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우리 방송 해도 너무한다 8 … 스포츠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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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체육 무시한 한탕주의·몰아치기 급급
왜곡된 한국 스포츠, 방송 책임도 크다

|contsmark0|월드컵 축구가 지나간 자리. 그 자리를 되돌아보면 매번 그렇듯이 방송이 꼭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가 하는 자책감이 진하게 남는다. 중계권을 둘러싸고 방송 3사가 벌인 싸움이나 중계과정에서 방송 3사가 펼친 대규모 물량 편성 등을 보면 이것은 경쟁이 아니라 아예 전쟁이다.그 전쟁 내역을 잠깐 살펴보자. 이번에는 중계권 문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박찬호 중계 건 등으로 심기가 몹시 불편해진 mbc. 여태까지의 관행을 무시하고 독점 중계권을 따냈다. 관행만 믿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양 방송사는 온갖 채널을 동원해 압력을 넣었지만 mbc는 요지부동이었다. 아예 독점 중계한다는 예고를 엄청나게 때려 배수진을 쳤다.그러나 막상 월드컵 경기가 시작되었는데도 초장 분위기가 썰렁해 그럭저럭 넘어가나 싶었는데 일본이라는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뇌관이 터지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국민들은 열광하기 시작했고 전국이 축구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위기의식을 느낀 kbs, sbs는 연합전선을 구축해 mbc와 전면전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일말의 불안감을 느낀 mbc는 중계권 과당 경쟁으로 인한 외화 낭비를 방지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독점 중계권을 풀게 되었다.중계권 전쟁이 끝나자마자 편성과 예고 전쟁이 이어졌다. 재방·삼방은 기본이고 연예인을 동원한 구태의연한 쇼프로가 이번에도 예외 없이 등장했고 sb타임마다 중계예고로 도배를 해 버렸다. 편성도 춤을 춘다. 타 방송사의 편성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대응 편성에 담당 pd들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스포츠 빅 이벤트 때마다 발동하는 한국 방송사들의 몰아치기. 이 몰아치기가 일단 시작되면 방송 담당자들은 물론이고 온 국민들의 얼을 완전히 빼놓는다. 쉽게 끓어오르는 국민성에 방송의 몰아치기가 불을 질러왔던 것이다. 쇼로 시작해서 쇼로 마감한 한·일전. 일본에게 그것도 홈에서 완패한 마당에 축하쇼는 무슨 축하쇼인가. 몰아치기의 폭풍 속에 물량 편성이 빚어낸 해괴한 코미디였다.정치, 경제가 죽을 쑤고 있는 마당에 왠 축구전쟁이냐는 식의 논리를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라고 늘상 정치, 경제 걱정만 하고 살라는 법은 없다. 월드컵 같은 빅 이벤트에 열광도 하고 흥분도 할 권리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방송의 이런 몰아치기 행태가 축구, 나아가 스포츠 전체의 발전에 결과적으로 악영향을 끼쳐 왔다는 점이다.올림픽과 월드컵 등 빅 이벤트에 쏠리는 언론과 국민의 과도한 열풍이 스포츠 정책 담당자와 각 경기 단체 연맹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해왔고 한편으로는 한탕주의에 집착하는 풍토를 만들어 왔다. 그러니 자연 스포츠에 대한 투자는 국가대표팀에게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축구를 보더라도 40억 정도의 일년 예산 중 3/4 이상을 국가대표에게 쏟아 붓는다. 축구인구 저변확대와 인프라 확장 등 나머지 분야에는 아예 관심도 없다. 그리고 국민들은 어떤가.스포츠 한 가지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국민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물론 할 만한 장소도 없다. 그렇다고 번듯한 문화공간이라도 제대로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니 국민들이 갈 곳이라고 해야 술집이나 유흥가밖에 더 있겠는가. 술 소비량이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청소년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것도 이런 사회여건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이웃 일본은 초등학교 축구팀만 8천 개가 넘는다. 여기에다 야구 등 다른 종목을 합치면 그 숫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우리나라는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냐, 스포츠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았다. 그래서 스포츠를 직업으로서 장래를 보장받을 수 있을 만큼 소질이 없다 싶으면 공부를 선택하도록 몰고 간다. 일본 초등학교 축구팀이 8천 개가 넘는 반면 우리나라는 선수 숫자가 겨우 8천명이 될 정도이니 그 격차는 짐작하고도 남는다.그렇다고 국가 대표급 선수들이라고 제대로 육성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거의 대부분이 어릴 때부터 지나치게 혹사당해 부상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도대체 스포츠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국민 대다수는 스포츠를 너무 하지 않아 병들어 있고, 국가 대표급 선수들은 스포츠에 너무 혹사당해 병들어 있다.축구 한·일전에 국민과 언론 모두가 목매달고 있지만 초·중·고·대학 등 대표팀을 제외한 모든 팀들은 몇 년 전부터 일본에게 판판이 깨지고 있다. 국가 대표팀만 힘겹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실정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방송도 아예 관심 밖이다. 국민 건강이야 어찌됐건, 학원, 아마추어 팀이야 깨지든 말든 오직 국가대표팀만 이기면 된다는 이야기인가.이렇게 한국 스포츠의 체계를 왜곡되게 만들어 온 것은 물론 정부와 각 연맹의 스포츠 정책 담당자들이다. 그러나 잘못된 스포츠 정책을 조장하고 방패막이를 해 주었다는 점에서 언론, 특히 방송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월드컵 예선이 끝난 만큼 이제부터는 본선 16강 진입이라는 절대 절명의 명제를 내걸고 방송의 축구 전쟁은 또 시작될 것이다. 방송 전쟁은 곧바로 국민 전체가 참여하는 전면전으로 비화될 것이다. 그리고 초등학교 수백 수천 개 팀을 일년간 운영할 수 있는 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방송의 스포츠 전쟁, 이 전쟁은 자칫 잘못하면 국민과 스포츠를 함께 죽이는 전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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