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 프로그램 순위제 폐지, 왜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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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환 PD의 음악다방]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의 순위제 폐지에 대한 찬반양론의 의견이 분분한 상황입니다.

최근 SBS의 가요 프로그램인 <SBS 인기가요> 제작진은 “1위에 해당하는 ‘뮤티즌송’ 선정 및 ‘테이크 7’ 등의 순위 시스템을 폐지하고 새로운 포맷으로 변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 이유로 “K팝(Pop)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에서 순위를 매기는 시스템이 큰 의미가 없고, 순위 결정과정에서 각 팬덤들의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는 부작용도 고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릴 때부터 KBS <가요 톱(Top)10>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를 즐겨보던 가요 순위 프로그램 마니아로서 그 주의 1위곡을 알아보는 재미가 사라졌다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가요 프로그램의 순위제에 대해서는 현재의 순위 집계방식을 유지하느니 폐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SBS 인기가요>의 순위제 폐지에 앞서 MBC <쇼! 음악중심>은 2006년 1월부터 순위제를 폐지했기 때문에 앞으로 당분간은 KBS 2TV <뮤직뱅크>에서만 가요순위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SBS ‘SBS 인기가요’ ⓒSBS

순위제 폐지에 대해 많은 가요 관계자들은 순위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다양한 가수들에게 출연 기회를 제공하고 팬들에게도 천편일률적인 순위프로그램의 양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지상파 가요프로그램에서 1등을 차지한 가수나 상위권 순위는 거대 기획사의 가수들이 독식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반면에 순위제 폐지에 따른 부작용도 예상이 되는데요. 음반 판매량이 좋은 가수나 남자아이돌 그룹들에게 타격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순위 프로그램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팬덤이 강한 남자아이돌의 팬들이 음반을 대량 구매하며 힘을 실어준 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실례로 제가 가요 프로그램의 연출을 담당했을 때 방송국에 모 남자그룹 혹은 모 남자가수의 팬클럽에서 그들의 오빠의 새로운 음반을 대량으로 구입해서 ‘우리 오빠 노래 좀 많이 선곡해 주세요’ 라는 애교섞인 문구와 함께 소포가 배달되고는 했습니다.

처음 소포를 받았을 때는 물론 팬클럽의 정성 때문에 다른 노래보다는 선곡을 한 번이라도 더 해주긴 했지만, 아무리 팬클럽에서 이렇게 정성을 쏟는다고 해도 그들의 오빠한테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들이 대량으로 구매한 음반덕분에 그들의 오빠가 가요 순위프로그램에서 상위권을 차지할 수 있겠다는 걸 알게 됐고, 그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작년 말에 <뮤직뱅크> 순위집계 방식에 약간 변화가 있었는데요. 보통 순위 집계 방식에 있어서 음반판매 점수와 방송횟수, 여론조사를 통한 시청자 선호도, 음원순위점수 등을 토대로 삼는 것은 비슷하지만, 최근 가요계 현실에 맞춰서 음반판매점수는 낮추고, 음원점수를 높인 점입니다.

▲ KBS 2TV <뮤직뱅크> ⓒKBS

집계방식에 변화가 있기 전에는 솔직히 요즘에는 실제 노래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음반 판매량보다는 음원차트의 순위임에도 불구하고, 음원차트에서 그렇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지 못하는 노래의 모 가수 혹은 모 그룹이 그들의 팬덤이 대량 구입한 음반 판매점수를 가지고 <뮤직뱅크> 1위에 오르는 것을 종종 봤습니다.

그런데 순위집계방식에서 음원점수의 비중이 높아지다보니 요즘은 또 ‘음원사재기’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엔터테인먼트업계의 대기업들이 자사 소속 가수의 음원을 공개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음원을 사들여서 높은 순위를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사재기를 통해서라도 음원순위를 높여야 가요 순위프로그램에 있어서 상위권을 차지할 수 있고, 방송출연도 수월해지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음원을 공개하는 요일이 월요일~금요일 사이였고, 주말에는 음원사이트 직원들도 보통 쉰다고 생각했었는데, 최근에는 순위 집계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많은 점수를 얻기 위해 대형기획사의 음반들은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음원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월요일에 공개하는 가수보다 하루의 점수가 추가되니, 한주간의 차트를 정리함에 있어서 유리한 것입니다.

▲ 이주환 MBC PD·가수(PD블루)
가요프로그램의 순위제에 있어서 역효과를 짚어보니 흥미와 재미를 준다는 긍정적인 효과와 비교해 봤을 때, 폐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좀 더 객관적이고 공정한 방식의 순위집계 방식이 도입된다면, 가요프로그램의 순위제가 새로운 스타의 탄생과 가요계 발전을 주도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또한 순위제 폐지가 좀 더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과 소형기획사나 신인가수들에게도 출연의 기회를 공정하게 줄 수 있는 토대가 되지 않는다면, 현재 가요 순위프로그램 포맷을 유지하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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