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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와 불순의 사이

|contsmark0|얼핏보면 재미있는 프로그램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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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시도도 색다르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contsmark4|mbc의 <전파견문록>에 대한 단상(短想)이다.
|contsmark5|어린이들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어린이들의 감성이 묻어나는 모습이 청량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contsmark6|그 덕분에 어린이들의 설명과 그 설명을 바탕으로 답을 찾아가는 출연진들의 모습에 내내 웃음을 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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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9|그러나 옷을 잘못 입었을 때처럼 어딘지 좀 이상하다.
|contsmark10|다시 한번 찬찬히 곱씹어 본다.
|contsmark11|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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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4|<전파 견문록>은 ‘퀴즈 순수의 시대’, ‘퀴즈 순수 나라’, ‘순수 대상 시상식’이라는 코너에서 보이듯 유난히 순수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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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7|겉으로는 어린이들이 주인공이고, 주된 내용이 어린이들의 해맑은 눈을 통해서 본 세상이기 때문에 그러한 강조는 능히 이해할만 하다.
|contsmark18|그런데 그러한 강조가 참으로 어색해 보인다.
|contsmark19|아마도 이상함의 이유는 그 어색함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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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2|우선 <전파견문록>의 주인공은 어린이들이 아니다.
|contsmark23|단지 어린이들은 흥미로운 소재로 만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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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6|사실 어린이들이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일 수는 없다.
|contsmark27|다만 어린이들의 시각이나 생각이 프로그램 내내 철저하게 주변 요소로 기능하고 있음에도 어린이들의 순수성을 지나치게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contsmark28|어린이들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아니라 도구나 수단인 상황에서 불순한 의도의 단초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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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1|이러한 문제점은 퀴즈를 풀어 가는 과정에서 더 잘 드러난다.
|contsmark32|퀴즈를 풀기 위한 과정에서 두 팀으로 나뉜 출연자들은 상대팀에게 서로 힌트를 주지만 대부분은 상대를 교란시키기 위한 것이고, 덩달아 사회자나 방청객들도 퀴즈를 쉽게 맞힐 수 없도록 방해 공작을 펴나간다.
|contsmark33|순수의 길이 멀고도 험난하다는 극적 이미지를 노린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 과정들은 우리 일상의 추잡한 한 단면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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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6|서로의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에 음모가 도사리고 있으며, 배신이 난무하기도 한다.
|contsmark37|그 속에서 어린이들을 제외한 모두(출연진들, 방청객들, 사회자)는 서로를 불신하며, 덕분에 얄팍한 농간이 횡행하는 공간이 마련된다.
|contsmark38|그 곳에서 어린이들의 존재는 외면을 당한다.
|contsmark39|순수가 불순의 구렁텅이로 전락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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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2|불순의 구렁텅이는 이제 극으로 치닫는다.
|contsmark43|동심의 순수를 이해한다는 명목아래 <전파견문록>은 팀간의 경쟁을 조장하고, 심지어는 일상에서 흔히 보는 ‘뒤짚기 한 판’을 벌인다.
|contsmark44|왜? 그 뒤에는 이것저것을 마구 섞어놓아 먹기조차 힘든 칵테일을 한 입에 마셔야만 하는 가공할 벌칙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contsmark45|그래서 출연진들은 규칙을 무시한 채 자신들이 쌓아온 과거의 노력들을 무화시키고 한판승에 목숨을 건다.
|contsmark46|이미 승패가 났음에도 ‘순수 대상 시상식’이라는 한판에 모든 것을 건다는 말이다.
|contsmark47|모 아니면 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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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0|최후의 순간.
|contsmark51|패한 팀은 가공할 칵테일을 마시는 벌칙을 받아야 하는데, 벌칙은 모래 더미에 꽂힌 깃발을 쓰러뜨리는 사람에게 행해진다.
|contsmark52|그래서 패한 팀의 구성원들에게 더 이상 동료애는 없다.
|contsmark53|그들은 서로 벌칙을 안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한다.
|contsmark54|타인이 죽지 않으면 내가 죽기에 경쟁은 처절하다.
|contsmark55|그래서 종전까지 팀워크를 유지하던 그들에게서 이기성이 빛을 발한다.
|contsmark56|특히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더 먹기 힘든 칵테일을 만들도록 사회자에게 요구한다. 드디어 고난의 십자가를 질 사람이 결정되고, 그 사람은 사회자가 누차 강조해왔던 공포의 칵테일을 마신다.
|contsmark57|가학성 및 인간 관계의 추잡한 단면이 드러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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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0|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contsmark61|약속을 했으면 칵테일을 다 마시든가 할 일이지, 벌칙 원샷임에도 사회자는 실제로는 조그만 컵에, 그것도 희석한 칵테일을 건네주며, 칵테일을 마셔야 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는 칵테일을 입안에만 머금고 있다가 뱉는다.
|contsmark62|어른들의 이해에 따라 어른들 스스로가 행한 약속이 허물어지는 과정이다.
|contsmark63|그것도 동심의 순수를 앞에다 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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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6|과연 어디에서 순수를 찾을 수 있는가?
|contsmark67|제작진은 말한다.
|contsmark68|<전파견문록>은 토요일 밤 시간대이긴 하지만 아이와 어른이 함께 보라고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또 아이들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어른들이 순수했던 시기를 돌이켜볼 기회를 주려고 했다고.
|contsmark69|물론 그러한 제작진의 생각에 동의할 수 있다.
|contsmark70|왜냐하면 어린이들을 성인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는 것 자체가 불순한 의도일 수는 없거니와 정말 어린이들의 순진한 말투와 모습을 어른들이 보면서 순수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마음을 순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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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73|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게 얼마나 억지주장인가를 알 수 있다.
|contsmark74|그 시간대에 tv를 시청하는 어린이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contsmark75|게다가 <전파견문록>이 어른들에게 순수했던 시절의 아름다운 마음으로 회귀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제공하고자 마련한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contsmark76|적어도 우리는 그 프로그램에서 순수를 보지 못했다.
|contsmark77|조금 흥미로와 했던 것은 문제를 풀어가는 어른들의 모습이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 예를 들면 배신이나 암투, 고의적인 모략 등 때문이었지 어린이들의 눈에 비친 세상이 아니었다.
|contsmark78|결국 우리에게 <전파견문록>은 어린이들의 천진무구한 순수함을 전달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순수를 도구로 전락시켜 시청률 높이기에 이용한 프로그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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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81|어린이들의 눈에 비친 세상을 보여주려거든 먼저 어린이다운 눈으로 세상을 보기를 바란다.
|contsmark82|어린이들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라는 말이다.
|contsmark83|순수를 불순하게 이용하면서 더 이상 어설픈 자기 변명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contsmark84|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워즈워드의 시구절을 권하고 싶다.
|contsmark85|겸허하게, 그리고 경건하게 어린이들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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