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하는 언론인, ‘공짜’ 취재하는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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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임동기의 수다떨기]

이 글은 이번 주에 발행된〈시사IN〉 113호(2009.11.14)에 실린 글입니다. (www.sisain.co.kr)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앞에서 미디어법 재논의를 촉구하며 6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던 최상재 위원장을 경찰이 체포하기 전에 쓴 글입니다. 〈시사IN〉에는 ‘단식하는 언론인, 공짜 해외 취재 간 기자’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헌법재판소 앞에서 미디어법 무효 판결을 기원하며 1만배를 올린 언론인이 있다.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이다. 백배도 해본 적이 없어 솔직히 1만배가 얼마나 힘들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최 위원장이 너무 힘들어 보이고 잘 걷지도 못한다”는 현장 기자의 전언을 통해 그 고통을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그가 11월4일부터 단식에 돌입했다. 1만배의 고통이 채 가시기 전에 돌입하는 단식이다. 얼마나 힘들까. 이건 정말 가늠하기도 어렵고 짐작도 안 된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이 시대를 사는 언론인으로서 언론악법을 막지 못하면 언론악법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얘기라도 남기는 게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했다.” 최 위원장의 답변이다.

▲ 미디어법 재논의를 촉구하며 지난 4일부터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앞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최상재 위원장의 모습. 최 위원장은 9일 오후 1시 55분께 경찰에 체포됐다. ⓒ전국언론노조
그에게 미안하고 또 감사하다. 미안한 마음 1만배이고 감사한 마음 백배다. 사실 그에게 미안해야 할 사람들은 나 이외에도 많다. 난 많은 언론종사자들이 최 위원장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최상재 위원장이 언론종사자들에게 요구한 건 1만배를 하자는 것도, 같이 단식을 하자는 것도 아니었다. 미디어법과 관련한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보도해 달라는 이른바 ‘보도투쟁’이 전부였다. 말이 ‘보도투쟁’이지 이건 언론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닌가. 하지만 이 소박한 요구는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을 부탁하는 언론노조 위원장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못하는 언론종사자들 - 이건 누군가의 표현대로 ‘비상식적 사회의 비상식적 행동’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한 술 더 뜨는 언론인들이 있다. 일부 유통담당기자들이다. 언론비평전문지 <미디어오늘>(723호) 최근 보도에 따르면 삼성테스코홈플러스(회장 이승한)는 11월1일 20여명의 유통담당기자들과 일주일 일정으로 테스코 본사가 있는 영국으로 떠났다고 한다. 테스코 그룹 경영진 면담을 통해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해외투자전략 등을 듣는다는 게 취지다. 취지에 공감 못하는 건 아니지만 미심쩍다. 항공료와 체재비 등 개인당 수백만 원씩 들어가는 비용을 영국 테스코 그룹에서 댔다는 <미디어오늘> 보도 때문이다.

▲ 미디어오늘 11월4일자 (723호) 2면.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 하지만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을 어기면서까지 ‘지금’ 꼭 가야만 했을까. 이 질문 앞에 나의 이해심은 반감된다. 무엇보다 그들의 이번 취재가 언론인으로서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에 속하는지 의문이다. 홈플러스가 최근 기업형슈퍼마켓(SSM)의 공격적 진출로 광주 인천 청주 등 지역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본사 견학’ ‘해외 방문’이라는 명분으로 취재를 다녀온 기자들의 기사가 어떤 지는 언론계 종사자들이 잘 안다. 특히 경비를 기업이 제공했을 경우 많은 기사가 해당기업에 우호적이었다. 이 사안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닐 정도로 ‘흔한 일’이 됐다. 하지만 뉴스가 아니라고 해서 비슷한 모든 취재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이번 해외취재에 동참한 언론사의 보도를 살펴야 하는 이유다.

유통기자들이 돌아올 때쯤 최상재 위원장의 단식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것이다. “미디어법이 현실화될 경우 언론인과 국민들이 받을 고통이 너무 크다”며 단식에 돌입한 최 위원장을 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길까. 물론 그건 그들이 판단할 일이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미안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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