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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따져보기]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대행

EBS 다큐멘터리 〈한반도의 공룡〉이 국내 다큐멘터리 사상 최고가에 수출됐다. 프랑스 칸에서 개막된 국제영상프로그램박람회에서 알티엘디즈니와 50분 분량 2편을 10만 달러 이상에 판매하는데 성공했다. 좁게 보면 〈문자〉, 〈외계 생명체를 찾아서〉에 이은 ‘EBS 다큐멘터리 수출 전략’ 성과다.

그러나 넓게 보면 현재 국내 TV용 다큐멘터리는 모조리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철저히 해외 판매를 목적으로 한 블록버스터 다큐멘터리의 방향이다. 2007년 KBS 〈차마고도〉가 그 포문을 열었다. 지상파가 큰 성과를 거두자 케이블 Q채널까지도 방송통신위원회 지원을 받아 싱가포르 제작사와 〈아시아의 해적〉을 공동 제작, 러시아 등지 수출에 성공했다.

▲ EBS <한반도의 공룡>
물론 ‘수출용’이라 해서 해외에서만 각광받는 상황은 아니다. 국내 반응도 만만찮게 뒤따르고 있다. 〈한반도의 공룡〉은 본방 시 1부 2.79%, 2부 2.9% 시청률을 보여 EBS 다큐멘터리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차마고도〉 역시 6부작 평균시청률 11%로 집계됐다. 이에 따른 그늘도 물론 존재하긴 한다. 블록버스터 다큐멘터리에 밀려 저예산 휴먼 다큐멘터리는 점차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대표적 휴먼 다큐 프로그램 KBS 〈인간극장〉은 시청률 부진 탓에 지난 1월부터 2부작으로 줄었다. 〈다큐멘터리 3일〉, 〈현장르포 동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사미인곡〉 등도 반응은 다 ‘거기서 거기’다. 수출도 안 되고 시청률도 안 나오니 찬밥신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현상이 발견된다. TV를 떠나 극장으로 발을 옮기면, TV에서 안 팔리던 휴먼 다큐가 인기를 끌고 있다. TV 방영이 좌절돼 극장용으로 전환된 저예산 휴먼 다큐 〈워낭소리〉는 3월30일까지 285만 관객을 끌어 모았다. 올해 한국영화 흥행 1위다.

결국 공식은 이렇게 나온다. TV에서는 비싸고 화려하며 거창한 다큐멘터리가 팔린다. 반면 극장에서는 값싸고 소박하며 소소한 다큐멘터리가 팔린다. 얼핏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공식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시장 균형의 원칙이 적용된 사례에 불과하다. 다큐멘터리 장르는 영상산업에 있어 일종의 ‘틈새장르’다. 주류는 여전히 극예술 장르다. 그리고 모든 틈새장르는 주류시장 분위기에 역행하는 것으로 그 틈새적 존재감을 부각시켜 시장 파이를 차지해왔다. 이렇게 보면 이야기가 쉬워진다.

TV 주류시장은 기본적으로 ‘인간 드라마’에 초점을 맞춘다. 범 대중 접근에 있어 유일한 공통분모여서다. 이럴 때엔 주류에 역행하는 대규모 블록버스터 형식이 ‘틈새’ 역할을 해낼 수 있다. 반면 영화 주류시장은 시각적 쾌를 중시하는 블록버스터 형태가 주름잡고 있다. 할리우드에 이어 한국도 이를 좇아가고 있다. 여기선 역으로 소박한 인본주의적 드라마가 ‘틈새’로 기능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틈새장르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생존지점이 된다.

▲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대행

장르는 버림받는 것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 기능할 수 있는 지점이 계속 달라지는 것뿐이다. 위 언급한 공식도 사실상 ‘기한 한정’으로만 통용된다. 당장 내년만 돼도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빠른 시장 흐름을 바로 보고 제대로 붙잡는 노력이 병행돼야만 장르 생명력이 유지될 수 있다. 영상산업의 각성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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