 만들어 내었던 게 아니던가? 음… 파리… 추악하면서도 근사해….

평범한 시민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것은 이 도시에 어울리지 않아. 더구나 가면까지 쓴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지. 이 도시의 진정한 평화를 위한다면 그 가면을 벗고 정체를 드러내야지. 이 도시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나? 아니, 그 가면이 이 도시를 이렇게 미치도록 만든 거야. 무엇을 증명하고 싶냐고? 사람들이 나처럼 추악하다는 거, 탐욕스럽다는 거, 자신이 살기위해 남은 폭파되어도 알 바 아니라는 거. 정말 재밌는 세상이야. 이런 추악한 시대에 선량한 인간이 되겠다는 거야? 틀린 거야! 이리와, 나랑 놀아야지.

혼돈의 미덕이 무엇인 줄 아나? 바로 공평하다는 거지.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이 없다 말하지. 그래도 그 때까지 빛이 어둠에 짓눌려 그저 숨을 헉헉대며 꿈틀거리기만 하는 모습이 얼마나 멋진가 말이야. 차갑고 음험한 동트기 전을 떠올려 보란 말이지. 고통스럽나? 어둠의 기운은 그런 거라네. 혼돈은 그런 거라네. 웃게나. 웃지 않으면 내 그 얼굴에 미소를 새겨 주지, 나처럼 말일세. 내 얼굴에 상처가 왜 생겼는지 말했던가? 아 참, 이미 말했군.
자 그럼 묻겠네, 그래 지금 그대들 앞의 혼돈이 공평은 한가?

▲ 김기슭 SBS 제작본부 PD

“파리대왕이 생겨나는 것은 세속의 운명이지만, 그 파리대왕이 독수리대왕으로 자라게 두는 것은 우리의 타락이다.” -[김영민의 영화와 인문] 中에서, 한겨레신문 10월 31일자

* 이 글의 상당 부분은 영화 〈다크 나이트〉의 대사임을 밝힙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께는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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