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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방송 다시보기(19)]

KBS 2TV의 <드라마 게임>은 우리가 흔히 겪는 인생살이의 문제들을 극으로 꾸며 제시하고 시청자에게 그 해결책을 묻는 단막극이었다. <드라마 게임>은 이후 <드라마시티>로 바꿨지만 MBC <베스트(셀러)극장>과 함께 오랜 기간 시청자에게 드라마 보는 재미에 빠져들게 했다. PD들에게도 두 프로그램은 전통적인 입뽕 프로로 여겨졌다. 신인 배우들에게도 연기력을 기르는 훌륭한 교관 노릇을 했다. 그러나 이제 지상파에서 이런 프로그램은 없다.

1985년 8월9일 방영한 <드라마 게임> ‘다시 시작하는 노래’편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고부 갈등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려냈다. 당시 <드라마 게임>은 끝부분에 시청자가 보낸 엽서를 몇 편 골라 읽어준다. 적게는 200통에서 많게는 천통이 넘는 엽서가 쇄도하는 인기를 누렸다. 인기 비결은 극의 현실성에 있었다. 비약과 무리한 생략이 없이 대개 시청자들의 극을 이해하기에 매우 편하기 때문이다. 출연 배우들의 연기도 억지가 없고 주고받는 말도 일상 용어에 가까웠다. 재주를 피우지 않는 잔잔한 연출 솜씨와 신인 PD들의 실험적 연출이 돋보였다. 뭐니뭐니 해도 이런 단막극의 최대 장점은 서둘러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데 있었다.

반면 85년 같은 시기에 방영했던 KBS 2TV의 주간 연속극 <빛과 그림자>는 수련의 과정에 있는 유능한 청년이 몇 해째 사귄 가난한 간호사를 버리고 돈 많은 집 외동딸과 혼인하는 고리타분한 갈등 구조였다.

으레 버림받은 여자는 힘이 없고 마음씨도 곱다. 남의 애인을 가로챈 부잣집 딸은 편협하고 이기적이며 못된 성품이다. 너무도 틀에 짜여 진 도식이었다. 장모라는 사람의 인격된 품은 말이 아니고 옛 애인의 할머니는 어째 그리 인자한지. 부처가 따로 없다. 따라서 현실성도 없었다. 바로 앞 시기 MBC 드라마 <사랑과 진실>에서 미선의 고약한 성질과 효선의 가난하면서도 착한 심성의 대비도 상투적이긴 마찬가지였다.

85년 KBS 1TV 드라마 <고향>도 대학강사 자리를 버리고 간척지 사업에 뛰어든 청년을 심훈의 상록수에 나오는 박동혁처럼 그리고 있다. 960만평의 간척지를 농토로 바꾸고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겠다는 꿈. 농촌살이를 해 본 사람이면 그 꿈이 얼마나 허황된 짓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밤마다 얼토당토 않는 얘기가 TV에서 이어졌다. 현실을 외면한 망상을 열심히 극화해가는 셈이었다. 그런 허무맹랑한 얘기이니 현실감이 없고 따라서 인기도 없다.

▲ 이정호 참세상 편집국장

MBC의 명랑 가정극 <아빠, 우리 아빠>는 젊은 홀애비 집에 그를 짝사랑하는 여자가 셋방을 얻어 한집에 산다는 당시로선 있을 수 없는 구성을 들이밀었다. 요즘 시중을 떠도는 비현실적 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다시 단막극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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