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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는 TV가 없었다. 우리 집 얘기다. 농담이 아니다. 1960~1970년대였으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니까. 마을에 한 집 정도만 가지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난 1980년대 생이다. 빛나는 고속성장의 터널을 지나온 세대다. 집집마다 1대씩, 아니 많게는 안방과 침실까지 2~3대씩 갖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해부터 취직을 하던 날까지, 영원할 줄 알았던 TV와 기나긴 안녕을 고해야만 했다.

순전히 부모님 때문이었다. 어느 날 집에 들어왔을 때 TV장 위에 쌓여있던 뽀얀 먼지를 기억한다. 종일 TV를 끼고 살았던 나와 동생들에 대한 징벌의 마지막 상흔(!)과도 같았던 그 먼지- 처음에는 화부터 밀려왔다. 가장 좋은 친구를 빼앗긴 데에 대한 분노로 파르르 떨었다. 곧이어 쓸쓸함이 찾아왔다. 매일같이 보던 일본 애니메이션, 주말 버라이어티쇼, 가요 프로그램의 주인공들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는 정말이지, 적막했다.

하지만 나이는 나이인지라. 어느 날 말없이 전학 간 친구가 죽도록 미워도 어느새 잊혀지듯, TV라는 친구도 스멀스멀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렇다면 친구가 없어진 자리는 어떻게 변했을까? 흔히 얘기하듯, ‘상상력이 풍부해지고, 가족들 사이에 대화가 더 많아지고, 사고력이 쭉쭉 향상’되었을까나? 안타깝게도 그러진 못했다.

급증한 사춘기의 호르몬은 부모님에 대한 반항심만 키워주어 대화는 되레 줄어들었다. 딱히 책을 더 많이 읽은 것도 아니다. 상상력이나 사고력도 그다지. 하지만 한가지만은 확실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TV를 끈다’라는 행위는 적어도 ‘TV를 보면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사실을.

TV를 보면서 절대 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멍 때리는’ 일이었다. 멍하니 TV를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멍-’이었다. 그맘때쯤엔 그냥 누워있거나 웅크려 있거나, 하늘을 들여다봤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대신 주구장창 옆에서 외쳐대는 이가 없으니 머리의 생각이 가지런해지고, 공명이 생겼다. 요즘 유행하는 소위 ‘생각 버리기 연습’을 스스로 해버린 격이다. 밖으로 쏘다니는 일도 많아졌다. 몸도 확실히 건강해졌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그런데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TV PD가 되어있었다. TV를 많이 보는 것이 단연 미덕인 직업이다. 그래서 TV없이 한 시절을 보냈단 얘기는 어지간해서 안 한다. 더구나 난 그토록 소홀했던 TV친구와 이미 다시 절친이 되었다! 하지만 문득 생각을 한다. TV 프로그램 만드는 일은 분명 즐거우나, 모두가 TV를 열렬히 보길 원친 않는다고. 확실히 TV를 지나치게 보는 사람, 그리고 사회는 건강하지 않은 것 같으니까! 허나 그 와중에 내 프로그램 시청률은 높았으면 하는 소망, 욕심은 대체 뭔가? 확실히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최대한 많이 보게끔 만드는 게 당연한 생산자로선 불순하고도 어이없는 발상이다.

▲ 백시원 SBS 교양 PD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으냐”에 대한 대답은 그래서 어렵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한 프로그램만 더 볼까’하는 TV의 자성을 이기고,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는 프로그램?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 막연하지만 대충은 그렇다. 그런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 덕에 나는 TV를 껐네’라 할 수 있는 불순한 프로그램. 그게 내가 만들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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