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의 찌질이들이여, 아는 것만 말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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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의 그때 그때 다른 영화] (12) 잘 알지도 못하면서 (2009)

▲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
영화 속 제천과 제주도는 퍽 예뻤다. 물비린내가 곧잘 올라올 것 같은 제천은, 그러나 구경남(김태우)에겐 아름답지만 낯설고 불편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는 두 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구경남이 제천의 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에피소드와 제주도에서 영화강의를 할 때의 에피소드는 홍상수 스스로 말했듯이 두 개의 다른 공간임에도 서로 비슷한 해프닝으로 엮인다. 그 중심엔 구경꾼, 구경남이 있다.

유순한 외모에 나름 인지도 있는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 그가 갖고 있는 무기는 이게 전부다. 칼럼니스트 김현진은 연애시장이라는 정글에서 마초에게 밀려난 사내들이 생존을 위해 변화한 것이 바로 토이남이라고 비꼬았는데, 구경남은 그런 악의적인 해석에 적확하게 들어맞아 보인다. 이 인간, 뭘 하든 찌질 해지고야 만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 상용(공형진)과의 오해를 풀기 위해 상용을 찾아갔다가 돌 맞고 겁에 질려 돌아온다. 하지만 허세는 어디가지 않는다. 제주도에서 선배인 고국장(유준상)에게 떠는 너스레를 보고 있으면 헛웃음이 나온다. 말이며 하는 짓이 영 밉상이다. 관객은 구경남의 언행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영화 안팎의 사람들 모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 혹은 알게 된다. 홍상수 영화의 난점은 사람들이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부분들, 체면과 위신 뒤에 감춰진, 혹은 이야기하지 않으면 껄끄럽지 않을 역린을 짓궂게 톡톡 건드리는 것에 있다. 또 난감한 것은 구경남의 행동을 가만 보고 있으면 자꾸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는 데 있다. 나도 그랬던가 싶은 그 미적지근함. 아주 불편하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내내 낄낄거리게 된다. 구경남을 미워할 수만은 없게 된다. 정지된 카메라가 줌인하면서 인물을 주시할 때, 위기를 알리는 배경음이 비장하게 깔릴 때, 구경남이 남에게 주워들은 말을 열심히 주워섬기고 있을 때, 관객은 피식 웃는 것이다. 아, 저 인간, 또 시작이구나. 영화의 재미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유명배우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며 프레임에 스며들고, 저마다 사연을 갖고 있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펄떡펄떡 살아있다.

▲ 김주원/ 블로거
제주도에서 제천에서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러니까 구경남이 고순(고현정)과 정말로 잤을 때 어째서 제천에서와는 다른 결과가 나왔을까. 그건 고순의 말에 나와 있다.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해요. 고순은 그걸 알았기에 구경남을 갖고 놀 수 있었다. 이를 연애시장이라는 정글에 빗댄다면 그녀는 구경남을 먹어치워버린 셈이다. 만국의 찌질이들이여, 부디 아는 것만 말할지어다. 아차, 그 전에 나부터. 이거, 제대로 알고서 쓰는 건지 모르겠다. 나야말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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