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도 정하기 전에 시작된 종편PP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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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주간미디어 리뷰]

▲ 이희용 한국기자협회 부회장ㆍ언론연구소장
방송통신위원회가 종합편성 PP 도입에 관한 청사진을 발표했습니다. 6월 3일 전체회의를 개최해 확정한 '방송통신 콘텐츠 산업 경쟁력 강화대책'에 따르면 6월까지 종편 PP 도입 정책방안을 마련한 뒤 7월에 전문가토론회 등 의견 수렴을 거쳐 8월에 승인계획을 공고하고 11월에 사업자를 선정한다는 것이지요.

종합편성이란 KBS, MBC, SBS 등 지상파방송처럼 '보도ㆍ교양ㆍ오락 등 다양한 방송분야 상호 간에 조화를 이루도록 방송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것'(방송법 2조 18호)을 말합니다. 나머지는 모두 전문분야를 지정해 등록하고 해당 분야 편성 비율을 지켜야 하지요. 대기업과 일간신문 및 뉴스통신(특수관계자 포함)은 종합편성을 행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PP)을 겸영하거나 그 주식 또는 지분을 소유할 수 없고(방송법 8조 3항), 등록만 하면 되는 다른 PP와 달리 보도ㆍ홈쇼핑 PP와 함께 방통위의 승인을 얻어야 합니다.

종편 PP는 1992년 7월 발효된 종합유선방송법에는 없는 개념이었으나 2000년 3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통합방송법에 도입됐지요. 그러나 현재까지 승인된 사업자는 한 곳도 없습니다.

2003년 초 서울지역 SO들이 종편 채널인 가칭 서울시민방송 설립을 추진했는가 하면, 2005년 위성DMB에 대한 지상파 재송신 문제가 논란을 빚을 때 방송위원회가 도입 검토를 시사하기도 했고, 지역MBC 계열사들이 슈퍼스테이션 채널을 만들 때도 종편 PP 승인을 신청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지요.

이런 와중에 방송위는 2005년 8월 PP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해 이듬해 1월 PP와 독립제작사 등으로 참여범위를 한정하겠다는, 매우 신중하면서도 소극적인 방안을 발표했고 지상파와 SO 등이 이에 반대해 유야무야됐습니다.

2007년 2월에도 유재천 한림대 교수(현 KBS 이사장), 최열 환경재단 대표, 문창재 내일신문 논설위원, 유숙렬 전 방송위원 등이 오픈TV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몇 차례 종편 PP 도입을 건의하기도 했으나 당시에도 방송위는 사안의 복잡성과 민감성을 고려해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지요.

종편 PP 도입 논의에 다시 불을 댕긴 것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탄생한 방통위였지요. IPTV법 시행령과 방송법 시행령에서 지상파와 종편 및 보도 PP 진출이 제한되는 대기업 기준을 자산 규모 3조 원에서 10조 원으로 늘린 데 이어 국회와 대통령을 상대로 업무보고를 하며 종편 채널을 허용할 방침이라고 거듭 밝혔습니다. 올 들어서도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구체적인 사업자 선정 시기와 개수까지 언급하며 여러 차례 종편 PP 도입 방침을 기정사실화해왔지요.

예전과 달리 종편 PP 논란이 더욱 뜨거워진 것은 한나라당이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에 대기업과 일간신문 및 뉴스통신에 대한 진입 제한 규정이 삭제됐기 때문이지요. 공영 지상파방송을 민영화하거나 추가로 지상파TV를 허가하는 것이 아직까지 여의치 않은 상태에서 일간신문과 대기업의 방송 진출 확대를 보장하는 새로운 통로로 여겨진 것입니다.

방통위는 '콘텐츠 경쟁력 강화 대책'에서 종편 PP 도입의 정책 목표로 ▲유료방송 시장에 경쟁력을 갖춘 종편 PP를 도입함으로써 선순환 구조의 계기를 마련해 전체 유료방송 산업 활성화 ▲지상파와 신규 종편 PP와의 경쟁 환경을 조성해 전체 방송사업의 규모를 확대 ▲양질의 다양한 콘텐츠 제공을 통해 시청자의 선택권 및 만족도 증진 등을 들었습니다.

▲ 방송통신위원회가 오는 8월 중 종합편성 채널 승인 계획을 마련하고 11월까지 사업자 선정을 마치겠다고 밝혀 논란이다.
그러나 종편 PP 도입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를 구성해 미디어 관련법 개정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상태에서 미디어법 처리를 전제로 종편 PP 도입 계획을 발표하는 것이 부적절하고 ▲현행법에서도 보도와 종편을 뺀 나머지 채널에는 얼마든지 대기업과 일간신문이 진출할 수 있으므로 특혜 시비를 벗어날 수 없으며 ▲결국 특정 신문과 대기업의 참여를 통해 지상파의 힘을 빼고 기득권 위주의 미디어 구도를 만들어 여론을 독과점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요.

일반 PP로 하여금 전문편성을 하도록 유도하고 편성 비율까지 강제하는 한편 보도나 종편 PP를 승인하는 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입니다. 출범 당시에는 아예 전문분야까지 지정해 허가제로 했다가 나중에 등록제로 바꿨지요. 지상파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의 사례를 들자면 찬반양론이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으나, 보도나 종편 채널에 대해서는 반대론의 근거를 외국 사례에서 찾기는 어렵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독특한 규제체계와 방송 현실을 감안한다면 무제한으로 보도나 종편 채널을 허용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우선 케이블TV SO와 일반위성방송은 종편 PP 전부와 보도 PP 2개 이상을 반드시 채널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어떤 채널묶음에 넣느냐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으나 케이블TV와 위성방송 가입자가 전체 가구의 80%를 넘는 형편에서 대기업과 일간신문이 참여한 종편 PP라면 지상파방송에 버금가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방송가의 예측입니다.

또한 지상파방송에서는 대부분 금지하고 있는 중간광고가 여기서는 허용되는 것을 포함해 소유제한, 방송심의, 외주제작이나 국내제작물 편성비율 등에서 지상파방송보다 훨씬 느슨한 규제를 적용받게 됩니다.

따라서 의무재송신제나 비대칭 규제 문제 등을 미리 손질하지 않은 채 도입한다면 특혜 시비를 피할 수 없을 겁니다. 또한 한미 FTA 협정에 따라 종편 PP에 외국자본도 우회 참여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일단 규제를 풀면 다시 묶기가 어려우니까요.

그러나 만일 종편 PP에 대해 의무재송신제를 없애고 지상파와의 수평적 규제를 도입한다면 사업 희망자가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아도 방통위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가 부정적 전망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았거든요.

"지금의 경기 불황을 고려치 않더라도 제한된 방송 시장의 크기, 제작비 부담 등 현실적 변수들을 고려할 때 종편과 보도 채널은 사업성이 불투명하다. 지상파방송사의 프로그램 제작비용이 연간 2천억~3천억 원 수준임을 감안할 때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이 아니면 이에 준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없고 최소한 3~5년간 감수해야 할 적자를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한다고 해도 후발 유료방송 채널이 기존 지상파에 버금가는 채널 인지도 및 경쟁력, 시청률 등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종합편성 채널의 성공 여부는 기존 지상파에 비견할 만한 콘텐츠를 제작할 능력과 의지를 갖춘 사업자가 등장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KISDI도 회의적으로 보고 있는 종편 PP를 도입하려는 의도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지적이 일자 방통위는 "KISDI 보고서가 '국내 유료방송 시장의 선도 PP로서 종편 및 보도전문 채널의 도입은 콘텐츠 산업의 활성화를 통해 산업적 파급 효과는 물론 방송의 공익성과 시청자 복지 증진에 기여할 것" "PP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사업자의 출현은 지상파방송과는 콘텐츠 제작의 측면에서, 유료방송 플랫폼과는 콘텐츠 유통의 측면에서 상호 경쟁하게 돼 국내 방송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밝혔습니다.

방송가에서는 올해 초부터 조선, 중앙, 동아가 지상파 대신 종편 PP 진출로 방향을 선회해 대기업들과 활발하게 접촉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6월 4~7일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KCTA) 주최로 열린 '디지털케이블 쇼'에서는 종편 PP 도입을 앞두고 조선, 중앙, 동아 등이 SO들에 '러브콜'을 보냈다고 합니다. 안 보내던 화환도 보내고, 부스도 확대 설치하는가 하면 기사도 대대적으로 실었다네요.

CBS와 매일경제 등도 사실상 도전을 선언한 상태이며 한국이나 한국경제 등 나머지 언론사들도 검토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지요. KT, SK, LG 등 통신업체들과 태광, CJ, 현대, 롯데 등 미디어 관련 대기업 및 MSO들도 열심히 주판알을 두드리고 있다는 군요.

한나라당의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종편 PP 도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자산 규모 10조 미만의 기업은 참여할 수 있고, 신문사들도 지분 참여는 못하지만 지상파DMB 때처럼 콘텐츠 제공자 자격으로 합류할 수는 있으니까요.

그러나 방통위가 제시한 액션 플랜에는 '미디어 관련법안 처리 여부 등에 따라 유동적'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종편 PP 승인 방안에도 '지상파방송사와 경쟁할 수 있는 규모'라고 못 박은 만큼 법 개정 이전에 승인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지요. 방통위로서도 한나라당이 관련 조항을 삭제하겠다고 선언하지 않는 한 서두를 입장도 아닐 테고, KISDI 분석에 따르면 자본금이 적어도 1조 원은 돼야 할 것 같은데 대기업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격론 끝에 허용 방침이 결정되더라도 사업자 선정 단계에서는 새로운 시비를 피할 수 없을 겁니다. 일단은 개수가 문제인데 종편 PP를 하나만 승인하기는 부담스럽고, 3개 이상 해주면 그나마 불투명한 사업성을 더욱 축소시킬 겁니다. 비교심사 과정에서 누군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여서 후유증이 만만치 않겠지요. 그동안 밀월관계를 유지해온 대기업과 유력 신문사 간에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을 거쳐 이전투구를 벌일지도 모르겠네요.

87년 언론기본법이 폐지된 이후 20여 년간 서울지역 민영TV와 지역민방, 케이블TV SO와 PP, 위성방송, 위성DMB와 지상파DMB, IPTV 등 여러 차례 방송 관련 사업자 선정 심사가 있었지만 종편 PP 사업자처럼 대기업과 유력 신문들이 한꺼번에 뒤엉켜 대회전을 펼치는 것은 처음입니다. 방통위가 과연 잡음 없이 심사를 마무리할 수 있을지 걱정되네요.

방통위의 콘텐츠 강화 대책을 뜯어보니…

방통위는 '콘텐츠 경쟁력 강화 대책'에 종편 PP 도입 말고도 ▲모바일 인터넷망 개방 제도 정비 ▲모바일 콘텐츠 직거래장터 구축 유도 ▲망이나 설비 없는 사업자도 통신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재판매제도(MVNO) 도입 ▲방송광고판매제도 개선 ▲간접광고(PPL)ㆍ가상광고ㆍ중간광고 허용 확대 등 방송광고규제 개선 검토 ▲방송사업자간 공정경쟁 또는 시청자 이익 저해 행위에 대한 금지행위 규정 신설 ▲PP에 대한 공정한 콘텐츠 공급계약 여건 마련 및 프로그램 사용료 지급비율 의무화 ▲방송콘텐츠 외주제도 개선 ▲뉴미디어방송센터 구축 추진 ▲총 1천억 원 규모의 방송콘텐츠 투자조합 결성 ▲디지털 유료 방송콘텐츠 유통 시스템(DDS) 구축 등의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를 위해 방통위는 2012년까지 총 5천 90억 원(민간 659억 원 포함)을 투입할 계획이라네요.

방통위의 방안에 따라 방송통신 콘텐츠 산업의 선순환 구조가 조성되면 방송통신 콘텐츠시장 규모는 지난해 15조 3,000억 원에서 2013년 21조 7,000억 원으로 늘어난다는 게 KISDI의 추정이라고 합니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향후 5년 간 2만 3,000명에 이른다는군요.

유료방송의 저가시장 구조와 불공정거래 관행, 취약한 콘텐츠 제작역량 등 방통위가 꼽은 우리나라 콘텐츠산업의 문제점은 대부분 방송가에서 동의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나라의 월평균 유료방송 수신료는 호주(55달러), 일본(42달러), 태국(33달러), 싱가포르(30달러), 홍콩(24달러) 등에 비해 훨씬 낮은 6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방통위 자료에는 평소 자주 보던 구미 각국의 사례 대신에 동남아 국가가 많이 들어 있는 게 이색적입니다), 전체 PP의 35.6%가 연간 매출액 10억 원 미만인 형편이지요.

그러나 방통위의 경쟁력 강화 대책에 따라 이러한 문제점이 개선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공정경쟁 유도나 콘텐츠 제작 지원 등의 방안은 환영할 만하다 해도, 종편 PP의 도입이나 방송사업 소유ㆍ겸영 규제의 완화가 부익부빈익빈을 가져와 콘텐츠산업의 근간인 창의력의 싹을 죽일 수 있고, 민영 미디어렙 도입이나 광고규제 완화가 여론 다양성과 방송의 공공성을 위협할 것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기존 콘텐츠사업자는 별도의 절차 없이 IPTV 콘텐츠 제공사업자의 지위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하고 IPTV 제공사업자와 콘텐츠사업자 간 분쟁이 발생할 때 방송법의 방송분쟁조정위원회 조항을 준용해 조정하도록 하는 방안이 IPTV를 '편애'하는 방통위 정책기조가 반영된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지요.

사산 예고한 채 종언 기다리는 미디어위

기대와 우려 속에 출범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는 역시 기대보다는 우려대로 옥동자를 낳기는커녕 사산 혹은 반쪽 기형아 출산을 예고한 채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고 식물인간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운명에 놓였습니다.

애당초 난산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 속에서 파행과 갈등을 거듭하던 미디어위는 여론조사 실시와 지역공청회 확대 등을 놓고 날선 대립을 지속하다가 '누가 깨느냐가 문제일 뿐 깨질 일만 남았다'는 지경에 이르렀지요.

여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라는 돌발 변수까지 겹치며 활동이 잠정 중단됐고, 전국민적인 추모 분위기에 밀려 정부와 여당이 주춤하는 기세를 보이는 가운데 몇몇 여론조사에서 미디어 관련법안 처리에 반대하는 의견이 높게 나왔지요. 그러자 민주당은 6월 3일 국회 브리핑을 통해 "국민 여론을 수렴해 입법에 반영, 미디어법을 표결처리한다는 게 여야 합의문의 내용이었으나 이미 국민의 의사가 확인된 만큼 미디어 관련법이 폐기된 것으로 간주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를 거치며 정부와 여당은 미디어 관련법에 관해 반대 의견이 높게 나온 것을 두고 홍보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홍보를 독려했는데, 별무소득이었던 모양입니다. 학자나 현업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한나라당 법안에 반대하는 의견이 압도적이었고 일반인 대상의 여론조사에서도 당초 합의대로 6월에 처리하는 것보다는 '반대 여론을 감안해 충분한 논의 후에 합의처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훨씬 많았지요.

이를 두고 야당과 언론운동진영에서는 "여당에서는 그동안 국민이 법안의 내용을 잘 몰랐기 때문이라고 말해왔지만 방송 전문가 사이에서도 반대 여론이 높았다"며 법안 철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당이 보기에도 PD연합회와 방송기술인연합회 등 지상파방송 종사자가 대부분인 단체가 조사 주체로 들어간 것이 의심스럽긴 하지만 언론학자들까지도 반대가 월등히 많아 완전히 무시하기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일 겁니다. 조사 시점도 노 전 대통령 서거 전인 19~20일(현업 언론인)과 22일(언론학자)이어서 딱히 반박하기가 쉽지 않겠지요.

민주당과 언론운동진영 등은 국민장 기간에 나타난 반정부 여론과 여론조사 결과 등을 발판으로 삼아 6ㆍ10 항쟁 22주년 기념식에서 대대적인 미디어 관련법 반대 투쟁의 열기를 높여나가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교수들의 잇따른 시국선언 등도 미디어법 반대투쟁을 엄호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지요.

이런 상황 속에서 한나라당은 여기서 더 밀리면 안된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한나라당 당직자들은 국민을 자극할 만한 발언은 삼가면서도 미디어법 통과 의지를 줄기차게 피력하고 있지요.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추천 미디어위원 11명은 국민장이 끝난 뒤에도 미디어위가 계속 공전되자 6월 4일 밤 11시를 넘겨 이튿날 오전 10시에 회의를 열겠다고 국회 사무처를 통해 e-메일로 공지한 뒤 민주당과 창조한국당 추천위원들의 반발 속에 회의를 강행했습니다.

야당 측 미디어위 간사인 이창현 국민대 교수는 e-메일을 받자마자 "11명의 이름으로 요청한 회의 소집은 운영소위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서, 일방주의적 결정에 따라 전체 모임으로 만들려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으며 합의제를 기본원칙으로 삼는 미디어위 내용과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거부 의사를 밝히고 9명 모두 불참했습니다.

야당 측 위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추천위원들은 ▲6월 12일 회의는 법안 심사를 위한 워크숍이나 전체회의 형태로 하고 ▲여야 모두 법안 초안을 들고 나와 축조심의하기로 하며 ▲일정 등의 이유로 인해 더이상의 지역공청회나 여론조사 및 실태조사 여부 등 운영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기로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5일 회의 개최의 합법성 자체를 부인하는 야당 추천위원들이 자신들의 핵심적인 요구사항을 전면 부인하는 결정 내용을 받아들일 리 없지요. 이들은 즉각 기자회견을 열어 5일 회의가 무효임을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극적인 돌파구가 열리지 않는 한 12일 회의에도 불참할 가능성이 높아 사실상 여야 추천위원들이 얼굴을 맞대고 회의를 여는 것은 이제 끝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동안 또다른 쟁점의 하나로 부각돼온 것이 활동 마감 시한이었습니다. 여야는 활동시한 100일을 언제부터 계산할 것이냐를 두고 논란을 벌였다가 일단 6월 15일까지로 봉합해놓은 상태였는데(야당 측 추천위원들은 6월 22일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국민장 기간에 활동을 중단한 데 이어 그 다음주에도 회의가 제대로 열리지 못해 더 복잡해진 것이지요. 여당은 6월 국회에서 표결처리한다는 스케줄에 맞추기 위해서는 7월로 넘어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이고 야당은 최대한 미루자는 것이었는데 6월 5일 여야 3당의 간사 협의 끝에 6월 25일에 활동을 마감하기로 정해졌습니다.

민주당은 미디어법이 폐기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선언했고 야당 측 추천위원들은 여당 측 위원들의 일방적인 운영방식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판국에 활동 시한이 며칠 더 늘어난들 무슨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야당 측 추천위원들은 11일 민주당 원내대표 등을 만나 최종 입장을 정리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이런 상태에서 미디어위 활동을 지속하는 게 더이상 의미가 없다고 선언하는 쪽으로 결론을 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미 여론조사 결과 등으로 국민의 여론이 확인된 마당에 회의를 계속하고 보고서를 내다보면 여당 측에 표결처리의 명분만 줄 수도 있다고 보는 의견이 많더군요.

여당은 3월 여야 합의로 6월에 미디어법을 표결처리하기로 했는데 야당 측이 새로운 핑계를 계속 들고 나와 떼를 쓰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책 관련 법안을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결정하는 것은 전례가 없고, 미디어위 논의를 바탕으로 여야가 이견을 조정할 수도 있는데 폐기를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며, 더욱이 원내대표가 바뀌었다고 합의문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신의와 성실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지요. 야당 측 위원들이 끝까지 참여하지 않는다면 여당 측 위원 11명만이라도 법안 축조심의를 거쳐 25일까지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할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미디어법에 관한 협의 이전에 6월 국회가 언제 열릴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은 8일부터 단독으로라도 상임위를 개최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야당이 등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민감한 법안을 강행처리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비난여론이 뜨거운 마당에 기름을 끼얹는 행위처럼 비칠 수 있어 자제하겠지요. 민주당도 대통령 사과와 특검제 도입 등 5대 선결과제를 내세우고 있으나 언제까지 국회를 거부할 수는 없는 형편이어서 일단 6ㆍ10 행사에 당력을 집중한 뒤 미디어법 직권상정 포기 등을 약속받고 다음주부터는 등원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연말의 국회 점거 농성 이후 상임위 회의장과 본회의장의 잠금장치 등이 모두 바뀌어 야당이 법안 통과를 물리력으로 저지하기는 어렵게 됐습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민심 이반 현상에 당황하며 내분도 추스르지도 못한 상태에서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겠지요.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에서 제공했습니다. [이희용 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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