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학회 논란 진화? 기름 부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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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장학회, 강제 헌납 아냐” 발언했다 번복…곤혹스런 질문 계속되자 차단

논란의 진화는 없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사진에게 “더이상 정쟁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해법을 내놓으라”고 권유하고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딴 장학회의 명칭도 수정할 것을 주문했지만, 그뿐이었다.

박 후보 측근들마저도 필요성을 제기한 최필립 이사장 사퇴와 관련해서도 “설립자와 가깝다고 사퇴하라는 것은 정치공세”라고 주장했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최필립 이사장의 정수장학회 소유 MBC 지분 매각 비밀 계획 및 이를 통한 선거 개입 의혹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수장학회 논란과 관련한 입장 표명을 하고 있다.
MBC 지분 매각 비밀 계획 등엔 함구…문제 없다면서 이사진에 명칭 수정 등 판단 요구

당초 이날 기자회견에선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와 관련해 최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등 전향적인 입장을 밝힐 것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박 후보는 전향적인 입장 표명을 통한 논란의 진화 대신 정수장학회에 대한 자신의 기본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쪽을 선택했다. 자신과 정수장학회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즉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는 입장을 반복한 것이다.

박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수장학회는 개인 소유가 아닌 공익재단으로 어떤 정치활동도 하지 않고 있다”며 “저의 소유물이 아니고, 저를 위한 정치활동을 한다는 야당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지난 2005년 장학회를 떠난 이후 (장학회와) 어떤 관계도 없고, 무엇을 지시하거나 건의할 위치에 있지도 않다”고 말헀다.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를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개인으로부터 강탈한 ‘장물’에 비유하는 데 대해서도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정수장학회는 김지태씨가 설립한 부일장학회를 승계한 게 아니라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김지태씨가 헌납한 재산이 일부 포함돼 있긴 하지만, 국내 독지가와 해외 동포들의 성금과 뜻을 더해 새롭게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당시 <부산일보>와 MBC의 규모가 지금과 같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뒤 “김지태씨는 부정부패로 많은 지탄을 받은 분으로, 본인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 헌납을 뜻을 먼저 밝혔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후보의 이 같은 주장은 지난 2010년 6월 김지태씨 유족들이 법원에 정수장학회와 국가를 상대로 <부산일보>,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주식반환 소송을 제기한 데 대해 올해 초 법원이 패소 판결을 내린 것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유족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도 “헌납과정에 강압성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다만 “의사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여지를 완전히 박탈당한 상태였다는 증거가 없다. 이를 취소할 수 있지만, 주식을 증여한 1962년 6월 20일부터 10년이 지날 때까지 취소하지 않아 취소권은 소명했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때문에 이날 기자회견 과정에서 “부일장학회에서 정수장학회로 넘어오는 과정에 문제될 게 없었다면 (박 후보가) 이사진들에게 판단을 요구하는 건 단순히 야당의 정쟁 때문인 것인가”(경향신문), “법원은 부일장학회를 헌납하는 과정에서 강탈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했지만 법적으로 이를 되돌릴 기회가 없다고 판단한 게 아닌가”(시사IN) 등의 문제제기가 나왔다.

이에 박 후보는 “법원이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강압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는 결론을 말한 것”이라고 같은 답변을 되풀이했다. 납득하기 어렵다는 질문이 주진우 <시사IN> 기자로부터 이어지자 박 후보 측은 “이 자리는 토론하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차단, 다른 언론사에 질문 기회를 넘겼다.

그러나 부일장학회 헌납과정에 강압이 없었다는 박 후보의 발언을 놓고 사실관계를 따지는 기자들의 지적이 계속되자 연설대를 내려갔던 박 후보는 다시 마이크를 잡고 “제가 강압이 없었다고 말했나. 잘못 말한 것 같다”며 “강박의 정도가 의사결정할 여지를 박탈할 만큼의 상황에서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판결이었다”고 번복했다.

박 후보는 오직 정수장학회가 더 이상 “정쟁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국민 앞에 확실한 대답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학회 설립 취지를 살리고 국민적 의혹 해소를 위한 확실한 방안을 재단과 장학회 스스로 내놔야 한다”며 “더이상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서 국민 혼란을 가중시키고 정쟁의 중심에 서선 안 된다”고 말했다.

최 이사장 거취에 대한 질문이 계속 이어졌음에도 박 후보는“여러가지를 감안할 때 이사진에서 국민 의혹이 없도록 현명하게 판단을 해줄 거라 생각한다”고 답하는 데 그쳤다.

기존 입장의 반복…민주 “박근혜의 앞선 과거사 반성, 선거전술이었을 뿐이라는 게 드러나”

박 후보의 기자회견에 대해 민주통합당은 비판을 쏟아냈다. 박용진 대변인은 박 후보 기자회견 직후 서면 브리핑을 통해 “오늘(21일) 정수장학회에 대한 박 후보의 입장은 역사 왜곡과 고집 불통으로 기존 입장을 반복하는 자리였다”며 “부일장학회 강탈 과정에 대한 왜곡된 진실을 바탕으로 국민과 야당의 역사 바로잡기 요구를 정치공세로 폄하한 것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갖게 한다”고 밝혔다.

이어 “무엇보다도 강탈된 장물에서 숱한 편익을 얻어왔던 장본인으로서 한 마디 사과도 없이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주장의 반복으로, 법원과 과거사위원회의 결론인 ‘강압에 의한 강탈’이란 사실에 대해서도 왜곡된 태도를 그대로 유지한 데 놀라울 따름”이라며 “오늘 입장발표를 통해 국민들은 박 후보가 이전 유신에 대한 사과나 과거사에 대한 변화된 태도가 지지율 하락을 막기 위한 선거전술의 일환이었을 뿐임을 확인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후보 측 진성준 대변인도 “실망을 넘어 분노스럽다”며 “국민은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잡는 차원에서 박 후보의 진솔한 사과와 반성, 그리고 강탈된 재산의 사회적 환원을 박 후보에게 주문하고 기대했으나, 박 후보는 정반대의 입장을 밝혔다”고 비판했다.

박 후보가 기자회견 말미 정수장학회 강제 헌납 관련 자신의 발언 일부를 수정한 데 대해서도 진 대변인은 “분명한 것은 정수장학회가 강탈이 아니라 헌납이며, 장물이 아니라 선물이라는 것이 박근혜 후보의 일관된 입장이라는 것”이라며 큰 의미가 없음을 강조했다.

진 대변인은 이어 박 후보를 향해 △정수장학회에 얽힌 과거사와 관련한 정확한 인식과 그에 기반한 사죄 △정수장학회로부터 받았던 모든 특전, 특혜의 반환 △최필립 이사장 등 박 후보 측근 이사진의 즉각 사퇴 △유족에 대한 피해 보상 및 정수장학회의 사회 환원 모색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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