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자뷰는 타임머신을 타지 않는다
상태바
데자뷰는 타임머신을 타지 않는다
[경계에서] 이성규 독립PD
  • 이성규 독립PD
  • 승인 2010.03.02 12: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의 1960년대는 ‘혼란과 질주’ 그리고 ‘저항과 불복종’의 시대였다. 베이비 붐 세대였던 당시의 미국 젊은이들은 록에 열광했고, 동시에 흑인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이 거세게 일었던 시대다. 또한 국가에 대한 의무와 헌신, 형벌에 대한 복종과 같은 법질서가 그 어느때보다 절실했던 시대였다. 그 1960년대 한복판, 하버드의 한 법대생이 졸업식장에서 연설을 했다. 학교를 떠나 사회로 첫발을 떼기 위한 출사표인 셈이다. 하버드라면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미국의 최고 엘리트 집단이 아닌가.

“우리나라 거리들은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대학들은 폭동과 소요를 일삼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파괴하려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완력을 동원해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안으로부터의 위험, 또 외부로부터의 위험. 우리는 법과 질서가 필요합니다. 법과 질서 없이 우리나라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우뢰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폭동과 소요로 들끓던 대학을 향한, 하버드 법대생의 일침이었다. 적성국가 소련의 사주를 받는 것으로 의심되는 좌파가 들끓던 대학에서, 저런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다는 것은 용감한 일이었다. 그러기에 졸업식장은 ‘법 질서의 수호’를 주장하는 법대 졸업생의 소신에 찬 뜨거운 연설로 감동의 도가니가 된다. 박수갈채가 끝났다. 졸업식장을 가득 메웠던 이들은 숨죽이며 그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애국의 신념’으로 똘똘 뭉친 젊은 학생은 조용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말한 것들은 1932년 아돌프 히틀러가 연설한 것입니다.” - 하워드 진의 <오만한 제국>에서 일부 발췌하여 각색

스토리텔링으로 보자면,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영화 <식스센스>의 마지막 장면 같은 반전이다. 연단에 올라섰던 법대생과 졸업식장의 청중은 1960년대의 미국인이었지만, 그들은 아주 잠시 1932년의 독일로 간 것이다. ‘법과 질서’ 뒤에 감춰진 위선을 날카롭게 폭로하는 이 반전의 순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영화에서 흔히 사용하는 효과인 플래시백을 통해 1932년의 독일로 가보자. 전후 독일을 그린 영화 <유로파>의 1945년이 아닌, 1932년 말이다. 모르긴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시대 독일인의 위치에 놓인다면, 히틀러에게 열광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 히틀러에게 민주주의를 바칠 것이다. ‘법과 질서의 엄정수립과 존치’라는 그 경구 앞에 말이다. 이것은 영화 <데자뷰>의 수준을 넘어선다.

“인간의 길고 어두운 역사를 돌이켜보면, 반란이라는 이름보다 복종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끔찍한 죄악이 훨씬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과학자인 스노(C. P. Snow)의 말이다. 스노는 그 예로 가장 ‘엄격한 복종’에 의해 세계 역사상 가장 사악하고 대규모였던 전쟁행위에 동조하고 참가했던 독일 장교단을 지적했다.

▲ 이성규 독립PD

지금 우리의 당대는 각각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누구에겐 ‘혼란과 소요’의 시대로 절대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법과 질서’의 경구가 성경처럼 읽혀질 것이다. 그리고 누구에겐 ‘폭력과 억압’의 시대로 ‘법과 질서’에 대한 불복종을 이야기 할 것이다. 그러면 타임머신을 타보자. 당신은 두 곳의 장소를 선택할 수 있다. 1930년대의 독일과 1960년대의 미국이다. '법과 질서‘의 엄정수립과 존치를 강조하던 독일. ‘법과 질서‘의 복종에 저항하던 미국. 당신의 선택은 어디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