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사] “건강한 방송 생태계 회복을 위해 힘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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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대준 25대 PD연합회장
지난 일요일 저는 늘 그랬던 것처럼 주말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물론 채널을 돌려가며 봤습니다. 아시다시피 시청자로서 한 채널만 고집하긴 힘듭니다. 재미있으니까 시간은 훅 가버립니다. 키득키득 웃다가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다가 아!~ 하고 탄성도 저절로 나옵니다. 그 순간 온갖 상념은 사라지고 맙니다. 서먹서먹했던 일주일간의 가족관계가 아주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방송 없이 세상을 견딜 수 있을까 싶습니다.

프로그램을 보다가 동료PD들의 발칙한 상상력 앞에서, 배꼽 잡는 웃음 속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치면서, 부패한 권력을 고발하는 진실 앞에서 PD들의 몸엔 짜릿한 전류가 흐릅니다. 그래! 저거야! 그러면서 도전 정신과 질투심이 마구 생깁니다. 제가 아는 PD들은 모두 그렇습니다. 어떤 직업군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참 희한한 사람들입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라디오와 TV의 수많은 프로그램들을 PD들이 매일매일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시청자들은 방송이라는 창을 통해 함께 웃고 함께 웁니다. 그리고 서로가 동시대인임을 확인합니다. PD는 어쩌면 마법사인지도 모릅니다. PD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지난주 9월2일 금요일 오후2시, 많은 PD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어떤 결과가 나왔습니다. 대법원이 MBC <PD수첩-‘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을 둘러싼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2008년 4월 29일 방송되었습니다. 대법원은 ‘광우병 편’에 대한 정부 측 정정보도 요구와 명예훼손 소송 등에 대해 일부 사안에 대한 정정보도 필요성만 인정하고 제작진의 무죄를 최종 선고했습니다. ‘광우병 편’이 방송된 지 3년 4개월만의 일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방송과 PD들이 겪고 있는 지독한 현실입니다.

공권력에 의해 PD들은 고발당하고 협박당했습니다. 일일이 열거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프로그램의 편성과 제작, 보도의 자율성도 질식당하고 있습니다. 공권력뿐 아니라 심지어 방송사도 피디들을 겁박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상식의 회복을 위해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애쓴 PD들은 좌천되고 징계 받고 쫓겨났습니다. 30년 전, 40년 전의 얘기가 아닙니다. 최소한의 표현의 자유도 유린당하는 비열한 오늘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더 이상 굴욕을 견딜 수 없습니다. 부당한 지시와 명령과 협박으로 PD들을 가둘 순 없습니다. 우리 2800여 PD들은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력을 위해 정당한 기획과 연출, 편집의 제작 자율성을 위해 온 몸과 온 마음으로 함께 할 것입니다. 그것은 PD들에겐 자신의 가치를 실현시키는 일이며 마지막 자존을 지키는 일입니다.

공영방송이라는 공공의 영역을 침탈한 저들은 방송의 생태계마저 흔들어 놓았습니다. '조중동 종편'을 위한 온갖 특혜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방송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지만 사실은 공멸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무법천지의 은밀한 광고 직거래는 시장과 기업환경도 황폐화시킬 것입니다. 결국 약육강식뿐인 정글의 법칙만 남길 것입니다. 저 밀림의 야수들에겐 내일이 없습니다.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뿐입니다. PD연합회는 건강한 방송 생태계의 회복을 위해 힘쓰겠습니다.

PD연합회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면서 뭔가 멋진 낱말들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만 잘 모르겠습니다. 예쁘고 좋은 추상명사들이 요즘은 왠지 더 낯설어 보입니다. 다만 우리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PD가 PD에게 서로 기대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PD연합회가 PD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겠습니다.
끝으로 “언론의 자유는 모든 자유를 가능케 하는 자유”라는 말을 되새기며 이만 인사를 할까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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