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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다시 본’ 곳은 퇴근길의 지하철 역 안이었다. 잰걸음으로 무리지어 가는 인파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 거기에 그가 서 있었다. 쥐색 트렌치코트에 굵은 테의 안경을 쓴 모습. 어쩐지 예전에 본 모습과는 사뭇 달라보였다. 조금 더 외로워 보인다고 해야 하나, 지쳐보 인다고 해야 하나. 그 순간, 지하철이 뿌앙-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사람들은 저마다 먼저 들어가려 걸음을 서둘렀다. 반면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천천히 칸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황급히 그 뒤를 쫓았다.

그를 ‘처음 본’ 곳은 3년 전 여의도 공원이었다. 그때도 굵은 안경테에 코트차림이었지만, 추워서인지 두툼한 조끼를 입고 있었다. 영하의 날씨에도 여의도 공원은 천여 명 쯤 되는 인파로 만원이었다. 그 인파 한가운데서 그가 튀어나왔다. 활기차게 단상 위로 올라가자 군중 속에서 환호 소리가 새나왔다. 누군가는 그의 이름을 크게 연호하기도 했다. 그는 가래 끓는 목소리로 연설을 토해했다. 날은 얼어붙을 듯 추웠다. 하지만 연설은 군중의 가슴을 조금 뜨겁게 만들었다.

▲ 최상재 전 언론노조 위원장 ⓒ언론노조
다시 지하철 안. 검은 차창에 비친 그는 손잡이를 잡은 채 굳은 표정으로 서 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갔다.

“저어…….안녕하세요.”
“아, 네...어디서 봤더라. 보도국이던가...아니면 작가?”

그가 나를 알아볼 리는 없었다. 나는 멀찍이서 그를 바라보기만 했으니….

그를 ‘바라본 곳’은 회사 사무실이었다. 4년 만이라고 했다. 다시 회사의 품으로 돌아오기까지는. 그는 시끌벅적한 제작국의 다른 팀과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책상을 잡았다. 지나치면서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쑥스러워 그러진 못했다.

사실, 입사 전에 나는 그의 프로그램들을 여러 편 봤었다. 따뜻하면서도 힘이 있는 프로그램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회사가 희망이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그런 희망을 줬던 그가 지금은 음울한 침묵 속에 앉아있었다.

“선배님, 저는 3년 전에 입사한 PD입니다.” 조용한 지하철의 정적을 깨고 인사를 했다.
“아, 내가 4년 동안 회사를 떠나 있어서 몰라봤어요. 미안해요.”

그렇게 지하철 안에서 우리는 짧은 담소를 나눴다. 그리고 몇 주 뒤, 날벼락이 떨어졌다.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고등법원의 판결이었다. 대법원 판결이 아직 남았지만, 설상가상으로 회사에서는 징계까지 내렸다. ‘대기발령’이라는 이름의 의문스러운 징계. 오랜 시간동안 회사의 대표 시사프로그램을 만들어왔던, 그리고 4년 동안 언론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언론계의 재원에게는 다소 가혹한 결정이었다.

▲ 백시원 SBS PD.
나는 그를 종종 본다. 지하철과 사무실과 집회 현장에서. 그는 ‘수난의 계절’에 여전히 초연하고, 꼿꼿하게 서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를 볼 수 없다. 고통 받는 이의 손을 잡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그를. 갈등의 현장을 찾아가는 뒷모습이 찍힌 컷을. 그 컷들로 이뤄진 프로그램. 거기에는 그가 없다. ‘PD는 프로그램을 만들 때 가장 행복하다’는 거창한 말들이 조금 민망하고 무색해지는 계절. 나는 오늘도 그를 보지만, 그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의 이름은 최상재. 전 언론노조 위원장이자 현 SBS P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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