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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경의 Chat&책]

<인간극장>(KBS 2TV), <지식채널 e>(EBS), <북극의 눈물>(MBC).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텔레비전 프로그램? 물론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들에겐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책으로 나온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잘 나가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이 앞 다퉈 책으로 다시 방영(?)되고 있다.

특히 5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영상과 음악, 그리고 자막으로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EBS <지식채널 e>를 책으로 옮긴 7권의 ‘지식채널 e’ 시리즈는 단번에 베스트셀러를 휩쓸면서 출판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최근에는 화제가 됐던 <북극의 눈물> 등 다큐멘터리들도 앞 다퉈 다시 책으로 읽혀지고 있다.

몇 해 전 미국의 <라이프>지는 지난 천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발명품으로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를 선정했다. 인쇄기의 발명이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구어 중심에서 문자 중심으로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종교개혁과 민족국가 형성 및 자본주의 질서 확립 등 근대사회 형성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으로써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내린 것이다.

하지만 이 위대한 발명품 인쇄기는 더 이상 옛 명성을 지키지 못한 지 오래다. 각종 전자매체가 등장하면서 “굿바이 구텐베르크!”를 외치며 우리의 의사소통을 전자매체 중심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요즘 어린이들은 동화도 책으로 읽기보다 비디오나 컴퓨터로 보는 것을 더 좋아하고, 우리들도 중요한 정보나 뉴스를 신문이나 책보다는 더 빠르고 더 간편하게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을 통해 얻는 것이 더 익숙하다.

이런 마당에 TV가 책으로 읽혀진다니, 어쩐지 좀 아이러니 한 느낌이다. 물론 출판계의 불황을 들여다보면 방송에서 이미 검증된 프로그램이라는, 책이 팔릴 수 있는 보증수표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특히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프로그램 일수록 유혹은 쉽게 떨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TV 프로그램이 책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시청률은 곧 책의 판매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브라운관에서 출판계로 장소만 옮겼지 피 말리는 시청률 전쟁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 내용도 TV로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왠지 브라운관의 정지화면을 책 속에 옮겨놓은 듯한 인상을 떨칠 수 없다.

물론 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화려한 시간대의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방송으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 그리고 방송 이면의 사람 냄새나는 진솔하고 따뜻한 여운을 담은 책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의 책들은 대부분 그들(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제작진)만의 잔치로 끝나거나 방송 ○○회 기념을 인증하는 기념품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흥행을 노리고 출판을 한 것은 아니지만 방송이라는 한정된 공간과 시간을 넘어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감하고, 방송으로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책을 기획한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시청률이 책 판매에 영향을 미치고 책이 잘 나가면 시청자를 프로그램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내는 TV와 책의 윈-윈(Win-Win) 전략. 어쩐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이 두 매체의 달콤 쌉싸래한 동거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올 봄, TV와 책이 만드는 이 야릇한 동거 속에서 시청률에 밀려 황금시간대에 실어 보내지 못했던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재발견해 보는 건 어떨까. 예를 들면 책으로 나온 KBS <낭독의 발견>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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