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선정주의’를 찬양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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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주의 책] ‘정치에너지’ 외 (후마니타스)

‘유혹하는 에디터, 고경태 기자의 색깔 있는 편집노하우’ (고경태 / 한겨레출판)

현재 〈씨네21〉 편집장을 맡고 있는 고경태 기자의 경험과 편집 노하우를 ‘집대성한’ 책이다. ‘집대성한’이라는 표현은 주관적 평가다. 그런데 사실 여기에 더 방점을 찍고 싶다. 좀 더 주관적으로 평가를 해보면 〈유혹하는 에디터〉는 단순히 편집의 기술만 다루고 있는 게 아니다. 저자의 기자생활과 나름의 인생관이 곳곳에 녹아 있다. 이 책의 묘한 매력이 작동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다.

▲ ‘유혹하는 에디터, 고경태 기자의 색깔 있는 편집노하우’ (고경태 / 한겨레출판)
비슷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인지 가장 눈길을 끈 부분은 ‘선정주의를 찬양함’이었다. 전폭적으로 동의한다. 그래서 “아무런 임팩트도 주지 못하는 기사를 쓰거나 지면을 꾸밀 바에는 선정적인 편집 자세를 갖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쪽”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편집자는 가끔 뻥도 쳐야 한다” - 이 비슷한 종류의 말은 필자가 가끔 후배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뻥’은 편집자가 가져야 하는 필수 덕목(?)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편집자의 기본 소양과 자질에 소홀한 건 아니다. 고경태 기자는 책에서 ‘종합적인 양식을 갖춘 편집자의 완성’ 그 이상을 추구한다. 특히 편집자가 갖춰야 할 삼박자, 즉 헤드라인, 글쓰기 능력, 기획력의 중요성을 하나씩 구체적으로 짚어준다.

저자도 언급하고 있지만 편집자는 몇 자 안 되는 헤드라인 문장을 자유자재로 늘이거나 줄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표현의 강도와 완급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문장의 달인까지는 아니더라도 ‘문장을 그냥 텍스트가 아닌 즐거운 유희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저자는 말한다. 편집자는 ‘생각을 지배하는 텍스트의 기록’에서 결정적 존재이며, 편집자에게 자기만의 ‘고유의 스타일’은 필수라고. 창조적인 편집자가 되는 과정은 아류를 극복하는 태도와 궤를 같이 한다 - 저자의 주장인데 아류를 극복한다는 얘기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도 하다.

‘정치 에너지 / 더 진보적이고, 더 민주적이며, 더 서민적으로’ (정세균 / 후마니타스)

〈정치 에너지〉는 ‘정치인이 펴낸 책’이라는 점에서 흥행부진이 예상되는 책이다. 한국에서 정치인이 낸 책을 돈 주고 사서 읽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단정할 수 없지만 거의 없다고 ‘확신’한다.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아는 건 출판사 후마니타스다. 그런데 판매저조가 예상되는 이 책을 굳이 펴낸 이유가 뭘까.

▲ ‘정치 에너지 / 더 진보적이고, 더 민주적이며, 더 서민적으로’ (정세균 / 후마니타스)
관행철폐다. 책 내용 못지 않게 출판사의 새로운 실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후마니타스는 ‘정치인이 낸 책=홍보용’이라는 등식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정치 에너지〉는 후마니타스가 시도하는 그 첫 번째 결과물인 셈이다. 정세균이라는 정치인이 쓴 책 - 혹시 이런 이유로 이 책을 외면한 독자들이 있다면 한번 정도 생각을 접기 바란다. 앞으로 심상정과 최재천, 노회찬 등이 집필을 준비하고 있다니, 출판사의 실험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쓴 〈정치 에너지〉는 책이 출판되기 직전, 언론보도를 통해 ‘홍보’가 된 책이기도 하다. 촛불집회에 대한 정세균 대표의 비판 부분이 주로 언급이 됐고, 일부 보수신문의 경우 사설에서 정 대표의 본심이 무엇이냐며 ‘비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이 촛불집회를 언급한 부분은 그야말로 부분일 뿐이다.

사실 “나는 민주당을 제대로 만들 것이다. 명사들의 출세 통로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이해와 관심이 수용되는 통로가 될 것이다. 생각이 젊고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인재들이 민주당에서 일할 기회를 찾도록 만들 것”이라는 정 대표의 주장은 지금 민주당이 당면한 현안이자 과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고, 현재 민주당을 바라보는 많은 시선들이 민주당에 보내는 의심과 회의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물론 〈정치 에너지〉에서 그 답을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현실 정치인이 느끼는 ‘나름’ 진실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남자한테 차여서 시코쿠라니’ (김지영 / 책세상)

요즘 제주 올레가 각광을 받고 있다. 제주 올레는 단순히 관광을 하거나 길을 걷는 게 목적이 아니다. 길을 걸으며 성찰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일종의 도보 여행이자 순롓길이다. 삭막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이 걸어온 삶을 마주하는 시간 - 제주 올레를 걷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인지도 모른다.

▲ ‘남자한테 차여서 시코쿠라니’ (김지영 / 책세상)
김지영 씨의 〈남자한테 차여서 시코쿠라니〉는 한국의 제주 올례와 비슷한 일본의 산티아고라 불리는 시코쿠 순롓길을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빨간 화살표를 따라 걷는 시코쿠 순롓길은 일본 진언종의 창시자 코보대사(홍법대사)가 제창했으며,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1번부터 88번까지 번호가 매겨진 사찰을 걸어서 순례하는 순례자들은, 각 사찰의 납경소에서 도장과 묵서를 받는다고 한다. 88곳을 모두 순례하면 결원(結願)을 하게 되고, 소원 한 가지가 이루어진다는 것.

저자의 일본 도보 순례는 다큐멘터리 촬영을 겸한 여행이란 점에서 다른 여행서적과는 차별성을 가진다. 보통 평균적으로 한 달 반 정도 걸리는 순롓길이지만, 저자는 세 배 정도인 4개월 정도가 걸렸다. 그런데 이런 점이 이 책을 더욱 주목하게 만든 요인이다. 그만큼 보통의 여행자가 겪기 힘든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됐고, 그런 점이 책 곳곳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제주 올레도 그렇고 시코쿠 순롓길을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순례자들’ 중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평범하지 않다. 각자 말 못할 사연들이 있고, 아픔도 가지고 있다. 저자가 길 위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도 이 책이 주는 즐거움이다.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2’ (이호준 /  다할미디어)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것이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이다. 새 것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옛 것에 대한 관심은 그리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 한옥이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별 느낌이 없다. 하지만 재개발과 그에 따른 이익에 대해서는 폭발적인 관심을 가진다.

▲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2’ (이호준 / 다할미디어)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2〉는 이런 추세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급변하는 현대문명 속에서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존재들을 주목, 글과 사진에 담았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가 사라지고 잊혀지는 것들을 찾아다니면서 그 속에서 아름다움과 향수를 발견해가는, 그런 자취를 기록한 책이다. 특히 옛 것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현대문명 속에서 사라져가거나 잊혀지는 건 건물이나 풍경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건물·풍경과 함께 사람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때론 글로, 때론 사진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떠나가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 진한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예전 형태와 자취를 찾기 힘든 조선시대 골목길인 서울 종로 피맛골을 언급한 부분에 이르면 그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그곳에서 소주와 막걸리를 기울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 모습마저 이제 저자의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게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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