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낯이 익은 정도가 아니라 판에 박은 듯 똑같다. 시위대가 독재자에게 “물러나라”고 외쳐도 끄떡도 하지 않는다. 독재자는 시위대를 ‘혼란으로 몰고 가는 불순세력이며 테러리스트’로 부르며 탄압한다. 작년부터 쉬지 않고 중동 민주화 혁명 취재를 하고 있는 필자에게 이 모습은 물리도록 본 모습이다.

그런데 이 모습을 장소와 사람만 다를 뿐 한국에서도 본다. KBS, MBC, YTN 방송 3사 등 언론노동자들이 공정방송과 언론자유를 외치는 파업 현장은 아랍의 민주화 시위 현장과 비슷하다. 공영방송 사장님에게서는 리비아의 카다피와 이집트의 무바라크, 시리아의 알 아사드가 보인다. 이들은 독재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독재자는 조직의 단결을 막기 위해 특정인물을 본보기로 죽여 전시효과를 노렸다.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부는 시위대 중 특히 아이들과 여성을 잡아 고문하고 잔인하게 죽여 가족에게 시신을 보낸다. 그러면 한동안 시위대 내부에서 두려움이 흐른다. 나의 아내와 아이가 죽을 수 있다는 공포심이다.

방송사 사장이 파업 중인 언론노동자를 해고하는 방법도 비슷하다. 가장의 월급을 빼앗고 해고하면 아이들과 아내가 먼저 동요하게 된다. 해고는 조금씩 공포를 심어준다. 이들에게 파업하는 기자 · PD는 그저 조직의 안위를 해치는 ‘불순세력’이다. 그들의 뇌는 자신이 독재자라고 상상조차 못한다. 그래서 당당하게 탄압한다.

반기문 유엔총장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시위대 탄압을 “용납할 수 없는 단계”라고 한 발언을 두고 시리아 국영신문 〈티시린〉은 지난 4월 28일자 사설을 통해 “반 총장이 시리아 정부에 대한 터무니없는 언사에 치중한 채 반군의 폭력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티시린〉은 “무장그룹의 범죄와 테러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계속되는 외면은 시리아가 직면한 테러리즘과 직접 참여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리비아 내전 당시 리비아 정부관료는 내게 물었다. “테러리스트(반군)들이 문제가 있다고 보나, 아니면 카다피 대통령이 문제라고 생각하나.” 그가 말하는 ‘테러리스트’란 카다피에 대항한 시위대다. 나는 “답을 하기 전에 너는 왜 그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지 물어봐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그들은 국가전복 세력이다.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고 정권을 교체하려하니 테러리스트가 틀림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이들이 알면서 여론몰이를 위해 정치적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그렇게 믿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의 뇌는 이미 ‘시위세력=테러리스트’로 세뇌되어 버렸다. 지난 세월 권력에 취해 주변과 정세를 읽는 눈과 귀가 막혀버린 것이다.

 

▲ 김영미 국제분쟁전문 PD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리비아의 카다피는 시민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됐고 이집트의 무바라크는 감옥에 있다. 파업을 하고 있는 언론사 사장님들도 이 뉴스를 들으셨을 텐데 카다피나 알 아사드를 보고 이들을 독재자라고 생각할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들의 최후를 보고 느끼는 점은 없으실까? 혹시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