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행의 편지] 여름 속에 가을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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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작업복 곳곳에 페인트가 묻은 채로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계속되었던 날 찜통 같은 공장 안에서 페인트칠을 하고 쓰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한낮에 회사 뜰 잔디밭 풀을 뽑기도 했다 했습니다. 화장실 변기 청소를 하고, 타일과 타일 사이를 닦아내거나 메우는 일도 했습니다. 그것이 회사의 교육이라 했습니다.

저라면 아마 그 수모를 다 견디지 못해 이미 때려 치웠거나 한바탕 발광을 하고 말았을 일을 당신은 참 오래 견디고 있었습니다. 회사에 의해 낙인찍힌 노동자의 삶은 그렇게 인간 이하의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견디는 심정을 물었습니다. 수모와 분노, 부양해야 할 가족 이야기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저를 제일 섬뜩하게 한 말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변기를 닦고 풀을 뽑는다’였습니다. 아 어쩌면 그 게 노동조합을 파괴당한, 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송두리째 짓밟힌 한 노동자가 모든 모멸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스스로를 지키는 길이었고, 살아남아 복수할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칼을 품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그. 그에게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방송가의 사정도 다르지 않습니다. 회사에 나가면 조합사무실에 앉아 있는 아나운서, 기자, PD, 엔지니어들을 보게 됩니다. 그 수가 너무 많아서 각자의 상태를 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만,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거나 쫓겨난 처지로 보면, 이들 또한 풀을 뽑거나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하는 노동자들과 본질적 차이는 없습니다. 그들 또한 수모와 분노를 견디는 일이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아나운서는 프로그램을 배정받지 못하고, 기자는 마이크를 잡지 못합니다. PD 또한 프로그램 제작을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힘없는 작가들까지 일자리를 잃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보복이, 무시로, 또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일어납니다.

오다가다 만나는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파업을 하던 당시보다 더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 ‘멘붕’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확인합니다. 어쩔 땐 차라리 저처럼 해고당한 놈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싶을 때가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말까지 하고 보니 새삼 어처구니가 없고 분노가 치밉니다. 이 비이성적이고 야만적인 가학(加虐)과 피학(被虐)의 일상화가 불원간 끝나지 않는다면 회복불능의 고통과 상처가 남을 게 분명합니다. 인간에 대한 적의(敵意)도 일상화될 것입니다.

▲ 이근행 전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
일하는 도중 잠깐 숨 돌릴 틈이 있어서 산사를 찾았습니다. 일주문을 지나 빗길을 한참 걸었습니다. 생각을 멈추고, 회사동료나 취재하면서 만난 노동자들을 잊고, 소나무와 빗방울과 절간의 풍경들을 무심히 보았습니다. 잠시나마 온전하게 내 안으로 돌아온 순간에 느끼는 평안이 사람을 진정시킵니다. 여름 속에 가을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 잠깐의 사치가, 풀 뽑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 사무실에 망연히 앉아있는 동지들에게 불쑥 미안해지는 여름의 끝이었습니다.

곧 서늘한 가을이 오겠지요. 올 같은 폭염의 시간에도, 제 기억으론 하늘이 참 높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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