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도입한 ‘PD집필제’에 대한 작가 사회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드라마·번역 작가들은 15일 각각 성명을 통해 “작가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생존권을 위협하는 KBS PD집필제를 전면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드라마 작가 177명은 성명에서 “KBS는 시사, 교양, 다큐 프로그램 제작에 기여했던 작가들의 역할을 전면 부정했을 뿐 아니라, ‘현장 취재를 하지 않은 작가가 원고를 써 공정성·객관성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근거 없는 주장으로 작가들의 명예를 크게 훼손했다”면서 “드라마 작가들은 PD집필제 철회를 위해 싸우는 시사, 교양, 다큐 분야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작가의 대거 퇴출은 방송의 질을 저하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라며 “PD집필제가 시행되는 과정에서 불거진 부작용과 한계는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15일 발표한 성명에는 이금림, 송지나, 노희경, 김은숙, 최완규 작가 등이 동참했다.
번역 작가 32명도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KBS의 PD집필제는 작가 집단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더구나 발표 전까지 작가들에게 일언반구 논의가 없었다는 점은 근로자(작가들)에 대한 사용자(KBS)의 최소한의 배려도 없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번역 작가들은 “시사, 교양, 다큐 작가들의 투쟁을 강력히 지지함은 물론, 앞으로 전개될 사태에 적극 동참할 것을 선언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드라마 작가, 번역 작가가 각각 발표한 성명 전문이다.
KBS는 <PD집필제>를 즉시 철회하라!
우리 드라마 작가들은 작가의 전문 직능을 무시하는 KBS의 만행을 강력히 규탄한다!
우리 드라마 작가들은 지난 봄 실로 어이없는 소식을 들었다. KBS가 봄 개편을 맞아 <PD집필제> 도입을 전격 선언했다는 소식이었다.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시사, 교양,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PD의 역할과 작가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떤 분야든 작가는 작가 고유의 창조성과 스토리텔링의 능력을 발휘하여 프로그램을 보다 알기쉽게, 보다 흥미롭게, 보다 감동적으로 만드는 중심적 존재이다.
그런데 KBS는 그 동안 KBS의 시사, 교양, 다큐 프로그램 제작에 기여했던 작가들의 역할을 전면 부정했을 뿐 아니라, ‘현장 취재에 임하지 않은 작가가 원고를 씀으로 인해 프로그램의 공정성 객관성이 지켜지지 않았다’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더함으로써 작가들의 명예를 크게 훼손하기까지 했다. 이에 우리 드라마 작가들은 작가라는 하나의 이름을 위하여 시사,교양, 다큐 분야 작가들과 연대하며, PD집필제 철회를 위해 싸우는 이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하는 바이다.
대한민국 방송의 미래는 좋은 방송콘텐츠를 개발하고 시행할 수 있는 우수한 방송인력 양성과 확보에 달려있다. 그 선봉에 서 있는 작가의 대거 퇴출은 방송의 질을 저하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PD집필제가 시행되는 과정에서 불거진 부작용과 한계는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는 고품격 프로그램 제작을 선도해야 할 공영방송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것이며 양질의 프로그램을 시청해야 할 시청자들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방송의 궁극적인 목표는 소통이다. 이를 위해서는 방송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진정성이 최우선일 것이다. 수 년 간 좋은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함께 노력해 온 작가들에게 조차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KBS가 과연 시청자들과 진정어린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장르를 떠나 모든 방송 프로그램 한 편이 제작될 때까지 작가, PD는 물론이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숨어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하고 귀하다. 특히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오로지 방송에 대한 열정 하나로 프로그램 제작에 기여해온 시사, 교양, 다큐 작가들의 헌신은 그에 합당한 존경과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는 그러한 존중 대신 오히려 작가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음을 개탄한다.
이에 우리 드라마 작가 일동은 시사, 교양, 다큐 작가들의 요구에 덧붙여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한다. KBS는 형식에 집착하지 말고 <PD집필제>를 지금 즉시 전면 철회하라!
음성만으로 통하는 라디오든 영상을 통하는 TV든 방송은 이른바 ‘총화 예술’이다. 소설이나 시와는 달리 많은 사람이 함께 참여하여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방송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목표와 열망을 가지고 있다. 더 좋은 프로그램, 더 나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PD, 작가, 엔지니어, 아나운서, 성우 등은 전문적인 능력이 필요하고, 서로 각자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있다.
‘PD 역량강화’를 명분으로 강행하고 있는 KBS의 ‘PD집필제’는 지난 수십 년간 한국 방송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해온 ‘작가’라는 집단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리하여 경제 위기를 빌미로 작가들을 제작 현장에서 일방적으로 몰아내려는 것이다. 더구나 KBS가 작가들의 생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계획을 발표하는 순간까지 그 주 대상인 작가들에게 일언반구의 논의가 없었다니! 이는 실제적으로 KBS라는 사용자와, 근로자의 관계로 맺어져 있는 작가들에게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의 최소한의 배려’도 없는 행위다.
시사, 교양, 다큐에서 수년 간 제작 파트너로 함께 일하던 작가들을 대거 축출하고 남은 작가들을 변칙, 편법적인 방식으로 운용한다고 해서 과연 ‘PD의 역량’이 '강화‘될 것인가.
이에 번역 작가 일동은 시사, 교양, 다큐 작가들의 엄중한 항의에 우리의 목소리를 더하고자 한다. 번역 작가들은 시사, 교양, 다큐 작가들의 투쟁을 강력히 지지함은 물론, 앞으로 전개될 사태에 적극 동참할 것을 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