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선종 뉴스가 불편한 이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수첩] 조중동 & 방송3사의 김 추기경 보도를 보며

불편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도가 지나치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소식을 전하는 언론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물론 나 역시 천주교 신자다. 그래서 지난 16일, 김수환 추기경 선종 소식을 듣고 많이 안타까워했던 사람 중 하나다.

그러나 추기경 선종 이후 보이는 언론 보도 태도는 그 ‘저의’가 의심될 정도로 너무 많이 나갔다. 1993년, 역시 종교계와 우리사회의 ‘큰 어른’이었던 성철스님 열반 당시 보도와 비교해도 이건 지나치다. 보도의 양과 질, 둘 다 문제다.

비슷한 내용 확대 재생산…시시콜콜한 얘기까지 ‘주요’ 뉴스로 등장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지난 16일부터 KBS, MBC, SBS 등 방송3사를 포함해 주요 언론들은 추기경 관련 뉴스를 대량으로 쏟아내고 있다. 소위 말하는 ‘도배질’이 시작됐다.

가장 적게 보도한 MBC가 3일 평균 8.3건이었고, SBS 8.6건, KBS는 무려 11.6건에 달했다. KBS, MBC는 3일 연속 김수환 추기경 선종 뉴스를 톱으로 다루며 계속해서 ‘주요’ 뉴스로 처리했다. SBS만이 3일째 보도에서 김 추기경 관련 뉴스를 네 번째 배치했을 뿐이다.

▲ <중앙일보> 2월 19일 1면.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추모 열기를 ‘명동기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간지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김 추기경 선종 뉴스를 3일 연속 1면에 배치하고, 여러 건의 관련 기사를 실으며 ‘열의’를 보이고 있다.

조선은 17일부터 3일 내내 1면과 4~5면에 김 추기경 관련 기사를 실었다. 17일 무려 6면(1면~6면)에 걸쳐 선종 소식을 보도한 중앙은 18~19일에도 3~4면씩 보도를 냈다. 중앙은 19일자 신문에서 4면~11면의 지면 상단을 조문객 행렬 사진으로 배치하는 파격적 편집을 선보이기도 했다. 동아 역시 3일 동안 1면을 포함해 4~5면씩 기사를 쏟아냈다.

이처럼 대다수의 언론이 많은 양의 보도를 쏟아내다 보니 기사는 그리 새로울 것 없는 내용들로 채워지고 있다. 언론사들마다 비슷한 내용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김 추기경의 생애와 업적 등을 돌아보는 기사와 ‘혜화동 할아버지’로 불렸던 인간 김수환에 대한 조명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여기까지는 짚어줄 만하다. 이해한다. 다음이 문제다.

전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권 인사, 일반인, 저명인사들의 애도 물결이 각각의 꼭지로 기사화되고 있다. 심지어 장례절차를 비롯해 김 추기경이 안치된 유리관에 대한 시시콜콜한 설명까지 ‘주요’ 뉴스로 등장했다.

KBS <뉴스9>는 18일 보도에서 유리관의 숨은 비결에 대해 알아보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관 내부는 항상 섭씨 4.5도~6도를 유지하도록 항온 설비돼있어 김 추기경의 생전 모습 그대로 시신이 유지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조문객 수는 어느새 스포츠 중계가 돼버렸다. 언론은 연일 조문객 수가 얼마를 기록했다고 보도한다. 단적으로 18일 MBC <뉴스데스크>는 톱기사를 통해 김 추기경에 대한 조문객이 20만 명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김 추기경 관련 뉴스가 끝나는 8번째 꼭지에서 다시 명동성당에 나가 있는 취재 기자를 연결해 조문 행렬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굳이 같은 내용의 기사를 두 꼭지로 나눠 전할 필요가 있었을까.

▲ KBS <뉴스9> 2월 18일. 김수환 추기경이 안치된 유리관에 대한 설명을 하는 리포트를 하고 있다.

▲ MBC <뉴스데스크> 2월 19일. 조문 열기를 보도하기 위해 명동성당에 나가 있는 현장기자를 연결하고 있다.

 

 

 

 

 

 

 

 
성철 스님 열반 당시 단 두 꼭지 보도했던 언론이…

김수환 추기경을 향한 언론의 이러한 ‘과열 보도’는 지난 1993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성철 스님 열반 당시와도 확연하게 비교된다.

성철 스님 열반과 관련해 당시 MBC <뉴스데스크>는 단 ‘두 꼭지’만을 보도했을 뿐이다. 열반했다는 소식과 성철 스님의 생애, 업적을 짚는 기사였다. 성철 스님 열반과 관련, ‘최소한’으로 해야 할 보도를 한 것이다. 열반 소식이 톱기사는 더더욱 아니었다.

사실 이 정도로 충분하다. 종교계 지도자이자 우리사회의 ‘큰 어른’이 돌아가셨을 때 그의 생애와 업적을 소개하고,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짚어주는 정도면 충분하다. 상황에 따라 여기에 한 두개의 살을 더 붙여주는 정도면 족하다.

1993년과 지금을, 그리고 성철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까. 그러나 선종한 첫날도 아니고 3~4일째가 되는 지금까지도 이 사안이 계속 ‘주요’ 뉴스로 다뤄지고 있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추모 열기 등 사회적 파장이 크다 해도 마찬가지다.

▲ <조선일보> 2월 19일 1면.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추모 열기를 신드롬으로 표현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 신드롬’ 만드는 이 누구인가 

언론은 늘 보도하는 과정에서 취사선택의 문제가 따른다. 시간과 지면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하나의 이슈가 보도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경우 상대적으로 다른 이슈들은 덜 중요하게 다뤄지거나 묻히기 쉽다는 말이다.

언론이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와 업적, 추모 열기 등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동안 우리사회의 다른 중요한 이슈들은 ‘묻히고’ 있다.

바로 얼마 전, 연쇄살인 피의자 강 모 씨 사건으로 ‘용산참사’를 덮으라고 지시했던 청와대 홍보지침 파문이 터졌다. 그때 역시 언론은 강 씨 사건으로 방송뉴스와 신문지면을 ‘도배’했고, 결과적으로 ‘용산참사’ 등 다른 중요한 이슈들이 쉽게 묻히는 데 일조했다.

이에 대해 조중동은 물론 방송3사는 소극 보도로 일관했고, 여전히 의혹은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런데 불과 며칠 만에 언론은 이와 같은 잘못을 똑같이 되풀이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모 행렬을 조선은 ‘김수환 추기경 신드롬’으로, 중앙은 ‘명동 기적’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정작 신드롬 혹은 기적을 만들고 싶은 것은 이들 언론 아닐까.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