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 언론법 재개정 작업 본격화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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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언론계·법조계 “헌재 정치적 판단” 비판 … “절차의 위법성 의미 살려야”

헌법재판소가 한나라당의 언론관계법 강행처리에 대해 “심의·표결권 침해”라며 위법을 지적하면서도, 위법한 절차에 따라 처리된 언론법 개정의 효력을 무효화해 달라는 야당의 청구를 기각하면서 정치권은 또 다시 격랑에 빠져들었다. 헌재 판단의 의미를 놓고 여야가 각자 입장에 따른 해석을 내놓으며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위법’ 짚으며 ‘무효화’ 안한 헌재의 뜻은

헌재는 지난달 29일 민주당 등 야4당이 김형오 국회의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심판 사건에서 “지난 7월 22일 국회의 신문·방송법 처리 과정에서 다른 의원에게 위임·양도할 수 없는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 침해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29일 오전 언론관계법 관련 권한쟁의 심판사건에 대한 마지막 공개변론을 진행하고 있다. ⓒ민주당
신문법 개정안 처리 당시 제안취지 설명과 질의·토론 절차 등을 생략한 채 표결을 진행한 것이나, 이 과정에서 대리투표가 발생함으로 인해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다는 것이다. 또 방송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재적 과반 미달 상태로 표결결과 부결이 확정됐음에도 이를 선포하지 않은 채 재투표를 실시, 그 결과에 따라 가결을 선포한 것 역시 심의·표결권 침해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그러나 권한쟁의심판에 대한 판단과 해당 법안들을 무효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법 개정의 효력을 무효화 해달라는 야당의 청구를 기각했다. 실제로 이강국·이공현 재판관은 “기능적 권력분립과 국회의 자율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헌재는 원칙적으로 처분의 권한침해만 확인, 권한 침해로 야기된 위헌·위법상태의 시정은 피청구인에게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며 기각 의견을 냈다.

이처럼 절차의 ‘위법’은 짚으면서 그에 따른 결과인 법 개정의 효력에 대해선 무효화 판단을 내놓지 않은 헌재의 결정을 놓고 정치권은 일주일이 다 되도록 그 의미에 대한 해석과 관련해 격론을 벌이고 있다.

여당의 입장은 한 마디로 헌재가 법 개정 효력에 대해 무효 판단을 내리지 않은 만큼 더 이상의 논의는 없다는 것이다. 지난달 정기국회 개회 당시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질 것”이라고 했던 김형오 국회의장도 언론법 개정 절차에 대한 헌재의 위법성 판단이 나오자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고 입장을 변화했다.

김 의장은 언론법 재개정 문제와 관련해 3일 민주당 이강래, 자유선진당 류근찬 원내대표 등 야당의원들과의 면담에서 “양당 원내대표가 협상할 일”이라며 공을 넘겼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더 이상의 논의는 없다는 입장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방위) 한나라당 간사인 나경원 의원은 지난 2일 불교방송 <김재원의 아침저널>에 출연, “헌재 결정은 결국 ‘언론법 통과 효력을 인정하라’는 것으로 재개정은 어렵다”고 못 박았다.

“헌재 정치적 판단 아쉬워…위법 지적한 만큼 시정해야”

그러나 민주당 등 야당과 언론·시민단체는 물론 법학계와 법조계에서도 법 개정 절차와 관련해 헌재가 위법성을 지적한 만큼 국회가 시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절차의 위법성을 지적하고도 법 개정을 무효화하지 않은 헌재에 대해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헌재의 최종 판단 직전 언론 인터뷰에서 “언론법 무효 청구를 기각할 경우 2004년 행정수도 관련 판결에서 ‘관습헌법’을 들고 나왔던 것만큼 부끄러운 결정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던 김승환 전북대 교수(한국헌법학회장)는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이나 대리투표 등을 헌재가 인정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헌재의 판결 직후 낸 논평에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면 법 개정 효력은 당연히 무효일 수밖에 없다”며 “헌재의 이번 결정은 법리적으로 논리모순일 뿐 아니라, 헌재의 존재의미를 스스로 부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동시에 헌재 판결의 아쉬움과는 별도로 법 개정 절차의 위법을 지적한 것의 의미는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율사 출신으로 민주당 무효언론악법폐지투쟁위원장인 박주선 최고위원은 3일 “헌재의 주문을 면밀히 살펴보니 언론법 처리 과정에서 위법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헌재가 국회에서 재개정 작업을 하라는 주문을 하고 있는 만큼, 이를 따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향후 어떤 국회법 위반이 있어도 손을 쓰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낸 박재승 변호사도 이날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 특강에서 “헌법재판소법 제66조 제2항은 ‘권한 침해가 있는 경우 무효 또는 취소 확인할 수 있다. 그 청구가 부작위에 대한 것이고 그 취지를 인정하면 취지에 맞는 결정을 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며 헌재가 무효 판결을 내리지 않은데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헌재가 결정문에서 피청구인에게 위헌 상태의 시정을 피청구인에 맡긴다고 한 만큼 국회의장과 여당이 스스로 시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민주당 등 야당은 4대강 사업과 세종시 논란 등과 함께 언론법 재개정 문제를 하반기 정기국회 일정과 연계시키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민주당은 3일 소속 의원 전원 명의로 언론법 재개정을 촉구하는 공개질의를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발송했으며, 문방위는 내주 예산안 심사 등을 위해 열리는 전체회의에서 개정 언론법의 폐기 및 재개정 논의에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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