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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의 법칙과 PD
서경주
(MBC 라디오국)

|contsmark0| 21세기를 앞두고 있는 지금을 간단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규정한다면 "시장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은 인류의 번영과 복지를 약속하는 이 시대의 메시아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 삶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냉정한 교환가치로 환산되는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러나 그 시장은 평등이라는 인간적 가치를 전제로 개개인의 창의와 노동의 대가가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교환되는 이상적 의미의 시장이 아니다. 시장에서는 여전히 자본과 권력의 과다에 따른 위계질서가 교과서적 경제이론에 우선해 관철되고 있다. 아니라고 도리질하지만 아직은 그렇다. 수직적 위계구조의 상부에서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기득권 계층은 시장처럼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는 곳은 없다고 강변하지만 그들의 등 뒤에는 맹목적 이윤극대화를 노리는 거대자본과 정치세력이 영속성을 꿈꾸며 또아리를 틀고 있다.
|contsmark1| 그들이 정말 공정하고 자유로운 게임을 원한다면 모든 것을 숨김없이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중요한 정보와 자원은 여전히 소수의 독과점체제에 갇혀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독과점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시장으로 설정된 드라마 세트를 언제든지 정글로 만든다. 작년 12월 26일 새벽, 여당의원들이 노동법과 안기부법을 날치기로 통과시킨 사건은 그런 정글의 법칙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들이 시장경제에서 계량이 불가능한 경쟁력 10% 제고라는 추상적인 목표를 들먹거리며 주장하는 노동법 개정의 당위성,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에 탄력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논리는 많은 허구와 독선을 안고 있다.
|contsmark2| 지극히 초보적인 사회보장제도는 논외로 치자. 높은 사회 사교육비용과 집세를 비롯해서 임금노동자들에게 턱없이 높은 생계비를 강요하는 사회, 경제구조, 유리지갑을 차고 다니는 임금노동자들에게는 한치의 에누리도 없으면서 음성적 자본소득자들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허술한 세금제도, 그리고 관료집단의 집단이기적 규제를 방치한 채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동자들로부터 더 냉혹하고 살벌한 시장으로 내몰아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이런 허구적 논리를 국가를 살리기 위한 고통분담이라고 강변하는 상황에서, 일을 해야 먹고사는 노동자들이 일을 포기하고 파업에 나서는 역설이 등장한 것이다. 파업은 하나의 비극적 역설이다. 우리는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일과 일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보여주려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한 사람이 떠난 자리가 더 크고 휑한 공동으로 남아 잇을 때 우리의 의사표현은 강력한 효과를 갖는다.
|contsmark3| 자동차 회사를 비롯한 산업현장에서는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 수천억, 수조원에 이른다고 파업이 경제에 끼치는 피해를 내세우며 파업의 현실적 부당성을 주장한다. 제조업체는 노동자들이 떠나면 당장 생산라인이 멈추기 때문에 그런 수치들이 파업노동자들을 회유, 협박하기 위한 엄살과 과장으로 들리지만은 않는다. 방송은 어떠했는가. 우리 프로듀서들은 파업을 시작하면서 정말 방송이 파행으로 가고 엉망이 되기를 원하고 기대했는가. 프로듀서들이 떠난 방송은 듣고 볼 만한 가치가 없다는 시청자들의 불만과 원성이 빗발치기를 기대했는가. 그랬다면 결과는 실망스런 것이다. 프로그램의 질적인 문제는 차치하기로 하자. 몇몇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프로그램의 포맷과 편성표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파업기간동안 광고도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contsmark4|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파업하니깐 방송이 오히려 좋아졌다"는 조선일보 박중현 기자의 굴잘된 시각에 동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파업하니까 좋아졌다"는 지적은 다분히 악의적 왜곡이다. 문제는 "얼마나 나빠졌는가"이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프로듀서들이 파업으로 방송을 떠난 자리는 그렇게 "공허함"을 느낄 정도로 크지 않았다. 프로그램이 엉터리라는 비난이 많았다는 소리도 없다. 일을 떠남으로써 방송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겠다는 목표는 많이 빗나갔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mbc 라디오의 경우에는 그랬다. 물론 남아 있던 선배들과 비조합원 프로듀서들이 몇 배 분발한 덕분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열심히 일한것을 탓할 수는 없다. 남는것은 결국 파업에 참여한 프로듀서들에게 반성계기로 돌아온다. 정확한 지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방송에 발을 들여놓은 지 14년이 되는 내가 보기에 프로듀서들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줄고 있다. 이것이 작가와 리포터를 비롯해 프리랜서로 일하는 수많은 스탭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프로듀서들이 직접 발로 뛰고 손을 놀리며 핍진하게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장인정신이 사라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가슴 섬뜩한 일이다. 공들여 일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돌아오는 방송시간을 메꾸는 기계적 대량생산체제에 우리도 서서히 침윤되고 있는것은 아닌가. 가슴에 손을 얹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희망하는 시장, 다시말해 창의와 노동의 대가가 정직한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해 교환되는 시장에서조차 설자리를 좁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듀서들이 일차적인 책임은 지지만 전전인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맹목적 시청률 지상주의에 빠져있는 편성정책, 사회의 첨예한 문제를 담아내려는 기획을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묵살하는 관리자들, 프로그램의 완성도나 의미보다는 시청취율을 우선으로 프로듀서들을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시장으로 내모는 세력이다. 여기에 맞서 싸우는 것마저도 프로듀서들의 몫이라면 이것은 나의 오만일까?|contsmar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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