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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세상읽기]

▲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88만원 세대 저자)
나는 책과 칼럼이라는 두 개의 매체를 주로 활용하는 편이고, 방송에 나가는 일은 정말 최소한으로 하려는 편이다. 무엇보다도 대인기피증이 심해서 카메라 앞에 서는 게 편한 일이 아닌데다가, 말도 상당히 어눌하게 하는 편이라서 그렇다.

어쨌든 내가 만들어 내거나 재조합한 개념들은 주로 책을 통해서 소개하는 편이고, 그러다보니 칼럼은 책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들을 위주로 쓰다 보니, 좀 헐겁다고 반성하는 일이 많다. 그렇다고 책에서 이미 한 얘기를 칼럼에서 다시 한 번 하는 건 양심이 잘 허락하지 않아, 결국 글을 쓸 때마다 매번 새로운 소재와 주제를 생각해야 하는 부담이 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오늘은 다음 책을 위해서 준비하는 내용을 독자 여러분들에게 미리 소개하려고 한다. ‘경제 대장정’이라는 12권짜리 시리즈의 가운데 토막에 들어가 있는 생태경제학 시리즈에서 하이라이트의 위치에 놓을 개념 중의 하나인, ‘신개발동맹’에 관한 것이다. 개발동맹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얘기가 된 것 같고, 딱히 무엇이라고 지칭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다.

박정희 시절의 경제개발을 추진하면서 생겨난 일종의 동맹체가 개발동맹이라고 할 수 있다. 새마을운동의 지도자에서 정치군인들까지 상층부를 맡고, 건설사를 일종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모기업으로 활용한 재벌, 그리고 관치 금융의 자금줄을 맡은 은행과 모피아, 이 정도가 개발동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던 시대는 이 개발동맹이 10년 만에 한국 정치를 장악해서, 과연 70~80년대에 한국이 얼마나 후진국이었던가를 다시 한 번 환기시켜주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국민소득 2만불에 재집권을 했는데, 작년처럼 마이너스 성장을 기계적으로 5년간 계속한다고 계산을 해보니, 11,809달러까지 1인당 국민소득이 내려가게 된다. 모르긴 몰라도 이명박 5년이 끝날 때 한국의 객관적인 경제적 모습이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실물에서 -5%, 환율에서 -5% 정도를 5년 정도하면 이렇게 된다. 나한테 내기 걸라고 하면, 80%의 확률로 5년 내에 만불 초반대의 국민소득이 될 것이라고 내기할 것 같은데, 20%의 확률로는 이 과정에서 다이나믹이 생겨나서 만불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라고 할 것 같다.

그런데도 이 상황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한국에 ‘신개발동맹’이라는 것이 생겨나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이 신개발동맹은 다른 OECD 국가에는 없고 한국에만 있는 것인데, 중산층 이상의 ‘극성스런 엄마’, 이들의 강력한 동맹자 사교육 세력, 그리고 이 틈을 비집고 ‘경제교육’을 초등학교에까지 밀어 넣으려는 전경련, 그리고 결국 대치동을 한국의 중심으로 만들게 되는 일련의 동맹세력을 ‘신개발동맹’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SBS 드라마 <강남 엄마 따라잡기> ⓒSBS
이들이 움직이는 산업은 사교육과 강남 3구를 축으로 하는 아파트 거품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신개발동맹이 하는 일은 딱 두 가지인데, 10대들을 바보로 만드는 일, 그래서 그들이 희망을 생각하고, 다양성을 가질 수 있는 일들을 원천적으로 막아 구 개발동맹의 ‘영구집권’을 돕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무서운 것은, 이들은 건전한 국민경제, 정상적인 창업, 혹은 다양한 문화와 지식을 억누르면서도, 순전히 ‘CEO 최고’라는 가치관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구개발동맹의 축은 청와대에서 시작했지만, 신개발동맹의 축은 대치동에서 도곡동 사이의 그 어느 곳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두 개의 축의 공통점은 우민화 교육인데, 이제 이 우민화가 초등학생 단계까지 밀고 들어갔으니, 이 변화는 어느 정도 비가역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구개발동맹은 국민경제의 거시적 성과라는 축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유혹했는데, 신개발동맹은 개인경제의 미시적 성과라는 축을 중심으로 유혹의 범위를 넓히고 있는 중이다. 구개발동맹이 달러로 표시된 ‘국민소득’이라는 변수로 성과를 과시했다면, 신개발동맹은 일제고사로 표시된 ‘등수’를 변수로 성과를 과시한다.

자, 그럼 어찌할까? 구개발동맹과의 싸움을 한국에서는 ‘민주화’라고 부른 것 같다. 그렇다면 신개발동맹과의 싸움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나? 그런 싸움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같기는 하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두면, 아마 국민소득이 만불 혹은 그 이하로 내려갈 때까지, 이 사교육과 경제교육 열풍은 강남 3구 버블과 함께 계속 작동하고, ‘똑똑한 아이’는 외국으로 보내는 이 신개발동맹의 폐해와의 싸움, 이것을 무엇이 될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경제위기의 한 가운데, ‘엄마 동맹군’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고, 여기에 대항하는 힘은 아직은 미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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