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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주자들이 대권의 꿈을 안고 속속 레이스에 뛰어듭니다. 저마다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고, 또 강력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슬로건을 내 겁니다. 국가의 5년을 책임져야 할 대통령선거가 이미지전과 정치공학에 의지한 ‘바람과 조직’의 단기단판승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정치의 현실 속에서, 각 캠프는 머리에서 쥐가 날 만큼 고심해 각자의 슬로건을 내 놓았을 것입니다.

유력 주자들의 슬로건은 이렇습니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박근혜), 보통사람 주인인 우리나라 대통령(문재인), 저녁이 있는 삶(손학규), 내게 힘을 주는 나라 평등국가(김두관). 다들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말들입니다.

온 국민을 고통의 나락에 빠뜨린 이명박 대통령의 캠프 슬로건은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경제, 확실히 살리겠습니다’ 였습니다. 처음에는 ‘일하겠습니다 이명박’이었다가 바꾸었습니다. 5년이 거의 다 지난 지금, ‘살림살이 많이 나아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올 초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통계입니다. 오로지 수출드라이브에 따른 양적성장만 있었을 뿐, 청년실업률은 개선되지 않았고(7.2%. 취업자수 8만 감소), 국민총소득(GNI)증가율은 2.2%에 그쳐서 참여정부보다 1.2%p 문민정부보다는 4.3%p가 낮아졌습니다. 소득분배의 평등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확대돼 양극화는 심화됐습니다. ‘실패한 경제’ 혹은 ‘양극화 된 경제’에 대한 체감도는 통계상의 수치로 다 표현되지 않고 ‘삶의 분노’로 남았을 겁니다.

또 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하는 학술지 <보건사회연구>에 실린 ‘OECD국가 삶의 질 구조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OECD 34개 국가의 ‘행복지수’를 구해 비교한 결과, 한국은 10점 만점에 4.20으로 뒤에서 세 번째인 32위였습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꼴찌에서 세 번째로 행복한 나라, 아니 불행한 나라인 셈입니다. MB캠프(정권)는 슬로건으로 국민을 속였고, 국민들은 그 슬로건에 속았습니다.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박근혜 후보. 그녀는 당내 경선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집권 새누리당의 추대후보나 다름없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금까지 수위를 다투면서 차기권력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녀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말합니다. 그녀의 꿈은 대통령일 것입니다. 꿈 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꿈이 우리 모두의 꿈이라면, 오오 감동입니다. 내 꿈을 이루어주다니….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빈부의 양극화를 해소시켜 주고, 재벌공화국과 토건공화국을 종식시키고, 남북화해시대를 열며, 낙하산 사장으로 언론을 장악하는 일 없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 준다면야 ‘독재자의 딸’이니 ‘수첩공주’니 하는 정치적 공격은 더 이상 해선 안 될 일입니다.

그러나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슬로건을 듣는 순간 그녀에게 묻고 싶어집니다. 당신은 우리의 꿈을 아는가, 라고 말입니다. 꿈이 짓밟히고 상실되어간 그 무수한 현장과 시간에서 당신은 대체 무엇을 하였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이명박 정권 내내 그녀는 이른바 ‘친박’ 그룹이라는 여당 내 최대세력을 이끌어왔습니다. 그러나 물가폭등에 대해서도,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도, 용산의 무참한 죽음에 대해서도, 쌍용차의 살인적 진압에도, 언론의 독립과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언론인들의 긴 싸움에도, 그녀는 줄곧 침묵했고 오히려 ‘이 정권의 성공을 빌었을’ 뿐입니다. 역사에 죄를 진 하나회 출신 강창희 씨를 국회의장에 앉혔을 뿐입니다. 그런데 꿈이라니요. 내 꿈, 우리의 꿈, 절망에 빠진 국민의 꿈을 아는 정치인이라면 그럴 수 없었습니다.

 

▲ 이근행 전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
어느 날 갑자기 국민들에게 꿈을 이루어주겠다는 발상은 너무나 위험한 사기극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개인도 정파도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고 해서, 또 어느 날 당명을 바꾸어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이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국민의 꿈을 이루어 줄 리 없습니다. 그 자격이 생길 리도 없습니다. 

 

삶은 슬로건이 아니라, 피땀의 시간으로 증명해야 신뢰를 얻습니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그녀의 꿈만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라면 지금 당장 그녀는, 용산과 쌍용, 강정과 4대강, 언론장악과 무너진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 꿈’이고, 국민의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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