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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임동기의 수다떨기]

요즘 <개그콘서트> ‘남성인권보장위원회’(남보원)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저도 재미있게 보고 있는 데요, 오늘(25일) 그 위력(?)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물론 주관적인 느낌일 뿐 객관적인 건 아닙니다. 하지만 같이 동반했던 제 아내도 비슷한 느낌을 가진 걸 보면, 뭐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일요일, 아내와 함께 영화(굿모닝 프레지던트)를 보기 위해 한 극장을 찾았습니다. 시간이 좀 남아서 커피를 한 잔 마시기로 했는데, 아주 재미있는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우선 우리의 ‘풍경’.

아내 : 주문을 자기가 했으니 진동 울리면 내가 갈게.
나 : 하하. 개콘 ‘남보원’의 영향력이 정말 이 정도로 큰 건가.

실제 아내는 진동이 울리자 본인이 직접 커피를 가지러 갔습니다. 그 전까지는 주로 계산도 제가 하고, 가지러 가는 것도 제 몫이었거든요. ^^. 글쎄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행동에 그렇게 큰 의미 부여를 한 적은 없어서요. 하지만 분명한 건, 제 아내가 개콘 ‘남보원’을 본 이후 ‘그런 행동’에 의미부여를 하기 시작했다는 거죠.

그냥 그렇게 우리끼리 ‘키득키득’ 대고 있는데, 그 풍경은 ‘우리만의 풍경’이 아니더군요. 그 커피전문점에 있는 커플 손님들 대부분이 계산은 남자가 하고, 진동이 ‘드르륵’ 울리면 일제히 여자들이 커피를 들고 오는 겁니다. ^^. 그 광경을 지켜본 아내의 한 마디, “저 사람들도 개콘 ‘남보원’ 영향 받은 모양이다.”

▲ KBS <개그콘서트> ⓒKBS
사실 <개그콘서트> ‘남성보장인권위원회’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보는지 몰라도, 저의 경우 남자들이 어느 정도로 유치(?)해 질 수 있는지 - 그 극단의 형태를 반어적으로 보여준다고 봅니다. 예전 같으면 ‘찌질이-소심남’이라고 놀림을 받았을 법한 그런 행동들을 ‘남성 권익’ 보장이라는 미명 하에 당당히(?) 주장하는 것을 보면서 ‘남자들’의 유치함과 어이없음에 그냥 웃음을 짓는 거죠.

그런데 이런 현상들이 개그 소재로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은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경제적 어려움이 주된 원인이 아닐까요. 해마다 취업난이 가중되는 상황은 ‘전통적인 남녀관계’ (본질적인 측면에서 여전히 바뀐 것은 없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 드러난 그런 관계)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 데이트 비용적인 측면에서 말이죠. ^^.

예를 들면 이런 거죠. 경제도 이렇게 어려운데, 데이트 비용은 모조리 남자가 내야 하나? 여자가 좀 내면 안되나, 뭐 이런 거. 예전 같으면 남자의 자존심 등등을 들먹이며 ‘씨알도 먹히지 못할 소리’였지만, 지금은 많은(?) 남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들이 옳냐 그르냐, 이런 문제에 대한 판단은 잠시 유보하겠습니다. 이건 가치판단적인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현실적인 측면’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인 듯 해서요.

개인적으로 이런 측면보다는 다른 면에 좀 더 주목을 하고 싶습니다. 기존의 ‘남자다운’ 행동이라는 것에 대한 우회적 비판 - 사실 저는 이 부분에 더 눈길이 가거든요. 뭐 예전엔 뭐든 남자가 해야 되고, 남자가 적극적이어야 하고, 사소하거나 자잘한 것들은 불만이 있어도 그냥 넘어가는 것이 ‘남자답다’라고 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을 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싫은 건 싫다고 하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가급적 감정이 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얘기를 해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봤습니다. 그게 남자이든 여자이든 상관없이 말이죠.

‘개콘 남보원’은 어쩌면 ‘찌질이’ ‘소심남’일 수도 있는 남자들의 속마음을 보여줌으로써 남성들의 행태를 비꼬고 있는 건 아닐까요. 남자들의 권익보호를 표면적으로 내세우지만 ‘폼생폼사’ 잡는 남자들을 은근 슬쩍 비판하고 있는 건 아닐까 -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남성들의 허위의식을 공개함으로써 여성들로 하여금 ‘아! 남자들도 속으로 저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는 걸 여성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 저는 그런 식으로 자꾸 해석이 되더군요.

그래서 매주 ‘남보원’에서 새로운 내용이 개그로 다뤄질 때마다,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다만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지나치게 미시적인 부분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건 좀 우려가 된다는 거지요. 남성들의 ‘찌질한’ 속마음을 세상에 공개한 것까지는 좋은데, 아직도 여전히 본질적인 측면에서 남녀관계는 바뀐 게 없습니다. 바뀐 것 보다는 바꿔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제도적 측면 못지 않게 남성들의 성찰이 우선되어야 할 부분도 많고요.

그런 측면까지 들춰냄으로써 세상의 모든 남성들을 움찔하게 만드는 - 그런 ‘남보원’ 개그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요. 물론 판단은 제작진의 몫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기대를 가지고 앞으로 계속 ‘남보원’을 시청하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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