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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을 만드는 이유

1997년 12월 입사, 2001년 9월 연출 시작.프로그램의 시작, 아이템 선정, 나는 나에게 이런 말들을 던지며 몸을 푼다.“아이템에 드라마(극적요소)가 있는가?” “기존에 누군가가 다루었던 것은 아닌가?” “공격대상이 가진 권위가 내 전의를 불태울 만큼 불합리한가?” “양측의 입장이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데 어느 한쪽의 목소리 끝이 사그러드는가?” “시청자들은 과연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는 할까?” “다른 사람이 이 문제를 다룰 때와 달리 나만의 독특한 표현방식과 시각을 드러낼 수 있는 여지가 있는가?”이런 몸풀기를 하고 나면 촬영에 들어간다. 나는 촬영내내 ‘진리는 하나일 것이다’라는 자기 최면을 건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얻은 두 가지 살아가는 방법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절대로 진리는 두 개일 수 없다. 하나의 사건 여러 부분에서 다양한 의견이 있다 하더라도 결정적인 지점, 그 한곳에서는 진리를 말하고 있는 사람은 한명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나를 의심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 한명을 가려내는 것이 아주 난해한 일이다. 목소리의 떨림과 맞서지 못하는 눈빛을 보고 결정한다. 주변사람들의 증언도 한몫 거든다. 수사기관이 안 가본 곳과 만나보지 않은 사람들을 한명이라도 더 만나는 발품을 팔면 결정이 쉬워진다. 이런 결정이 서면 두 가지 방향을 잡는다. 하나는 여러 정황들을 그 한곳에 맞춰 논리를 전개시켜 나가든지 아니면 모든 곳에는 객관성을 지켜내겠다는 명분하에 양측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시켜가며 마지막에 한마디한다.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보겠다.”위험한 부분인 것 같다. 물적 증거가 아닌 심적 증거와 당사자들의 말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프로그램을 전개시켜나간다. 프로그램 안에서 양측의 다양한 의견들을 그저 개진시켜 놓은 채 객관성이라는 담 너머로 달아난다. 두 가지 모두 약한 고리가 있다. 전자는 전지전능한 신이 되어 누구 하나를 완전히 바보로 만들어야 하는 그런 지위를 우리 제작진이 가질 수 있느냐는 것, 후자는 아니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건지 즉 힘이 빠져버린 프로그램이라는 비판을 감내해야 한다. 전자의 오만과 후자의 겸손 그 어떤 것도 시사프로그램의 충실한 내용물은 못 되는 것 같다. 사법권도 없는 일개 프로듀서들은 그래서 늘 오만과 겸손 두 극을 왔다 갔다 한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일단 이 극단을 지칭하는 용어를 바꾸어 보는 것이다.오만대신 부지런함, 겸손대신 집중으로.사람의 말을 믿어야 하는 직업, 또 다른 한편으론 사람의 말을 반대로 의심해보아야 하는 위치, 아예 사람의 말을 믿지 말자. 차라리 증거를 찾자. 발로 뛰면서 다른 각도에서 말을 해줄 사람을 찾고 자료를 찾자. 이 기간 만큼은 제발 선입견이나 선이해를 버리고 일단 모든 것을 판단중지하자. 한 명이라도 더 만나보고 확인하고 증거가 되어 줄 만한 자료들을 찾아다니자. 오만해지지 말고 부지런해지자. 겸손은 자신이 없을 때 나온다. 혹은 다양한 문제들을 말하려고 할 때 역시 드러난다. 자신이 없으면 자신이 있는 것에 집중해라. 하나의 사건에서도 문제가 되는, 그래서 부지런함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자신에 찬 부분을 집중해서 공략해라. 단 하나의 문제라도 보여주면 된다. 전체적으로 모든 것이 문제일 수는 없다. 그 하나의 지점이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판명 나면 전체는 커다란 흠을 가지게 된다.프로그램이 끝나면 다시 나에게 이런 말들을 던진다. “너는 왜 이 아이템을 방송했니? 프로그램을 하기 위해 억지로 말하기 싫은 사람들을 카메라 앞에 세운 것은 아니었니?” “니가 이걸 방송하면 무엇이 바뀌니? 재판 결과가 바뀌니? 주한미군이 물러가니? 전투기 기종이 바뀌니?” 내가 하고 싶은 것 두 가지.첫째 내가 을 왜 하는지 그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다. 진짜로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 월급을 받기 위해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송시켜야 하니까, 아니면 다른 뭔가가 있는지? 방송이 끝나면 정말로 이런 생각들이 많이 든다. 방송을 위한 방송을 한 것은 아닌지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더욱 그렇다. 둘째 한발 앞서 나가고 싶다. 사건이 일어나면 문제가 있는 곳을 그저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어쩌면 시사프로그램들인 것 같다. 내가 먼저 나가서 도전적이지만 실현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라도 하고 싶다. 군의문사가 끊이질 않고 있다. 한 해 수천명이 군대에서 정신병자가 된다고 한다. 젊디젊은 이들이 군에 2년 2개월을 머물러 있을 합리적인 이유를 국가에서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우리 나라에서 모병제를 시행하자고 말하고 싶다. 이런 주장에 대해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해 준다면 군대, 젊은이, 대한민국 사이에서 어떤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따라다니지 말고 다소 도발적이라도 의견을 먼저 말해보고도 싶다. 현실이 그렇지 않아 더욱 해보고 싶다. 김현철MBC 시사제작2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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