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블로그] 개성의 초코파이는 황금을 발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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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블로그] 개성의 초코파이는 황금을 발랐나?
  • 오기현 SBS PD
  • 승인 2011.12.0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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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현 SBS PD
초코파이
▲ 초코파이
개성공단에서 초코파이 한 개가 1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영국의 일간 ‘텔레그래프’지를 인용한 보도이다. 한국에서 300원하는 초코파이가 북한에서는 사치품으로 통한다고 한다. 개성공단의 북한노동자들은 초코파이 덕에 다른 지역 노동자보다 부유해졌다는 내용도 전했다. 얼마 전에는 각자 받은 초코파이를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초코파이 계’가 생겼다는 기사도 있었다.

개성공단에서 초코파이는 이른바 ‘노고물자’로 인기 상품이다. 개성공단 출범 뒤 오후 간식으로 하루 2~3개씩 지급돼 왔는데, 야근일수가 많아지면서 최근에는 하루 5~7개씩으로 늘었다고 한다. 개성공단에서 소비되는 초코파이 수가 한 달에 600만 개에 달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4년 전 개성공단에서 만난 한 봉제공장 대표는 ‘생산성을 높이는데 초코파이만큼 좋은 상품이 없다’면서 ‘공장에서 포장지가 발견되지 않는 걸 봐서 대부분의 북한노동자들이 먹지 않고 집으로 가져갈 것’이라고 했다.

초코파이의 인기는 사회주의 국가에 공통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소련해체 4년 뒤인 1995년 봄, 필자는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한 시골 시장에 초코파이 상자가 탑처럼 쌓여있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러시아의 도시에서도 초코파이 상자를 끼고 다니는 여성들을 심심치 않게 만났다. 파티장소에서 보드카 안주로도 초코파이가 인기인 것을 확인했다. 중국에는 짝퉁 초코파이가 넘쳐난다. 초코파이 포장지의 별문양이 사회주의의 정서와 통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지만, 간식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싸고 달콤한 맛의 초코파이가 그들의 미각을 쉽게 자극했던 것이 인기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인기상품이라고 하더라도 35g짜리 한 개 가격이 약 10달러(6.4 파운드) 우리 돈 1만원이 넘게 팔린다는 보도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10달러면 장마당에서 쌀 4kg(현재 쌀값은 kg당 대략 우리 돈 3천원)을 구입할 수 있는 비용이다.

북한 사람들이 초코파이를 진짜 10달러에 구입한다면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나는 초코파이의 영양가가 쌀 4kg에 육박해서 북한주민들이 초코파이 한 개 먹고 열흘 정도 버틸 수 있기 때문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초코파이에 금가루가 발려 있어서 북한주민들의 신종 투자상품으로 인기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는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 우리 언론의 북한관련 보도태도이다.

‘1만원 짜리 초코파이’ 기사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발견된다. 먼저 외신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이다. 조금이라도 분별력 있는 사람이라면 초코파이 하나 구입하는데 한 달 임금의 10분의 1을 투자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다(현재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한 달 임금은 90달러 정도이다). 그런데 외신이 보도하니까 무조건 받아쓴다. 한반도에서 9천km 떨어진 곳에 있는 런던소재 언론사의 기사 내용에 대해 한 번만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개성공단입주업체에 확인했다면 이런 기사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 언론의 북한에 대한 비뚤어진 시각문제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북한주민들에 대한 애정과 이해보다는, 여전히 별스럽고 비상식적인 집단이라는 인식이 우리 언론인들 사이에도 퍼져 있다. 1995년 언론 3단체가 ‘평화통일을 위한 보도제작준칙’을 선포하고, 2000년 6.15 선언이 나온 뒤 한 때 북한에 대한 왜곡된 보도가 줄어드는 듯하다가 남북관계가 경색된 후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북한에 대한 기사는 여전히 ‘아니면 말고’식이다.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 오기현 SBS PD
서울에서 50분 거리에 있는 개성에 과연 별쓰러운 인간들이 살고 있을까? 하나만 먹으면 열흘을 거뜬히 견딜 수 있고, 금가루 잔뜩 발린 초코파이가 유통되고 있을까? 진실을 모르면 불행하다. 교류만이 왜곡된 시각을 바로 잡아줄 수 있다. 독특한 맛으로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받아온 초코파이,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심경이 무척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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