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의 남자’ 좋은 연출에 대한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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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따져보기]

지난주에 막을 내린 KBS 2TV의 수목 미니시리즈 <적도의 남자> 마지막 두 회를 보다가 결국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알다시피 이 드라마의 시작은 미약했으나 초반 이후부터 놀랄만한 뚝심을 발휘하여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탈환했고 팬들로부터 ‘명품 복수극’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마지막 두 회 방영분에서 보여준 실망스러운 모습은 그 모든 성취와 호평들을 잊게 만들기 충분했다. 방송사고로 얼룩진 19회와 날림 편집에 가까웠던 마지막회까지.

헌데, 이것이 단지 마지막 두 회만의 문제였을까? 혹은 ‘쪽대본 권하는 한국의 특수한 제작 시스템’ 탓일까? 나는 단지 그렇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진즉에 정상적인 드라마 제작 시스템이 정착되었다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많은 드라마들에서 노출되는 후반부의 작품 붕괴 현상들은 대개 내재되어있던 불씨에서 비롯되기 마련. 특히 <적도의 남자>에 있어서는 연출과 관련된 부분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 KBS 2TV <적도의 남자> ⓒKBS

연출력에 관한 상찬은 <적도의 남자>에 대한 호평에서 빠지지 않던 이야기다. 그리고 그에 값할 만큼 이 작품에는 눈을 사로잡는 장면들이 매회 수없이 등장했다. 불타는 듯한 노을빛 아래 왜소하게 선 인물의 강렬한 이미지는 <적도의 남자>의 마스터 컷과도 같다. 그 외에도 복선적인 미장센, 감각적인 편집, 그리고 독특한 앵글로 강한 임팩트를 전달한 장면들은 복수극 장르에 어울리는 긴장감을 극적으로 전달하곤 했다.

그런데, 이렇게 감각적이고 멋있는 화면만으로 ‘좋은 연출’이라 부를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요 몇 해 사이 방영되었던 지상파 드라마들을 통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쪽인데, 세세한 부분에서 디테일이 망가지는 모습을 너무도 자주 목격하고 있는 까닭으로 <적도의 남자>도 예외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이고도 흔한 오류는 대화 장면처럼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신에서 컷이 바뀔 때 표정이나 얼굴 각도와 같은 연기의 연속성이 미묘하게 깨지는 경우다. 말하자면 편집점을 만들지 못한 것인데, 이는 후반작업의 오류라기보다는 현장의 반복촬영 과정에서 일관되게 연기를 통제하지 못한 탓이 크다.

이처럼 꼼꼼하지 못한 연출 사례는 나아가 개연성이 부족한 미술이나 의상, 그리고 상황에 충실하지 못한 연기 연출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를테면 <적도의 남자> 마지막회의 경우, 미리 찍어둔 태국장면 속 인물의 감정선은 돌출적이며, 이후 이어지는 선우(엄태웅)와 장일(이준혁)의 행보는 갑작스럽게만 보인다. 애초의 예측치가 정교했다면, 그리고 아역 에피소드부터 선우에 대한 장일의 심리를 연출로서 풍부하게 담아냈다면 말미의 행보와 감정선이 그토록 어긋나 보였을까?

요컨대 <적도의 남자> 마지막 두 회에서 보여준 여러 오류들, 그 단추는 사실 극 초반부에 이미 잘못 꿰어져 있었던 셈이다. 이제 그 정도의 오류에 대해서는 제작 환경 때문에, 혹은 시청자들도 대충 눈감아주겠거니 하며 만드는 이들조차 경각심을 잃어가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미사여구가 화려한 글이라고 해도 군데군데 맞춤법과 문장이 틀려 있으면 누구도 명문이라 부르지 않을 터. 텔레비전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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