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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자유화가 초래한 세계경제 불황이 자본주의 일반 위기에 대한 담론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 독일 공영방송사 금융담당 기자들의 표정이 많이 어두워졌다. 공영 ARD의 ‘증권뉴스’를 보도하는 이들은 그 동안 방송기자들 가운데 가장 자신만만한 표정의 주인공들이었다. 하지만 금융자본의 자유화가-신자유주의가-세계경제의 기생성을 초래한 주범이라는 경제학계의 지적이 구체적인 현실로 확인되면서 맥 빠진 기색이 역력하다.

ARD의 ‘증권뉴스’는 정보통신(IT)기술이 붐을 일으켰던 지난 2000년 세계증시 활황국면에 맞춰 신설되어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의 DAX 주가지수 변동과 주식거래 현황을 보도해왔다. 금융위기 발발 직전까지 이 프로그램의 기자인 프랑크 레만(Frank Lehmann)은 스포츠 경기중계를 보는 것처럼 다소 열광적인 분위기로 보도해서 인기를 끌었다. ‘미스터 증권맨’으로 불렸던 레만은 주식거래에 대한 복합적인 분석보다는 단순하고 다소 격앙된 어조로 소식을 전했고 자극적인 미사여구도 많이 구사했었다.

‘증권뉴스’는 도이체방크(Deutsche Bank)의 인기 애널리스트를 인터뷰하여 경제일반과 주가추이에 대한 정보도 제공했다. 물론 이런 인터뷰는 시청자에게 분석과 전망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등장하는 애널리스트들은 자신이 직접 분석한 증시정보가 아니라 이미 분석된 내용을 소개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더구나 이런 프로그램들은 생방송인 것처럼 보도되고 있지만, 사실 방송이 나갈 시간에 증권시장은 대부분 폐장시간 이후이다.

따라서 이런 프로그램들이 주식투자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은 시청자들-주식투자자들-에게 정확한 해설보다는 투자에 대한 믿음만을 심어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식시장 메커니즘을 자세하게 알아서 스스로 판단할 필요 없이, 전달되는 정보를 믿고 따르라는 주문이시다. 미스터 증권맨과 같은 인기에 치중하는 프로그램에 대해 공영방송 내부에서도 자체 비판이 있지만 보도행태는 거의 변함이 없다.

여기에는 이런 사정이 있다. ARD의 저녁 메인 뉴스인 ‘타게스샤우’의 방송시간을 전후하여 방영되는 ‘증권뉴스’가 기상정보와 아울러 공영방송의 황금 광고시간대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증권뉴스’가 방송된 이후 은행과 보험회사들이 주요 광고주로 등장했고 광고요금단가도 더 올랐다. 이러니 레만과 같은 유형의 인기영합형 보도행태가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레만은 얼마 전 은퇴하여 더 이상 방송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없지만 보도 메커니즘은 그대로이다. 그의 뒤를 잇고 있는 여기자 안야 콜(Anja Kohl)은 동화를 읽어주고 타로점을 치거나 손금을 봐주는 중세의 한 여인을 연상시킨다. 심지어 한 민영방송 코미디프로그램은 유럽 중세 예언자 분위기의 이 여기자를 단골 패러디 대상으로 삼아 과장된 몸짓과 말투를 흉내 낼 정도이다.

괴테와 쉴러 등 독일의 대문호뿐만 아니라 앙드레 코스톨라니와 워렌 버핏과 같은 주식투자의 거장들(?)을 인용하고, 나아가 중국 고사성어까지 종횡무진으로 구사했던 17년 경력의 베테랑 증권기자인 레만의 화려했던 시절은 금융위기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증권뉴스’의 새 담당 PD인 미하엘 베스트(Michael Best)가 안야 콜의 과장된 말투를 커버하기 위해 다소 진지한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마치 중량초과의 마라토너가 힘겹게 경기장을 돌고 있는 것처럼 오늘날 위기의 금융시장에서 나오는 정보를 따라잡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 베를린=서명준 통신원/독일 베를린자유대 언론학 박사과정
 경기호황 시기에 TV증권뉴스가 주식투자를 보조하는 일종의 달콤한 흥분제였다면, 금융위기의 시대에 그것은 어쩌면 쓰디쓴 진정제일지 모른다. 오늘 실제로 이런 프로그램이 다루는 정보들 가운데 금융 패닉을 자극할 만한 정보들은 대부분 게이트 키핑을 거쳐 확실한 제거의 대상(?!)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증권뉴스라는 보도프로그램은 애초 정확한 분석보다 오히려 증권뉴스‘쇼’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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