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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KBS스페셜 '긴급보고 SI 진앙지, 멕시코를 가다'

2009년 4월 27일 11시 KBS스페셜 사무실, 갑자기 예정에 없던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3일전인 24일(금)에 멕시코 정부가 943명 감염에 45명 사망의 원인이 신종인플루엔자(H1N1)라고 공식발표했고, 25일엔 감염 1004명 사망 62명 그리고 일요일인 26일엔 감염 1324명 사망81명으로 매일 그 수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미국을 비롯해 뉴질랜드, 프랑스, 이스라엘 등에서도 감염환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2,000여명의 현지교민은 물론 세계10위의 관광대국 멕시코를 여행하는 한국인도 신종플루 감염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있는 상태였다. 인류에게 새로운 재앙이 출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국내에 전해지는 뉴스는 외신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상태였고 현장의 생생한 취재내용은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긴급회의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로 그 주에 방송하기로 결정하고 취재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 멕시코 현지에서 취재 중인 홍현진 PD(가운데 흰색 상의)
멕시코현지의 제작시설이나 위성송출 상황에 대해서 아무 것도 파악이 안 돼 있는 상황에서 기존의 제작방식으로는 6일 앞둔 방송일자까지 제작이 불가능한 상태. 직항편이 없기 때문에 멕시코에서는 취재 원본테잎을 기한 안에 보내는 것조차 힘들다. 결국 현지에서 가편집까지 하고 그렇게 해서 줄어든 시간분량을 한국으로 인터넷을 통해 보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이런 기술적인 여건 하에서 취재팀의 조건이 결정됐다. 그 조건엔 예산부족이라는 상수까지 더해졌다.

1. 홍현진 프로듀서(취재/촬영/NLE편집/전송)
2. 재난지역전문 VJ 1명(취재/촬영)

국내에서의 취재는 이완희 프로듀서를 중심으로 2명 이상의 프로듀서가 취재 및 편집에 참여하기로 했다.

VJ를 수소문하고 있는 사이, 회의실에선 멕시코현지 취재는 HDV로 촬영을 하기로 결정했다. HD건 SD건 6mm카메라로 촬영을 하는 이상 동영상의 크기는 똑같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HD화질로 현지에서 제작을 하고,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 SD 화질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한국 내에서의 촬영도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기로 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취재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급한 것은 항공권. 다행히 저녁 8시에 출발해서 멕시코 현지에 같은 날 밤 11시30분에 도착하는 비행기가 확보됐다. 2시경 조영미 VJ가 취재에 합류하기로 결정됐고, 한쪽에서는 멕시코 현지안내인 섭외와 자료조사를, 다른 쪽에선 비상약품과 제작 장비를 챙겼다. 멕시코로 가지고 들어갈 장비는 HDV카메라세트 2조와 Final Cut Pro 편집에 사용할 매킨토시 노트북 2대, 그리고 500기가 용량의 외장하드 한 대를 준비했다.

멕시카나항공 MX905편. 중형여객기 안에는 겨우 30여명 정도의 승객만 있었다. 예정시간보다 20분정도 빨리 도착한 공항도 텅 비었다. 공항에 취재팀을 마중 나온 한인회 장인학부회장은 멕시코시티로 들어가는 내내 시내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평소에 비해 10퍼센트도 안 된다는 말을 반복했다. 마치 도시전체에 소개 명령이 내려진듯한 분위기였다. 교통정체가 심각해서 1시간 넘게 걸렸을 호텔까지의 길도 15분으로 충분했다. 호텔의 리셉션 직원들은 모두 마스크와 위생고무장갑을 끼고 우리를 맞이했다.

▲ 각국 취재진들.
호텔에 체크인하자마자 들어오는 길에 촬영한 내용에 대한 편집을 바로 시작했다. 한국에서 출발한지 이미 18시간가량이 지난 상태. 멕시코 도착 직 후 통화한 국내팀은 현지에 대한 정보가 궁금했고, 이곳에서의 제작상황 및 인터넷전송에 대해서 점검이 필요했다. 50분 분량의 원본을 캡처해서 공항상황과 멕시코시티 들어오는 길, 그리고 호텔상황 이렇게 세 개의 장면으로 나눠 편집했다. 12분 정도의 분량으로 2GB가 조금 넘었다. 전송을 위해 호텔 인터넷을 연결했고 KBS의 웹하드서버에 접속, 전송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전송속도는 초당 70Kbyte. 1GB 전송에 4시간이상이 소요된다. 비상이 걸렸다. 매일 최소한 한시간정도의 분량으로 10GB이상을 전송해야하는데 이것만으로도 40시간이 걸린다는 계산이다. 이 상태로는 방송이 불가능했다. 인터넷 속도가 더 빠른 곳을 찾을 수 없다면 영상품질을 떨어뜨리는 수밖에 없다.

다음날 아침 멕시코시티의 주요관광지와 병원 쪽 취재를 시작했다.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면서 인터넷 속도가 나오는 곳을 찾아봤는데 컴퓨터가 있으면 부자취급을 받는다는 멕시코의 상용인터넷은 그 이상의 업로드속도가 아무데도 안 나왔다.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결국 전용선을 서비스하는 서버회사를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수소문해서 찾은 곳이 스페인계의 거대미디어그룹인 Televisa가 운영하는 서버빌딩. 이곳이면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속도가 나올 것을 기대했지만 미국을 거치면서 병목이 생겨 초당 300Kbyte이상은 안나왔다. 1GB 전송하는데 1시간이 소요되는 상황에서 촬영원본을 그대로 전송하고 취재에 더 집중하려했던 계획은 포기해야만 했다.

멕시코 내에서의 취재는 녹녹하지 않았다. 심각한 언론통제 때문. 멕시코정부에서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있어서 외신기자들도 불만이 가득했다. 그 누구도 환자를 만나보기는 커녕 의사조차도 만나볼 수도 없었다. 멕시코당국에서 뿌린 보도자료를 문이 걸어 잠긴 병원 밖에서 리포트하는 것 말곤 다들 방법이 없었다. 취재의 문이 조금 열린 건 한국에서의 방송이 겨우 사흘 남은 목요일부터. 전날 언론브리핑에서 멕시코 내에서의 신종플루 확산이 현저히 줄었고 사망자중 공식적인 확정자는 7명밖에 없다는 약간은 터무니없는 발표 이후다.

▲ 홍현진 PD
현지 취재팀이 매일 촬영한 내용을 HDV품질로 한국에 전송하는 것은 가까스로 성공했다. 약 30개의 장면으로 전체 분량은 3시간정도. 멕시코로 가지고 들어간 두 대의 노트북 중 한 대는 계속 한국으로 전송을 하고 있었고 또 다른 한 대는 계속 편집이 진행됐다. 주간취재와 야간편집으로 멕시코에 머무른 5일 밤 동안 내 수면시간은 10시간이 채 안 된다. 토요일 아침 7시비행기를 타기위해 호텔에서 출발하기 직전까지 한국으로의 동영상전송을 해야만 했다.

긴급 상황에서의 1인 제작은 인터넷속도만 어느 정도 보장된다면 기술적으론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취재에 충실하지 못할 가능성과 살인적인 노동이 그 속에 숨어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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