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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야기] 김진혁 EBS 어린이청소년팀 PD

대선 전 이명박 대통령은 영웅이었다. 대부분 샐러리맨들이던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면 다들 그의 ‘성공 신화’를 한줄 씩 꿰차고 있었다. BBK를 비롯해 도덕성에 대해 구설수가 많긴 했지만 맨 아래에서 출발하여 높은 곳까지 오른 그의 성공담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샐러리맨들에겐 소박한 꿈이었다.

그게 그저 만들어진 이미지든, 진실이든 어쨌든 많은 유권자들이 표를 던진 건 그러한 감성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뉴타운이니, 747 공약이니 하지만 사람들은 오직 물질적 이해관계 만으로 표를 던지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감성적으로 동의가 되어야 그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고, 그를 통해 자신의 꿈과 희망을 투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년여가 지난 지금, 그러나 이 감성적 공감대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은 거의 없다. 아니 예전에 그의 ‘성공 신화’를 한줄 씩 꿰차고 있었듯이, 이제는 그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한줄 씩 꿰차고 있다. 술자리의 주인공은 같은데 감성적 방향성은 180도 달라진 것이다.

▲ 경찰이 지난 1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를 버스로 둘러싸 전국언론노조 조합원들의 출입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PD저널
대신 새로운 형태의 감성적 공감대가 자리 잡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독재 정권의 망령’이다. 촛불 초기만 해도 청와대로 달려가자는 일부 촛불 시민들을 향해 많은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정권은 독재 정권이 아니다. 어쨌거나 선거로 당선된 정당성을 갖춘 정권이다!’

그리고 그 당시만 해도 이러한 발언은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좋든 싫든 우리가 뽑았으니 과거 독재 정권에서의 거리 투쟁처럼 청와대로 돌격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촛불 1주년이 돼서 신고 된 집회마저도 원천 봉쇄를 하고, 심지어 지하철역까지 봉쇄하고, 인플루엔자가 걱정돼서 마스크를 쓰고 나온 시민까지 마구 잡이로 연행을 해대는 경찰들의 모습을 보며 그 누구도 ‘이명박 정권은 독재 정권이 아니다!’라고 외치지 않는다. 오래전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고, 언젠가 느꼈던 울분이 되살아 나 점점 더 어떤 확신을 줄 뿐이다.

이건 총체적인 비극이다. 영웅이라고 생각해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서 좋아했던 누군가와 소통하는 방법은 이제, 통제와 억압 밖에는 남아 있지 않다는 것. 아무리 머리를 흔들어도 통제와 억압으로 일관하는 모습은 과거의 장면들과 겹쳐져서 떨쳐지지가 않는다는 것. 그걸 느끼는 건 그저 촛불을 든 이들만이 아니라, 그들을 지켜보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라는 것.

▲ 한겨레 4월 30일 1면
한번 감성적 공감대를 상실하면 아무리 현실적인 면에서 잘 한다고 해도 관계를 회복하기가 어렵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믿음이 가지 않고, 아무리 잘해 줘도 뭔가 꼼수가 있겠지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잘 못해도 욕먹고, 잘해도 욕먹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힘없는 국민들은 결국 마음에 울분을 담아 뒀다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무기인 ‘표’로 의사를 표시하게 된다.

▲ 김진혁 EBS PD
그리고 최악의 상황은 이미 시작됐다. 재보선의 결과가 이를 말해 준다. 그래봤자 몇 석 안 된다고, 앞으로 정책들이 성과를 내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그저 ‘정책’이나 ‘성과’의 문제일까? 뭘 해도 미워 보이면, 뭘 해도 안 되는 법이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는가?

(국민들에게) ‘찍히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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