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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인권] 김진웅 교수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현대 민주국가에서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여론형성에 의거한다. 정의사회의 구현, 국가의 발전 등 치국, 나아가 평천하는 여론에 의해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다. 반면에 성인이 지배하는 이상사회에서는 진리파지의 최상의 길이 지도자에 의해 주어지는 것으로 본다. 민주사회는 하늘이 내린 성인 및 천민의 구분이나 계급이 없는 평등사회이다. 그래서 대통령을 포함한 지배자도 국민이 선출한다. 대통령이 행사하는 권력은 일정기간 국민이 위임한 권한일 뿐이다.

또 위정자가 무엇을 위임받았는지는 민의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고로 투표에 의해 권력을 위임받은 이후에도 지배자와 국민 사이는 여론을 통해 끊임없는 소통이 요구된다. 여론은 인위적으로 조성되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는 유지 발전한다. 진리에 이르는 길은 고정된 어느 하나일 수 없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이다. 여론에 의한 정치는 끊임없이 최선의 길을 찾아가는 민주사회의 통치방식이다.

▲ 지난달 28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방송인총연합회와 방송4사 구성작가협의회 주최로 제작진 체포 규탄과 석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PD저널
따라서 여론이 중요하다. 성격상 여론은 '무문관(無門關)'이다. 진리파지에 이르는 방법이 하나로 정해진 관문이 없다는 것이다. 또 진리는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여론자체도 절대 진리가 아니라 이에 이르는 과정이다. 중국 송나라 때 무문혜개 선사가 지은 책 '무문관'이 현대 사회의 여론과 통한다.

또 여론은 이론적 성격을 내포한다. 즉 단론이나 동색이 아니라 다름을 기본으로 한다. 다름의 속성을 지니지 못한다면, 절대주의나 전체주의에서의 의견조성에 다름 아니다. 여론 다양성의 지향성은 이로부터 유출된다. 다수의 견해는 시민 개개인의 의사이고, 이를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이의 반대는 획일성이고, 이는 권력자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이다. 나아가 여론은 무형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보이거나 정형화된 것이 아니다. 대신 무정형적이고 유동적이다. 그 밖에도 여론은 상대적 속성을 지니기 때문에 어떤 절대적 잣대를 기준으로 이를 통제하는 것은 무리이자 독선이다.

이런 면에서〈PD수첩〉사건에 대한 정부의 시각은 유감스럽다. 무문관적 관점이 아니라, 유문관적 사고에 입각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울타리를 치고, 특정 통로로만 여론이 조성되도록 유도하는 것은 아닌지. 그럴 경우 종국에는 유일관적 사고로 빠질 위험성도 높다.

오히려 〈PD수첩〉이 편파적이라고? 설령 이를 인정하더라도 민주주의는 이를 녹일 수 있는 용광로이다. 또 특정 프로그램이나 보도는 다양한 여론의 일부라는 속성을 지닌다. 언론으로 하여금 하나의 정답 또는 모범답안을 제시하도록 기대하는 것은 더 이상 민주적 여론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특정 견해만 전달하는 도구적 기능을 기대하는 것이다.

▲ 김진웅 교수 선문대학교 언론광고학부

여론정치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특히 위정자들에게는 여론은 성가신 장애물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진리는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형상을 보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다양한 의견은 청취되어야 하고, 이로부터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하고, 마지막에는 이를 실천(반영)하여야 한다. 이것이 이상적 민주정치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 반대는 철권정치이지만 민주주의에서도 얼마든지 표출될 개연성이 있다. 이 점을 늘 경계해야 한다. 과연 우리는 지금 어디쯤 위치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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