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여섯 바보의 4년, 우리의 슬픈 4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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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커다란 돌덩이 하나를 매달고 산 지 4년이 되었습니다. 돌덩이는 때때로 힘찬 에너지가 되어 지친 심신을 일으켜 세우기도 했지만, 다루기 힘든 분노와 울화를 불러와 밤을 지새우게 한 적도 많았습니다.
24시간 뉴스채널 YTN에서 노종면, 현덕수, 우장균, 조승호, 권석재, 정유신 여섯 기자가 해직된 지 만 4년이 흘렀습니다. ‘언론은 권력의 시녀가 아니다’는 자존심, 그리고 ‘YTN은 우리가 살리고 지켜왔다’는 자부심‘, 이것이 그들이 스스로 가시밭길을 선택하게 한 유이(唯二)한 이유였습니다.

▲ 노종면 전 YTN노조위원장 등 6명의 해직언론인들은 1심에서 해고 무효 판결을 받았지만 사측이 항소를 해 현재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사진은 2009년 11월 13일 1심에서 승소한 6명의 해직기자들이 법원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YTN 지부
탱크 앞에서 장미 한 송이 들고 저항한 당신들

돌아보면 참 대책 없는 저항이었습니다. 아마도 저들에게는 어린 애 손목 비트는 일보다 더 쉽게 보였을지 모르겠습니다. 법원, 검찰, 경찰, 국세청, 방송통신위원회, 광고주 등 권력과 금력, 정책과 인사라는 총포를 총동원해서 저들이 YTN을 짓밟을 때, 여섯 바보가 ‘저널리즘’이라는 다 시든 장미 한 송이를 들고 탱크 앞에 서 있었습니다. 누구는 용기를 칭송했고 누구는 지략에 감탄했지만, 기실 퇴로 없는 싸움터에서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냈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나 1460일이 지난 지금, 광란의 칼춤을 추던 자들은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예견했던 대로 수괴들은 철창 안으로 기어들어갔고 졸개들 몇몇이 무너진 담 뒤에 숨어 아직 총을 겨누고 있지만, 그리 오래 버틸 기력은 없어 보입니다. 바보들은 여전히 시들한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여전히 그 자리에, 여전히 우뚝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긴 고통의 터널을 벗어날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간을 되짚어 봅니다. 해직되고 석 달쯤 지났을까요?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최 선배, 3개월 정도만 더 견디면 끝날까요?” 가슴이 콱 막혔습니다. 무언가 빨리 말하지 않으면 이 친구가 힘들어할지 모른다는 강박에 “곧…, 끝날 거야”라고 해버렸습니다. 머릿속에서는 ‘2년? 3년? 2년? 3년?…’이란 말이 맴돌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길게 잡았던 그 3년도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그때, 하기 쉬운 말이라고 너무 쉽게 말했습니다. ‘이 싸움은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버티고 견디면 이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4년 사이에 둘은 아버지를 떠나보냈습니다. 철석같이 믿었던 자식들이니 두 분은 편히 가셨을 것이라 믿고 또 믿습니다. 하지만 일터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 드리지 못하고 아버지를 떠나보낸 자식들의 마음은…. 나는 감히 짐작지 못하겠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는 아내의 병상에서 기자의 전범(典範)으로 불리던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앞날 창창한 청년 해직기자는 갓 태어난 첫 아이에게 무슨 말을 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민주주주 회복의 첫걸음, 이 땅 모든 해직언론인들의 ‘복직’

▲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구본홍 사장과 배석규 사장 두 번의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벌인 YTN 노조 조합원들.ⓒPD저널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지난 기억을 떠올립니다. 서울 남대문 YTN 앞 인도에서 시민과 언론인들이 한 데 어울려 울고 웃던 ‘YTN을 생각하는 날’, 그 새벽의 찬 이슬이 생생합니다. 언론인 8000명의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로 YTN을 휘감아 버린, 그 호기롭던 밤도 선명합니다. ‘언론법 반대 총파업’ 중에 달려간 1000명의 노동자가 YTN을 둘러싸던 그 빛나는 아침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그들만 외롭게 남겨 두었던 사실도 뼈아프게 기억합니다. 앞으로 해야 할 남은 일을 하나하나 가늠해 봅니다.

YTN의 여섯 기자가 해직된 이후에 더 많은 수의 언론인들이 MBC에서, 부산일보에서, 국민일보에서 해직되었습니다. 여섯 기자를 빨리 제자리로 돌려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랑스레 떠드는 민주정부 10년 동안,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해직기자들을 복직시키지 못함으로써 YTN에서 다시 해직이란 유령이 살아났듯이 말입니다.

▲ 최상재 SBS PD.
‘민주회복’이란 구호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립니다. 옳은 말이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민주정부의 적자이건 미래가치의 개척자이건 부디 가슴에 새기길 바랍니다. 민주주의 회복의 첫걸음은 이 땅 모든 해직언론인들의 복직입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이자 요체가 바르고 공정한 언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해직언론인들은 그 언론을 지키려던 전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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