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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진의 내키는 대로 듣기]

최근 내가 가장 흥미롭게 들은 음반은 박지윤의 7집 〈꽃, 다시 첫 번째〉다. 이 앨범을 지배하는 건 어쿠스틱 사운드고 수록곡 중 몇 곡은 박지윤이 직접 만들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앨범은 오랫동안 휴지기를 보낸 박지윤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데 재미있게 생각하는 건 그녀의 선택이 싱어송라이팅이라는 지점에 맞춰져있다는 점 때문이다. 나는 이게 박지윤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최근의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근 몇 년 간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활동이 두드러진 게 사실이다. 특히 홍대 앞을 기반으로 하는 인디씬에서 혼자 활동하는, 자신이 직접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여자들이 늘었다. 얼마 전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 오지은을 비롯해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는 여성 싱어성라이터인 시와와 임주연, 그리고 기존의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선입견으로부터 미끄러지며 좀 다른 위치를 획득한 흐른, 해금을 주로 연주하는 휘루, 허클베리핀 출신의 루네, 그리고 밴드로 활동 중인 황보령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홍대 얼짱 어쩌고, 하는 식으로 거론되는 요조와 타루, 한희정 등도 기존과 다른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싱어송라이터’란 말을 사람들이 다소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이 말이 액면 그대로가 아니라 ‘진정성이 있는 음악’과 거의 동일하게 사용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싱어송라이터’란 말은 작가주의를 연상시키는데 이 작가란 다름 아닌 어쿠스틱 사운드로 ‘상처받은 자아가 내는 내면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다.

▲ 조선일보 5월 4일 23면
특히 한국에서는 노래를 문학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그런 점에서 이런 음악이 밝고 명랑하고 쾌활한 음악보다 더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것 같다. 대중음악 비평이 사운드보다 가사 분석에 머물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본다. 물론 나는 둘 다 중요하다고 보지만 경우에 따라선 둘 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게 현상일 뿐이라면, 그걸 이해하기 위해선 맥락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현재 한국 대중음악계에는 다양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활동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유가 뭘까. 내 기억에는 2002년과 2003년에도 같은 주제의 글을 썼던 것 같은데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뭘까. 나는 그 차이가 음악 커뮤니티와 제작 환경의 변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관련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남성 중심의 커뮤니티에서 생존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감수해야한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나 이미 커뮤니티의 대부분을 이루는 남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패턴에 맞춰야한다는 점이 그렇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여성 밴드가 아닌 이상, 한 밴드의 여성 멤버로 지내는 것은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일하는 여성과 비슷한 의미가 된다. 그래서 어떤 여성들은 이런 번거로운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기 위해 솔로 활동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그녀들을 돕는 것은 기술적으로, 경제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아진 제작 환경이다. 2000년 이후 홈레코딩과 각종 하드웨어의 가격은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성능이 좋은 컴퓨터의 가격이 떨어진 걸 비롯해서 조금만 찾아보면 적당한 가격의 하드웨어를 찾아 홈레코딩 환경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미디 소프트웨어들도 다양해져 예전만큼 음악적, 기술적 전문지식이 없어도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런 환경의 변화가 현재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대거 등장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이런 생각은 좀 재미있다. 왜냐면 앞서 얘기했듯이 사람들은 보통 ‘싱어송라이터’를 작가주의의 맥락으로 이해하고, 이런 태도는 음악을 진정성이 부여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게 한다. 그런데 ‘싱어송라이터’를 ‘자기가 직접 만들어 부르는 노래’라고 있는 그대로 본다면 그들이 지향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자유롭게’, ‘눈치 보지 않고’, ‘제 멋대로’ 정도의 키워드로 분류될 수 있는 지점이다.

▲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그래서 박지윤의 앨범이 흥미롭다. 박지윤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든, 회사의 선택에 의한 것이든 이 앨범에는 ‘여성 싱어송라이터’에 대한 어떤 전형이 존재한다. 물론 그게 문제일리는 없다. 평가와는 상관없이, 나는 오랫동안 여자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자신을 표현해야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니까 더 많은 여자들이 기타든 뭐든 손에 들고 자기 노래를 ‘함부로’ 부르는 세상이야말로 분명히 좋은 세상이다. 그건 그만큼 대중음악의 산업적인 기반이 형성되었다는 얘기일 뿐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의 영혼이 자유로워졌다는 얘기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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