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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의 미디어리터러시(43)]

▲ 고승우 박사
막장 드라마 홍수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상식을 파괴하거나 상상을 초월하는 반윤리적 내용 등이 주로 다뤄지는 막장 드라마는 좀 더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것을 소개하면서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꽃보다 남자’, ‘아내의 유혹’ 등은 높은 인기와 함께 비난을 동시에 받는다. 막장드라마는 보통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어 ‘저건 아닌데’ 하거나 심할 경우 욕을 자아내게 하지만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TV 드라마의 사회적 수용 여부를 판가름하는 잣대의 하나는 시청률이다. TV가 감성적 미디어라는 점에서 시청자가 외면하는 비호감이 매우 높은 드라마의 시청률이 지속적으로 고공행진을 하기 어렵다. 특정 장르의 드라마가 큰 흐름을 이루는 것을 단순히 하나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복잡해지고 미세한 차이를 가진 수많은 기호 층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막장 드라마가 대세를 이루면서 TV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막장 드라마의 흐름이 꽤 오랫동안 지속되며 방송사들이 앞 다퉈 경쟁하는 것을 보면 그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막장 드라마가 안방극장을 지배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사회가 막장 드라마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단순치 않을 것이다. 막장 드라마의 특성인 반사회성, 반 윤리성 등으로 이 사회가 크게 오염되어 있다는 증거인가?

보통사람들이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비현실적, 반윤리적인 스토리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인가? 경제난으로 시달리는 서민들이 현실의 고통을 상쇄할 수 있는 오락수단으로 막장드라마를 선택하게 되는 것인가? 단순히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며  호기심 충족이나 대리만족 차원에 그치는 것인가? 아니면 악마적인 심정으로 막장 드라마를 즐기는 것인가? 이상과 같은 여러 문제제기가 가능하겠지만 이 가운데 바로 이것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먼저 가장 원론적인 차원으로 돌아가서 막장 드라마의 인기 비결을 추정해 보자. 사람들이 왜 TV 드라마를 시청하는가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TV 드라마를 오락수단으로 여긴다. 드라마를 통해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TV 속에 푹 빠져 버리고 싶은 욕구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TV를 켠 뒤에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자신의 감성에 와 닿는 프로를 선택한다.

몇몇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일부 사람에게 TV 시청은 하루 일과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TV 시청에서 잠시 동안의 행복을 맛보게 되는데 그것은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전반적인 불쾌한 경험 때문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대부분의 시청자에게 막장 드라마는 행복한 시간을 갖게 하는 수단일 뿐이다.

▲ 30%가 넘는 시청률로 인기를 끌고 있는 SBS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 ⓒSBS
다음으로 TV 막장 드라마가 반사회적, 반윤리적 풍조로 넘쳐나는 사회상을 반영하는가 하는 점이다. 즉 사회가 크게 잘못되었기 때문에 막장 드라마의 섬뜩하고 비상식적인 스토리가 잘 먹히고 모방범죄가 다시 발생하는 악순환이 일어나는가 하는 의문이다. TV의 폭력성이 시청자, 특히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란은 지난 반세기 동안 지속되고 있는 첨예한 문제다.

다수 학자들은 미디어 폭력성과 사회적 폭력성간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부 미국의 사회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 미국에서 미디어 프로의 폭력성은 높아진 반면 범죄발생률은 감소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미디어 폭력성, 반 윤리성 등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란은 당분간 더 지속될 전망이어서 막장 드라마와 사회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단정 짓기 어렵다.  

끝으로 시청자들이 막장 드라마를 영화처럼 단순한 오락수단으로 여기지 않나 하는 점이다. 이 점을 검증하기 위해 막장 드라마를 영화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 영화를 감상할 때 사람들은 영화가 제시하는 내용을 거부감 없이 받아드린다. 예를 들어 어떤 영화가 미래의 우주전쟁에 관한 것이거나 흡혈귀에 대한 내용으로 우리 현실에서 전혀 무관한 황당무계한 것일지라도 관람객은 그 같은 상황설정 또는 내용에 대해 별다른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영화 내용에 흠뻑 빠져드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화 등의 상황설정에 대해 ‘왜 저런 식으로 내용을 전개하지?’라는 식의 의문을 제기하게 되면 통상적인 영화감상은 이뤄지지 못한다. 어떤 영화가 제시하는 상황설정에 대해 의심하고 부정한다면 스크린에서 전개되는 스토리는 관람객에게 아무런 감흥을 줄 수 없다.

익히 알려진 영화 가운데 스타워즈, 에일리언, 주라기 공원, 친구 등과 같은 영화는 스토리가 비현실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파괴적인 우주괴물이나 공룡, 귀신들이 출현하는 것이 하나의 현실로 제시된다든가, 조폭들이 판을 치지만 공권력이 무력한 사회 등을 대전제로 삼아 영화가 전개된다. 공상과학 영화에서 나오는 주인공 급 우주생물은 대부분 인간의 피에 굶주려 있고 엄청난 괴력으로 지구를 위협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이처럼 영화 팬들은 영화 스토리가 꾸며낸 것인지, 아니면 실제 발생한 일인지를 불문하고 일단 그것들을 받아드리면서 감상하려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보통이다.

영화 감상에서 나타나는 수용자들의 태도가 막장 드라마 시청자에서도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안방극장의 시청자들은 일반 영화에서처럼 막장 드라마의 스토리를 별다른 비판의식 없이 감상하면서 즐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안방극장 드라마의 소재가 최근 불륜, 복수,폭력, 불치병 등 충격적이고 선정적인 것은 영화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오늘날 영화나 드라마는 안방극장의 주요 프로가 된지 오래여서 두 부문이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다. 따라서 막장 드라마가 영화를 닮아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추세다.

▲ 주인공 은재(장서희)와 악녀 애리(김서형)는 종종 악을 쓰며 감정을 토해낸다. ⓒSBS
그러나 영화와 드라마의 영역이 완전 동일할 수는 없기 때문에 막장 드라마의 범람이 바람직스런 현상은 아니다. 그 대안은 무엇일까? 건전하고 계몽적인 드라마일까? 이런 발상은 권력이 방송을 지배하던 지난 수십 년 동안 지겹게 되풀이 되어온 고정메뉴였다. 오늘날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한 제 3세계권의 드라마는 TV 멜로드라마를 경제사회발전에 기여할 계몽수단으로 적극 활용한다. 유엔에서도 발 벗고 나선 상태다. TV 멜로드라마의 대중적 인기가 대단하기 때문에 거기에 사회 발전에 대한 의식 수준을 끌어올릴 내용을 방영할 경우 그 효과가 매우 크다는 취지다.

우리 현실에서 이런 주장을 하다가는 큰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의 창의력, 창작의 자유에 대한 신념이 하늘을 찌르기 때문이다. 개도국 쪽에서 TV 드라마를 계몽용으로 활용하려는 추세 탓인지 다양한 주제의 한국 드라마가 일부 외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한류의 원동력의 한 부분이 되고 있다.

시청률을 외면한 드라마는 생각키 어렵다. 그러나 시청률 지상주의는 막장 드라마 범람을 피하기 어렵다.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좀 더 강렬한 자극과 감흥을 주어야 먹힌다는 공식이 주는 피해는 만만치 않다. 비현실적, 비윤리적인 드라마를 청소년을 포함한 가족 구성원들이 무차별 시청하는 것은 분명 안방의 공기를 탁하게 만든다. 그래서 지금 막장 드라마에 대해 방송 현업은 물론 사회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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