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따져보기]그들은 왜 종편으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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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4개 종편채널이 개국을 완료했다. 사업자 선정 단계부터 개국 후 보름을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온갖 의혹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여기에 말을 더 보탤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다만 충분히 논쟁적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 말이 나오지 않는데다, 의외로 주목하는 이도 별로 없는 것 같은 종편채널의 드라마들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사실 개국 직전 공개된 종편채널들의 드라마 라인업은 시청자들을 놀라게 하는데 충분했다. 이미 방영을 시작한 jTBC <빠담빠담…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의 노희경 작가라든가, <발효가족>의 박찬홍·김지우 콤비, 매일방송MBN <왓츠업>의 송지나 작가를 비롯하여, 정하연, 안판석, 정성주, 윤선주, 황인뢰와 같이 실력을 인정받은 중견 드라마 연출가와 작가들의 면면이 뒤를 잇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종편으로 가야만 했을까? 이것은 그들 개개인의 결단에 관한 질문이 아니다. 그저 신규 채널들의 공격적인 초기 투자로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그 지점에서, 현재 지상파 채널들의 드라마 편성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폐단이 보이기 때문이다.

▲ jTBC 드라마 <발효가족> ⓒjTBC
알려진 바에 따르면 종편채널에서 드라마 편성을 받은 작가와 연출가 중에는 그간 기획한 작품이 지상파에서 편성을 받지 못하다가 새로운 기회를 얻은 경우도 있고, 지상파에서 반려되었던 기획을 종편채널에서 새롭게 제작하게 된 사례도 있으며, 편성을 기대하고 사전제작을 마쳤으나 지상파에서는 방영되지 못한 채 종편채널로 눈을 돌린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반려의 사유는 간단하다. 시청률을 담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오래 전부터 시청자들의 기대를 모은 시도들도 적지 않았으나 지상파에서는 그 싹조차 틔워보지 못한 것이다. 말하자면 종편채널들의 신규 드라마 라인업들은, 지상파에서 포기한 공영성을 고스란히 포섭한 형국이다.

드라마에서의 공영성이란 사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적어도 스스로를 공영방송이라 칭한다면, 시청률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프로그램의 다양성을 제고할 의무가 있다. 이를 포기한 지상파 미니시리즈의 트렌디 드라마 유행이 가속화되어가던 틈을 타, 종편채널들이 유명 제작진들의 이름값은 물론 공영성이라는 명분까지 덤으로 얻게 된 셈이다.

이를테면 jTBC의 프라임 타임(황금시간대)인 9시대에 방영되는 드라마 <발효가족>의 경우, 아무런 자극적인 소재도 사건도 없는 이 건강한 드라마가 공영방송인 KBS에서 방영되는 모습은 어쩌다 상상조차 어렵게 되었을까?

종편채널의 이러한 전략이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진 않는다. 초기 투자로는 몰라도 결국 시청률의 논리가 우선하는 시점이 반드시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 조민준 전 월간〈드라마틱〉편집장
게다가 기존의 지상파에 비해 실내 세트와 같은 인프라가 턱없이 열악한 종편채널의 환경에서는(이미 몇몇 종편 방송사의 시트콤처럼 세트 의존도가 높은 프로그램에서는 낙후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야외 촬영 의존도가 높은 드라마를 만들 수밖에 없을 텐데 이것은 곧 제작비 상승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

제작비와 효율, 나아가 수익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방송사에서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는 자명한 노릇. 남은 것은 지상파 채널의 역할이다. 방송의 공적 역할을 강조하며 종편채널과의 차별성을 주장해온 대로, 드라마 편성에서도 그러한 면모를 일신하기 위해서는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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