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진의 ‘의도’와 엄기영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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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방문진이 겨누고 있는 칼끝은 어디일까

‘MBC사태’가 장기화 할 태세다. 임원 선임을 둘러싼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김우룡·방문진)와 엄기영 MBC사장의 힘겨루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방문진은 엄 사장의 인선안을 수용할 의사가 없고, 엄 사장 역시 ‘사퇴 시사’ 발언을 하는 등 배수의 진을 쳤다.

양쪽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갈등하고 있지만 ‘의도’와 ‘진의’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엄기영 사장. 지난 21일 열린 임시이사회에서 엄 사장은 보도·제작·편성·경영본부장 등 각 본부장별로 2~3명의 후보를 제시했다. 하지만 경영본부장 인선안을 제외하고 모두 거부당했다. MBC 사장이 제출하는 임원 인선안에 대해 방문진이 동의해왔던 관례를 생각하면 굴욕이다. 그런데 엄 사장은 두 번이나 거부당했다. 이건 전례가 없는 굴욕이다.

▲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김우룡)는 21일 오전 7시30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임시이사회를 열었다. 이사회에 앞서 김우룡 이사장이 노조 입장을 듣고 있다. ⓒMBC노동조합
엄기영 사장의 ‘진의’는 대체 무엇일까

그런데 이 굴욕, 충분히 예상됐다. 아니 솔직히 말해 엄 사장이 이런 굴욕을 감수하고 방문진의 재신임을 수용한 것으로 해석했다. ‘김우룡-엄기영 사전교감설’까지 제기된 상황에서 방문진의 엄 사장 재신임은, MB정부와 방문진을 향한 엄 사장의 ‘백기투항’이었다. 자신이 먼저 사퇴서를 제출하고 주요 임원들이 경질되면서 얻은 재신임에 대한 평가가 호의적일 수 없는 이유다. 오히려 지금 벌이고 있는 그의 ‘결사항전’이 예상치 못한 변수다.

엄기영 사장의 ‘진의’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MBC의 한 관계자는 “통상 이 정도 모욕을 당하면 사퇴하는 것이 수순”이라면서 “하지만 MBC 안팎에서 사퇴에 무게중심을 두는 이는 아직 소수”라고 말했다. 엄 사장이 ‘식물사장’이라는 내외부 비난을 받으면서도 아직 방문진과의 논의에 더 방점을 찍고 있다는 얘기다.

이 논의 잘 될까. 가능성이 없다. 방문진이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두 번이나 사장이 추천한 임원안을 부결시킨 의미가 뭘까. ‘백기투항’에서 ‘결사항전’ 태세를 보이고 있는 엄 사장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그렇다. 지금 방문진은 ‘엄기영 사장’을 주요변수가 아닌 종속변수로 판단하고 있다. 방문진은 이미 ‘상처가 날 데로 난’ 엄기영 사장이 벼랑 끝에 몰려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김우룡)는 21일 오전 7시30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임시이사회를 열었다. 이사회에 앞서 엄기영 사장이 노조원 앞에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MBC노동조합
그런 점에서 “엄기영 사장의 사표를 반려한 것은 그를 재신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제 발로 걸어 나가게 하려는 야비한 음모”라는 MBC노조의 성명(21일)은 방문진이 겨누고 있는 칼끝이 어디인지를 짐작케 한다. 부담스러운 강제퇴진이라는 카드를 사용하지 않되, 엄 사장 스스로 물러나도록 하겠다는 것 아닌가.

문제는 현재와 같은 사태의 장기화가 엄기영 사장은 물론이고 MBC구성원에게도 유리하지 않다는 점이다. MBC 안팎에선 엄 사장이 자진사퇴하지 않더라도 내년 2월 주총에서 사장교체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래서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엄기영 사장의 ‘진의’는 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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