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석훈의 세상읽기]

▲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88만원 세대 저자)
지난 재보궐 선거는 워낙 미니 선거였다. 한 때 히딩크 별명이 오대영이었는데, 이 작은 미니 선거의 결과가 오대영으로 나왔다. 진보신당의 조승수 후보가 당선되면서 내가 종종 ‘풍찬노숙팀’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이 다시 1년 만에 작게라도 원내에 발을 걸치게 된 것도 작지 않은 사건이지만, 역시 이번 선거의 진짜 승리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앉아서 하늘을 보고, 손을 까딱이매 폭풍우가 치더라…. 사실 한국의 선거에서 박근혜는 야전의 전설이고, 덜렁 그의 사진 한 장 가지고 선거에 당선된 지난 선거는 다시 한 번 그의 전설을 환기하는 기회가 되었다.

2010년 지방선거, 2012년의 총선을 거치면서, 현재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그리고 특히 지금의 미국발 금융위기가 어떤 형상의 미래를 그려낼지에 대해서는 아직 우리가 알 수가 없겠지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기는 아마도 명박 5년, 근혜 5년, 그렇게 이어질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 같다. 흔히 BAU 시나리오라고 부르는, 즉 ‘Business-as-usual’, 아무런 특기할 사건이나 구조적 전환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렇게 한국 현대사가 전개되지 않을까라고 나도 생각한다.

자, 이 시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언제 우파 혹은 보수로 전향을 할지, 아니면 소극적으로 ‘순치’의 길이라도 선택하게 될지, 그야말로 시점만 보고 있는 것 같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를 조금만 잘했어도, 현재의 흐름 속에서 엄청나게 많은 인재들이 자신에게 줄 서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런 객관적 조건이 형성되기는 한 것 같다. 10년이면 길지 않은 시간이다. 전향이냐, 순치냐, 두 가지 중의 하나를 놓고 많은 지도자들 – 그리고 고위직 PD들도 – 지금 노심초사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다시 한 번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경구를 만지작거리게 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어쨌든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한 번도 대세의 승기에서 밀리지 않고 최단 코스로 한국을 접수했는데, 지금의 박근혜의 기세는 당시의 이명박 후보의 기세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는 않은 것 같다. 좋다!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그들의 마음을 얻고, 그리고 그들 앞에 당당히 영웅으로 우뚝 서서 신묘한 선거술로 대통령까지 된다면, 난 기꺼이 인정할 마음이 있다. 국민의 대다수가 그래야 마음이 편하고, 또 그래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느낀다면 기꺼이 그를 인정할 마음이 있다.

▲ 박근혜 전 한나라당 의원 ⓒ박근혜 의원실
그러나 한 가지 얘기는 꼭 해주고 싶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명실상부한 한국의 2인자가 되었고, ‘주이야박’이라는 최근의 표현이 말해주듯이, 낮에는 이명박 지지자로 살다가도 밤이 되면 박근혜 지지자로 살아가는 게 현실이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2인자인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이 정책에 대해서도 입 꼭 다물고 이미지와 신화만으로 한국의 밤을 통치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 잘 할 것 같다” 혹은 “경제는 살릴 것 같다”는 이미지만으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박근혜도 그렇게 할 것인가? 복지, 교육, 문화와 같이 지금 위기에 빠진 정책이 하나 둘이 아니고, 무지막지한 속도전 속에서 4대강이 온통 시멘트 범벅이 되어 강과 강변 생태계의 단절이 확실히 강화될 위기이다. 게다가 경제 위기 속에서 ‘작은 정부’는 간데없고, 그야말로 추경만 나부껴! 이런 상황에서 과연 박근혜의 정책 기조는 무엇이고, 명실상부한 2인자로서 그가 만들고 싶은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여기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고, 최소한 방향만이라도 얘기를 듣고 싶다.

국내 최대의 정파 지도자로서, 형식이 어떻게 되었든, 자신이 원하는 국가의 방향 그리고 경제의 흐름, 여기에 대해서는 얘기를 하는 것이 우리 정치가 선진 정치로 가는 길이 아니겠는가? 인물만 있고, 정책은 사라진 한국의 정치는 지금 퇴행적이고, 지금의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반 이명박 혹은 친 이명박, 이 한 마디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역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퇴행을 다시 겪을 것이다. 나는 박근혜 전대표에게 정치적 출사표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정책의 소견에 대해서 적절하게 밝히고, 그렇게 우리 모두 조금씩 상식의 사회로 가면 좋겠다. 당장 묻자. 20대 청년 실업, 박근혜 대표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청년 인턴인가, 아닌가?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